작년 겨울부터 올해 초봄까지 장장 4개월에 걸쳐 진행되었던 영화 촬영이 끝이 났다. '돈도 안 되는' 독립영화이다보니 본업할 시간을 쪼개가며 틈틈이 했다. 물론 이 과정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특히나 나는 지금 회사를 다니고 있는 상황이라 어떤 때는 이런 선택을 한 나를 저주했다...퇴근 후 눈치를 보며 헐레벌떡 나가 택시를 타고 이동할 때, 주말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8시엔 일어나야 하는데, 미친 9시다! 하면서 헐레벌떡 촬영장까지 택시타고 갈 때 특히 그랬다.
심지어 이번 촬영의 난이도는 꽤 높은 편에 속했다. 일단 처음 찍어보는 키스신부터 속옷 노출신이 있었고, 엄마와 헤어진 친구에 대한 굉장히 사적인 내 이야기들이 시나리오에 반영되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지방 로케에, 수중신(?)에 하여튼 체력적으로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연기 측면에서도 그랬다. 영화 속 인물이 있고, 그 영화 속 영화 안 인물이 있고, 영화 속 또다른 인물까지 어떻게 보면 3인 역할까지 해야 하는 철학적인 작업이기도 했다.
나는 이 작업을 혼신의 힘을 다해 내 한 몸 불살라보자, 는 마인드로 덤벼들었다가 그렇게까진 못하겠다, 했다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까지 왔다.
따지고보면 이 작업을 통해 누가 무언가를 얻는 것일까, 란 고민도 했다. 남들이 보기에 어쩌면 취미 활동일 뿐일 수 있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도 싶었다.
그러다 드디어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는 날이 왔다. 원래 "드디어 끝이다! 다신 안 한다, 아오!!!" 하며 촬영에 돌입했다. 그리고 몇 번의 테이크를 거치고, 정말 끝이 났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또 만나자고 부둥켜 안고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연기의 세계'를 떠나 '비연기의 세계'로 왔다. 그 곳은 돈도 주고, 나름 여유도 있고, 빡세지 않다는 점에서 '진짜'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거기다 나는 '비연기의 세계'에서도 나름의 자아 실현을 하는 중이다. 나에게는 자아 실현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 끝이 나고나니, 더군다나 당분간은 연기를 하지 않겠다고 개인적으로 다짐하였기에 더 뭔가 막 그랬다. 더 진심을 다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더 최선을 다했으면 달랐을까? 순간이 박제된다는 점에서의 영상 작업이니 뭔가가 더 안타까웠다. 실제로 영상 작업에서 배우가 무언가를 많이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더군다나 이 알 수 없는 소용돌이를 함께 겪은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으니 더 그랬다. 간간이 만날 수도 있고, 정말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고, 이 챕터는 끝났다는 건 분명하니 더욱 그렇다.
이 짠함을 또 어디서 나눌 수 있을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갈망 때문에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하는 사람 자체에 어떤 안타까움과 짠함이 있는데 이건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모두가 그 세계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비단 사회적 성공이나 유명세 같은 게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느낀다는 것에 대해, 순간에 대해, 여하튼 참 쓸모없는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뭔가 서툴고 모나고 이상할 순 있어도 연기를 하면서 만났던 이들은 그런 점에서 모두 좋은 사람이었다. 또 이렇게 애틋한 순간을 마음에 담고 그 다음으로 넘어간다. 이번에도 연기를 통해 많은 것을 선물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