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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요선 Oct 16. 2021

양손프로젝트 <그립은 흘긴 눈>을 보고

몸과 마음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면!

나는 연극 집단 '양손 프로젝트'의 오랜 팬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쯤 <직소>의 무대를 봤을 때의 그 충격을 잊지 못한다. 나는 <직소>의 공연을 보고 '나도 정말 저런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예수를 너무나도 사랑해 그를 사랑한다고 하지 못하는 유다의 마음이 드러나는 공연이었다. 분노와 비아냥에서 사랑의 감정이 분출하는 그 광경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물론 양손 프로젝트의 다른 공연들(죽음과 소녀, 그립은 흘긴 눈, 감자 등등)도 너무 좋아하지만, <직소>는 그렇게 오래도록 내 마음 원탑  공연이었다. 

그리고 거진 10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보니, 이번에는 <그립은 흘긴 눈>에 더 마음이 갔다. 사실 이 텍스트는 거의 1인극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채선이라는 서른 살의 기생이 지난 젊은 날의 사랑에 대해 회고하는 이야기인데 1인극 특성상 배우는 채선만을 연기하지 않고, 그 때 채선이를, 그리고 채선이의 속마음을, 채선이를 사랑해줬던 남자를 모두 연기한다. 한 마디로 정말 말 그대로 '쌩쇼'가 가능하다. 울고 웃다가의 수준이 아니라, 천상 여자인 척 하는 여자도 되었다가 사랑에 빠진 순수한 청년도 되었다가 세상 다 산 여자도 되었다가 죽기 직전 분노 가득한 남자도 되었다가 하는데 그 바뀌는 순간순간의 흐름이 굉장히 빠르면서도 정확하다.

"채선이...내가 감옥에 가면 채선이는 다시 기생이 되어 다른 남정네들의 사랑을 받겠지?"하면서 꾹꾹 울음을 참아내며 힘겹게 이야기하는 남자를 연기하다가 "아니 그런 숭한 말을. 저는 수절할테야요" 하며 청순을 떨어대는 여자를 연기하다가 "아니, 당연한 말을 왜 한담? 그런데 이거 연극하는 거 같고 너무 재미지다" 하며 까부는 여자의 속마음까지를 연기한다는 거다.

이 과정에서 배우는 말 그대로 표정과 몸과 감정을 자유자재로 쓰는데 그 순간들이 정말로 진짜같이 느껴지면서도 그 다음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사실 정말로 마음 아파 (우는 것처럼 보이게끔) 울다가 그 다음 순간에는 그 울음기를 싹 가시고 까부는 게 말 그대로 어떤 기술적인 연기로서의 장인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연기도 쉬운 것이 아니지만 (그러니까 배우가 울 때 관객이 짜증나는 게 아니라 같이 울게끔 하는 연기도 얼마나 어려운 연기인가) 이렇게 자유자재로 감정을 컨트롤하는 건 또다른 영역인 것 같다.

나도 이제 그런 걸 해보고 싶은데 말이지.
그렇다면 정말이지 무언가에 매몰되지 않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결국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연기를 하고 싶은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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