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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요선 Oct 24. 2021

삶과 예술을 오래오래 사랑해야지

허수경의 시, 체홉의 갈매기, 영화 아사코 그리고 또


허수경 / 목련

뭐 해요?
없는 길 보고 있어요

그럼 눈이 많이 시리겠어요
예, 눈이 시려설랑 없는 세계가 보일 지경이에요

없는 세계는 없고 그 뒤안에는
나비들이 장만한 한 보따리 날개의 안개만 남았네요

예, 여적 그러고 있어요
길도 나비 날개의 안개 속으로 그 보따리 속으로 사라져버렸네요

한데
낮달의 말은 마음에 걸려 있어요
흰 손 위로 고여든 분홍의 고요 같아요

하냥
당신이 지면서 보낸 편지를 읽고 있어요
짧네요 편지, 그래서 섭섭하네요

예, 하지만 아직 본 적 없는 눈동자 같아서
이 절정의 오후는 떨리면서 칼이 되어가네요

뭐 해요?
예, 여적 그러고 있어요
목련, 가네요


1. 오랜만에 집에 가 지난 추억들을 들춰보았다. 10년 가까이 된 편지들이 나왔다. 그 중에는 내가 수신인이 아닌 편지들도 있었다. 누군가가 쓴 편지, 내가 쓴 편지들이었다. 왜 이게 나에게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 나에게 그 친구에게 전달해달라고 줬던 걸까. 나는 편지를 이렇게 정성스럽게 써놓고 왜 전달하지 않았을까. 혹은 (나의 이상한 편집증과 이상한 욕심으로 인해) 기껏 줘놓고 이렇게 쓴 게 뿌듯해서 내가 가지고 있겠다고 징징거렸던 걸까. 그때의 나는 그런 아이였으니까 말이다.



수신인에게 전달되지 않은 그 때의 그 글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정확하게 그때 전달되었더라면 지금 덜 아쉬울까.










2. 지이난 겨울에 작업한 단편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봤다. 나는 그때 타인에 대한 애정을 모르던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가 담긴 장면들이 아쉽지만서도 그 때의 내 시간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애틋했다. 물론 그 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들의 말과 생각과 마음, 테크니컬한 이슈, 시간, 날씨 등과 같은 모든 우연들이 만들어낸 순간들이다. 

예전에는 그래서 영화는 결국 '감독 예술'이고, 배우가 진정으로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내보일 수 있고 자유로운 건 무대 예술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거기다 연극은 정말 우연성의 총집합체이고, 심지어 휘발되기에 더 예술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 우연들이 계속 '거기 남아' 이렇게 다시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다. 그것만으로도 영화의 미덕이지 않을까. 이것만으로도 영화를 계속 작업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게다가 만드는 이의 시간의 흐름과 보는 이의 시간의 흐름까지가 계속해서 쌓이고 쌓여 결국 한 편의 영화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하나의 삶도 같이.







3. 부치지 못한 편지를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 친구에게 전달해야 하나? 그런데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미 시간은 지나버렸고, 많은 것이 변해버렸고, 그래서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별로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그걸 가지고 재료 삼아 글을 쓰거나, 연기를 할 것 같다. 그러니 이번에는 부디 제때 정확하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하겠다. 


삶은 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게 만들었으면서도 결국 여러 이유들로 그걸 부치지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그게 미안한지 선물로, 두 번째 기회로 예술을 준 것 같다. 이번에는 부디 잘 해보라고. 그렇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기에 다시 삶으로. 그리고 반복, 반복, 반복.

하지만 이 지난한 과정이 이제는 더이상 지겹거나 괴롭거나 고통스럽지 않고 더 삶을 잘 살아보게끔 한다. 예술을 사랑하는 것이 결국 삶을 긍정하는 것으로, 삶의 지난함과 고통과 슬픔과 즐거움을 잘 겪어내는 것이 다시 예술을 하게끔 하는 재료와 원동력으로. 


이 순환이 더는 슬프지 않다, 라고 쓰려다 슬프지만은 않다, 라고 고친다.
나는 이제 체홉의 <갈매기>를 (더가 아니라) '다시' 이해하게 되었다. 





"지쳤어요. 쉴 수만 있다면, 쉴 수만 있다면. 나는 갈매기죠.아니, 나는 배우야.
그 사람도 있네요. 괜찮아요. 그 사람은 연극을 믿지 않아. 내 꿈을 비웃었어. 얼마 안가서 나도 연극에 대한 믿음이 없어지겠지. 나는 넋이 나가버렸고, 사랑과 질투, 그리고 아기에 대한 걱정으로 항상 불안에 떨었어요. 평범하고 옹졸한 인간이 되어버리면서 연기도 형편없어졌어요. 나는 갈매기에요. 아니야, 이런 얘기 하려는 게 아니었어. 무슨 얘기하고 있었죠? 내 연기에 대해서.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이젠 진짜 배우에요. 무대 위에서는 취해요. 거기에 서면 내 자신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여기 온 날부터 걸었어요. 계속 걸으면서 생각했어요. 내 마음과 내 영혼이 점점 강해가는 걸 느꼈어요. 이제 알겠어요. 작가든 배우든 간에 우리 일은 명예나 성공이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견디느냐, 어떻게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믿음을 갖고 버티느냐를 알아야 돼요. 이제는 믿음이 생겼어요. 이제 더이상 고통스럽지 않아요. 더 이상 두렵지도 않아요. 내가 위대한 배우가 되면 꼭 와서 봐야 돼요. 약속할거죠? 지금은 늦었어요. 옛날에는 모든 게 아름다웠어. 기억나."






 


4. 사실 나는 그간 별로 살고 싶지가 않았다. 적극적으로 죽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리고 그런 순간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긴 하지만 늘 시큰둥했던 건 맞다. 굳이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굳이.

그러다 연기를 하게 되었고 남들처럼 무대 위에서 죽어도 좋다는 정도는 아니어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좋은 걸 해준다는 감각이 들었다. 연기를 통해 이전보다는 더 솔직해지는 연습을 하면서 솔직해질수록 인생에서 더 많은 걸 용서받고 더 많은 것을 선물받을 수 있음도 그때 알았다. 

그러니 편지를 쓰게끔 만드는 삶의 소용돌이에 감사해야지.

그 편지를 부치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작업해야지.
기회를 두 번 주는, 어쩌면 계속해서 다시 주는 삶과 예술을 오래오래 사랑해야지.

생각해보면 감사한 나날들이다.



     




이미지는 모두 현주 감독의 영화 <윤> 
소풍갑시다 / 허수경


그대가 나의 오라비일 때, 
혹은 그대가 나의 누이일 때 
그때 우리 함께 닭다리가 든 도시락을 들고 
소풍을 갑시다, 
아직 우리는 소풍을 가는 나날을 
이 지상에서 가질 수가 있어요, 
우리는 그 권리가 있어요, 
소풍을 가는 날, 
가만히 옷장을 보면 
아직 개키지 않은 옷들이 들어 있어도 
그냥 둡시다, 갈잎 듣는 그 천변에서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므로, 
돌아올 것이므로, 
그날 그 소풍에 가지고 갈 닭다리를 잘 싸고 
포도주 두어 병도 준비하고, 
그대가 내 오라비로만 이 지상에서 
그대가 나의 누이로만 이 지상에서 
살아갈 것을 서약은 할 수 없을지라도 
오래 뒤에 내가 그대를 발굴할 때, 
그대의 뼈들이 있을 자리에 다 붙어 있었으면 합니다, 
그 이름 없는 집단무덤에서 
우리는 얼마나 머리 없는 뼈들을 보았던가요 
울지 맙시다, 
작은 소녀가 웅크린 그 부엌 안에 작은 불을 켜며 
라디오를 켜며 서약한 
많은 나날들이 연빛 웃음처럼, 
소녀 또한 연등빛 웃음처럼 
저 폭약 많은 오후에 사라져갈지라도 
우리들이 먹은 닭다리가 
저 천변에 해빛에서 아득해질지라도 
오 오 소풍을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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