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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요선 Oct 28. 2021

배우는 대신 해주는 사람

연기를 배운다는 것의 의미

한동안, 평일 오전 거진 왕복 4시간을 오가며 열심히 들었던 화술 수업이 있다. 그 수업에서 배운 것은 결국 사람은 (캐릭터는) 그 말을 "하고 싶어서" 한다는 것이었다.

배우들은 대본을 보면서 고민한다.
- 도대체 이 사람은 이 말을 굳이 왜 할까? 도대체 왜? 왜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대체 왜? 
- 혹은 아니야, 이건 이 사람의 진심이 아닐 거야. 숨은 뜻은 뭘까?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뭘까?

그런데 꼬박 6개월 가까이 열심히 다녔던 화술 수업에서 알게 된 크나큰 깨달음은 뭐니뭐니해도 그 사람은 결국 그 말이 하고 싶어서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정의에 따르자면 배우는 결국 그 사람의 (캐릭터의) 말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배우가 그 사람의(캐릭터의) 말을 "대신 해주고 싶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친구의 기쁨과 슬픔, 외로움과 불행의 말들을 꼭 대신 해주고 싶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화술 수업 첫 시간에는 본인이 낭독하고 싶은 글을 가져오게끔 했다. 다들 그 글을 가지고 온 이유가 개별적으로 각자 있을 것이고, 그게 재미든 공포이든 호기심이든. 그리고 그걸 각자 확실히 가지고만 있다면 타인도 이를 느낄 수 있다는 깨달음의 수업이었다)

그러니까 배우는 그 사람이 (캐릭터가) 왜 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나는 그 말을 하고 싶다는 게 온전히 그의 의지라기보다는 어떤 것에 의해 그럴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쪽에 가깝다) 배우인 내가 그 말을 왜 대신 해주고 싶은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고민을 충분히 하기 위해 오히려 당분간은 다른 공부를 하고자 했다. 그래서 회사도 다니고, 돈 공부도 하는 것이다. 꼭 내가 대신 해주고 싶은 말을 가진 친구가 나타났을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까지 도달한다. 지치지 않고 호기심을 가진 채로 타인과 나와 세계를 이해하려는 지난한 과정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그간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귀찮아서, 내가 덜 우스워 보이기 위해 연기를 했었던 것 같다. 심지어 아무도 나에게 연기하라고 등 떠밀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아쉽지만 그때는 내 나름의 최선이었던 것 같기는 하다. 최선을 다 하는 것도 실력이니까 더 실력을 쌓겠다.  

2021. 03. 05. 금요일



+ 이때 나는 한 영화 속에서 '나'와 '영화 속 또다른 인물인 E를 연기하는 나'를 맡아 연기했다. '나'는 애초에 현실의 나에서 많이 가져온 캐릭터였다. 이 둘을 연기함으로 나는 '나'가 왜 그렇게 웃고 까부는지, 그리고 또 왜 우는지를 '해주고 싶어서' 했고(그러면서 현실의 내가 그것들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에 '하고 싶어서' 했다는 걸 이해했고), 그러면서 나와 다른 'E'는 왜 침묵하는지, 왜 무언가를 늘 빤히 보는지를 해 줄 차례를 앞두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녀를 대신해서 '잘' 해주고 싶다고 적었었다. 실제로는 '잘'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 마음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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