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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요선 Nov 08. 2021

우리가 만든 이야기를 통과해 우리는

연기를 배운다는 것의 의미

0. 아는 사람이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들인 영화를 개봉 시사회에서 보고 왔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장편을 염두하고 찍은 것이 아니라 그 감독이 지난 5년간 작업했던 3편의 단편을 다시 꿰어 만든 영화였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5년이라는 시간을 들였다는 것이 부러우면서도 아득했다.






영화는 처음부터 그렇게 찍기로 의도한 것이 아니기에 매끄럽게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한 창작자가 얼마나 그 이야기에 몰두했는지를 재차 알 수 있었다. 총 3개의 단편이 각각의 챕터를 이루고 있는데 (나는 편의상 1막, 2막, 3막이라고 부르겠다)이 순서는 창작순은 아니었다.

감독은 제일 먼저 영화의 2막을 촬영했고, 그 다음 1막을, 마지막으로 3막을 만들게 되었다고 했다. 각각 따로 만든 단편들이지만 엄마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엄마의 노동과 그녀의 병의 냄새가, 그리고 특정장소가 어떤 방식으로든 극에 (모아놓고나니) 등장한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이 감독이 일상에서 영화를 길어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어떠한 방식으로든'이 무척이나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처음부터 장편 작업을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의 장소 A는 하나의 장소 A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그냥 그 장소가 감독 개인에게 영향을 미쳤거나 중요하거나 흥미롭기 때문에 계속해서 등장할 뿐이다. 그러니까 노래방은 1막에서는 엄마의 일터였다가 2막에서는 엄마의 일터가 될 예정일지도 모를 곳이었다가 3막에서는 친구의 일터가 되는 식이다.

나는 이렇게 정보가 교란되어 균열 나는 이 틈새들이 이 영화를 모자 관계라는 어찌 보면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덜 전형적이게 만들고, 다른 차원으로까지 이야기를 확장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1막의 엄마와 2막의 엄마가 친구가 되어 만나는 장면은 단연 최고로 흥미로운 순간이었다.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서 나는 1막에서는 감독의 '진짜' 엄마가 엄마 역할을 연기하고, 2막에서는 '연기자' 엄마가 엄마 역할을 연기하는데 3막에서는 다시 '진짜' 엄마가 엄마 역할을 연기하게 되는군 정도로만 생각했다. 관객은 주어진 정보를 최대한 수용하고 그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영화가 세 편의 각자 다른 단편을 이어 만든 작품이라는 걸 나는 몰랐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는 실험적이지만 납득 가능한 정도의 실험이라고 생각했다. 배우를 달리 함으로, 그것도 감독의 '진짜 엄마'와 '배우'가 교차하며 엄마라는 역할을 연기함으로 '엄마'라는 것이 하나의 역할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3막에서는 (각각 다른 단편에서 '엄마' 역할을 했던 배우들) 이 둘이 친구가 되어 만나버리니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균열이 크게 생겨버리는 거다. 거기다 그 둘은 이전 이야기의 잔상을 가지고 있는 관객들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서로의 남편들에 이야기하고 이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노동과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인에게는 무척이나 특별할 수도 있는 남편의 외도와 그로 인한 고통이 여러 입으로 발화되고, 그럼으로써 갑자기 영화는 일상 가까이에서 일상을 기록한 '시네마 에세이'에서 모든 것을 조망하는 망원렌즈를 장착하게 된다. 그래서 인물과 이야기들이 갑자기 한데 섞이고 그러다 커지고 혼란스럽고 쾅.  


어떤 것도 고정되지 않고 계속해서 유동적으로 변하고, 그것들이 어딘가에서는 만나버리는 것을 보니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는 엄마에 대한 탐구가 역할에 대한 탐구로, 연기와 영화라는 예술로, 은유와 비약으로 가득찬 삶으로 확장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영화 밖, 어쩌면 현실.
 
배우로 참여하신 감독의 '진짜 어머니'와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다. 그들은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새롭게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마 그들이 이전과는 다른 삶을 각자 선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를 만들 수밖에 없게 한 시간들을 지나 그들은 이야기를 만들었고, 이제 또 각자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차례를 앞두고 있었다. 삶과 영화가 또 한데 섞이는 순간들이었다. 재미있고 사랑스러웠다. 앞으로 그들이 만들어나갈 또 다른 이야기를 응원한다.

+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호흡의 연기를 볼 수 있었다는 것도 이 영화의 미덕이다. 삶에 붙어있는 대사들(군대간 둘째 아들에게 쓰는 편지 장면, 장기 기증을 하면 금전적 혜택이 있다고 들었다는 말을 꺼내는 병원 장면, 전남편 생각하면 골치만 아프다고 넌더리치며 맥주를 까는 장면, 보험과 여행 패키지를 이번달까지 몇 개를 판매해야 한다니까 자기 전남편에게라도 들어달라고 해줄까 하는 친구에게 그럼 좀 들어달라고 해보라는 장면)이 그냥 쓰윽 하고 나오는 순간을 보는 것이 정말 흥미로웠다. 어순이 맞지 않는 문장이 슬그머니 등장하고, 민망해 할법한 순간이 생각보다 무던하게, 슬프고 괴로울 법한 장면이 농담처럼 나온 건 다 그 덕분이다. 보고 배웠다!






1. 오랜만에 H를 만났다. 우리가 작업을 함께 했었던 건 대략 3년 전이었고, 마지막으로 만난 시기로부터도 약 1년 6개월 정도가 벌써 지나있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의 시간은 다행히 이미 다 지나갔지만 그 당시에 대해 이야기를 할라치면 아직도 눈물이 날 정도로 나는 그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 참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나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게 되어서라고 말했다. 그 결과 나는 '돈을 좋아하고, 연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말을 하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아도 결국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 우리가 어떤 시간들을 통과했는지 그래서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쓴 글과 만드려는 영화를 통해 그 친구의 지난 시간들을 어렴풋하게나마 느꼈다.
 


카페를 나와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며 가을 밤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도 무척이나 좋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나는 "사람들은 결국 자기가 원하는대로 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삶의 시간들을 지나, 우리가 만든 이야기를 통과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삶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2. 이상하고 야릇한 밤이었다. 세계 최초 오르가즘 코치와 춤 추는 여자, 영상을 만드는 외국 남자, 시를 쓰는 여자들이 모였다. 모든 만남들이 그러하듯 어쩌다 우연히 만나 경복궁역 술집에 모였다가 또 어쩌다 우연히 청파동의 작은 바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에서 우리는 시를 읽고, 춤을 추고, 생명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청파동의 시 읽는 바, 지나간 세계



나는 바로 전 날 백신을 접종했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그 어느때보다 멀쩡하게 취한 상태였다. 수다와 호탕한 웃음과 놀랄 만한 경험들이 오갔고, 원하는 삶과 아직 만나지 못한 인연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통성명조차 하지 않은 사람과도 깊고 야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무언가를 만들고 싶고, 만들고 있고, 그럼에도 또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있기에 가능한 밤이었다.    

나는 완전히 솔직하지는 못해 자유롭게 춤추고 노래하고 시를 쓰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는 더 솔직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3. 단편 영화 작업을 함께 하게 된 동료들과 촬영지인 강원도를 오고가는 차 안에서 수다를 떨었다. 서로가 해왔던 작업들에 대해,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들에 대해, 앞으로 하게 될 작업들에 대해. 그리고 그 작업을 진짜로 하기 위해서 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건 또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집 안에서 단풍놀이 가능한 자본주의 대단함 체험한 날


결국 예술과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떤 건 절대 참을 수 없고, 어떤 건 하다보니 생각보다 괜찮고, 팔리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어떤 선택들을 해야 하고, 그러면서 돈은 또 어떻게 벌고 있고를 이야기하다보면 그 사람의 작업이 궁금해지는 법이니까.

우리는 서로의 작업을 진심으로 궁금해했고, 서로의 장르를 꼭 배워보고 싶어했다. 언젠가 모여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이 하고 있는 분야를 가르쳐주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생각만해도 재미있고 신날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이런 이야기들이 부쩍 재미있고 신난다. 삶과 예술을 같이 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그들에게는 삶도 예술도 무척이나 중요한지라 세계를 두 개 가지고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상은 전혀 부차적인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작업이 꿈의 영역만인 것이 아니니까.

나는 또 타인의 작업을 통해 내가 더 분명해지면서도 넓어질 수 있다고 느낀다.
타인의 작업을 통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더 명확하게 알게 된다.

그리고 점점 더 단박에 알게 된다.


"이건 내가 완전 좋아하는 분위기야", "이 문장은 정말 아름답네", "그 영화는 특히 그 지점이 좋은 것 같아", "어떻게 저런 호흡으로 대사를 뱉을 수 있지?"

그래서 내가 무언가를 어떤 이유로 좋아하는지를 더 정확하게 알게 되고, 심지어 더 다양한 방식으로 알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심리 테라피, 연기 놀이 중



그러면서도 타인의 작업은 어떤 지점에서는 결코 나와 만날 수 없다. 그러면 나는 또 그것들을 만든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왜 그것들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누군가가 보낸 시간들이 거기에 담겨있는지를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것을 만들면서 그 사람은 그 시간들을 통과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내 취향이 아니라 하더라도 저마다의 작업에는 의의가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내가 그 작품을 사랑하거나 좋아하거나 이해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폄하하거나 싫어할 수는 없게 된다.

그러니 더 많이 읽고, 보고, 듣고, 써야지, 하고 다짐한다.
좋아하는 것을 더 제대로 좋아할 수 있게 알려주면서도 편협해지지 않을 수 있는 건 아무래도 그 길 뿐인 것 같다.


맵플레이에서 추억 쌓기 중


이상 2021년 가을 대서사를 마무리하며!


- 2021년 10월 초부터 레이 배우 언니와  <맵플레이>
- 2021년 10월 9일, 10월 21일 양손프로젝트 10주년 기념 공연
- 2021년 10월 24일 얀피스 오픈으로 연기 놀이, 요가 수업
- 2021년 10월 28일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시사회
- 2021년 10월 30일 오토바이 클럽러들과 단풍놀이
- 2021년 11월 3일부터 <사랑에 대하여> 작업
- 2021년 11월 5일 이상하고 야릇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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