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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요선 Sep 14. 2021

우리는 내내

'그러다'가 '어쩌다'

요즘 나는 체중 감량 중이다.

10년 가까이 되는 인연을 정말로 정리하게 되어 실연과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간의 잘못된 식습관과 스트레스로 자포자기한 몸을 이제라도 다독이기 위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바꿈으로써 내 삶을 잘 꾸리기 위해서.

혼자 있으면 잘 되지 않아서 다시 얀니와 가까이 붙어 지낸다.

어제 밤도 퇴근 후, 얀니와 집 앞 공원을 걸었다.
걸으면서 우리는 늘 그렇듯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듣고 듣고 또 들어도 흥미로운 얀니의 이야기를 듣고, 묻고, 또 들었다.
그녀의 사랑과 글과 여행과 삶을, 일종의 메모 강박과 편집증을 발휘해 일대기를 그려가며 속으로 정리도 해보았다. 


"음..26살엔 다정한 남자를 만났군. 서른살 즈음에 평생 잊지 못할 인연을 만나 불같은 사랑을 하며 글을 썼네. 그러다 훌쩍 호주로 떠났군. 거기서 또 좋은 사람을 만났어. 그러다 다시 글을 쓰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군. 한국에서 어쩌다 착실히 돈을 벌고, 그러다 드라마를 쓰게 되었네. 그런데 그 일이 잘 풀리지는 못했고, 지금은 이렇게 또 그때와는 조금 다른 글을 쓰고 있군"

나는 그 '그러다'와 '어쩌다'를 이해하고 싶어서 계속 물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어떻게 만나게 됐어?"
"그런데 그런 남자랑은 왜 헤어졌어?"

"왜 호주에 갔어?"
"왜 호주에 안 돌아갔어?"

"어쩌다 그때 첫 번째 책을 내게 된 거야?"
"어쩌다 두 번째 책을 내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린 거야?"



얀니는 기억을 복기하며 최대한 자세히 말해주었지만 그래서 "응응, 그랬나보네"하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그러다'와 '어쩌다'를 아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여러 상황이, 어떤 우연이, 순간의 충동이, 평생의 꿈이, 혹은 착각들이 그 '그러다'와 '어쩌다'를 만들었을 것이므로. 


그래서 잠시 두려움이 생겼던 것 같다. 내게 남은 앞으로의 시간이 너무 아득했고, '그러다'와 '어쩌다'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무서웠다.

해남에서 안양, 김포, 대전을 경유해 서울과 경기로 떠돌던 10대,
늘 내가 있는 지금, 여기가 아닌 곳에 있고 싶어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던 20대 중반까지의 시간,
꿈과 희망과 실패와 좌절로 힘겨웠던 20대 후반까지의 내 시간들을 복기해보았다.  


"와, 내가 지금 서른인데 지금까지도 충분히 지랄한 거 같은데 앞으로 또 남았다고?"
"또 누군가를 만나고 또 헤어지게 된다고?"
"실패하고 아파할 시간들이 더 남아있다고?"

멍해있는 나에게 얀니는 늘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게 되어 있다고, 
그래서 더더욱 절망하거나 분노할 필요없이 그 시간들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고도 했던 것 같다.
(이때 그녀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공원 한복판에서 스쿼트를 했다)

나는 더이상 후회도 하지 말자, 고 다짐했다가
그래도 그때 더 잘해볼걸, 후회도 했다가
내가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 사람들,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 사람들을 차례로 떠올렸다.

내내 걸었다.




p.s.
20대는 꿈을 꾸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
함께 꿈을 꿀 수 있어서 즐거웠다.
이제 꿈을 이루는 시간을 만나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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