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며
내 옆 방이자 마흔 살에 드.디.어 가지게 된 자신의 방에서 언니는 최면술로 유명한 설기문 유튜브를 보고 있다. 8년 전 헤어진 남자친구를 다시 만나 보고 싶다며 '전생체험 하면서 다시 만나고 싶은 인연을 찾아갑시다' 최면을 듣고 있는 거다. 이럴 때면 10살 많은 언니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정말 가지가지 한다 싶다. 이런 건 숨길 법도 한데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는 게 귀엽기도 하다.
시큰둥해 하는 내게 언니는 불쑥 "너는 그럼 전 남자친구 안 보고 싶나?" 묻는다. 단순 명료하지만 꽤 답하기 어려운 난제와도 같은 언니의 질문들은 지난 2년간 늘 나와 함께 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때는 나를 죽지 않게 붙잡아 주던 사람이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큰 상처를 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도대체 어떤 거지? 질문해 본다. 결국,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답하곤 하지만.
"언니는 그 사람이 왜 보고 싶은데?" 이번엔 내가 묻는다. 언니는 명쾌하게 답한다. "같이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럼 나는 또 누군가가 그립다는 건 그 사람과의 대화가 그리운 것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하나의 세계를 알게 된다.
얀니와의 이 끝없는 대화가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글쓰기를 원래도 좋아했지만 쓸수록 빠져들어 아주 재미있게 썼다. 연기를 처음 해 본 언니가 너무 재미있다며 자꾸 나와 연기로 교감하려 들길래 내가 눈을 피했던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언니가 내 눈을 피했다. 몇 개의 글을 쓰면서는 여전히 많이 울었다.
나의 겁 없고 이상한, 그리고 귀여운 X 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언니는 나에게 스스로의 삶에 품위를 부여하는 법을, 그리고 그건 본인과의 약속을 잘 지키고 일상을 잘 보내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몸소 가르쳐주었다.
언니가 몸빵하며 먼저 돌파해 나간 10년 덕분에 나는 이제 막 이십대의 마지막을 무사히 통과했다. 그간 겨우 버티기만 했다고 자책했는데 그 시간들 덕분에 나 역시 이렇게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었다. 나의 이십대를 한 번은 꽉 껴안아 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 있어 다행이다. 지난 시간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했으니 이제 나는 다음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어디로든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