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신령님이 보고 계셔>를 읽고
내 앞에는 이제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인턴이 앉아있다. 이 인턴의 얼굴이 요즘 들어 급격하게 좋지 않아서(너무나도 우울해보여서), 실은 그 인턴이 속해 있는 팀의 팀 리더로부터 매니징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인사팀으로서 공식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사실 나도 좀 부담스러워서, 편한 분위기에서 좀 캐주얼하게 이야기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떠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별 말 안했는데도 그 인턴은 눈물을 한 방울 주르륵 흘렸다.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이미 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은 친구 앞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실 나는 내가 무척이나 잘 울면서도, 그 눈물에 큰 감흥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한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교를 막 졸업한 친구가 살면서 거의 처음으로 본인이 무언가를 못 한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겠지. 취업부터 자아실현까지 그 나잇대에 할 법한 고민들 당연히 힘들겠지. 그런데 뭐...그거야 뭐...그게 뭐.." 시큰둥한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러다보니 그 친구의 상황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천하태평만은 아니라는 것, 생각보다 더 극심한 마음의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앞에서 나는 내가 듣기 싫었던 것처럼 그 친구도 듣기 싫을 것이 분명한 '하나마나한 소리'를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대화가 꽤나 민망하여, "제가 조언을 하는 건 절대 아니고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하는 거에요"를 엄청나게 강조했다.
친구는 본인이 이 회사에서 정규직이 되지 못할까봐, 본인이 잘리다시피 나갈까봐 너무 걱정된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본인은 인정받지 못하는 게, 사실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하는 것도 싫은 것 같았다. 나는 이 회사에서 정규직이 된다고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편안한 게 좋은 것 같다고, 그리고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가 지금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는 그 친구에게는 가닿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러다 자연스레 작년에 내가 회사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그 회사에서 실수하고, 못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으니까 더 위축되고, 그러니까 더 하기 싫어서 더 실수하고의 악순환을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런 경험이 있으세요? 지금 저도 그래요."라고 말했다.
지금은 그때와 완전히 상황이 달라져(이직했다) 지금은 별 일도 아니게 된 그 일이, 완전 깔끔하게 지워진 그때의 기억들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친구는 연휴 동안 본인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 무엇일지를 고민해보겠다고 하고 우리는 자리를 떴다.
나는 조언을 성공한 어른이 된 것 같아 나름 내가 기특했다. 그 친구가 본인에게 좋은 선택을 하기를, 그리고 혼자만 결정하면 되는 일은 인생에서 그리 난이도가 높지 않은 일이기에 꼭 좋아지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는 퇴근 후 요가를 하다 아직은 별 일이 되지 못한 다른 일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울어버렸다. (나는 하도 많이 울어서 남몰래 우는 법을 터득했다) 이 모든 게 허탈하거나 짜증나거나 씁쓸하거나 그렇지는 않았고, 언젠가 이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말할 때 아무렇지 않게 되겠지? 누군가에게 안도가 되는 경험이 되겠지?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예전에는 울음이 남들 보기 전에 빨리 멈추기를 바라며 나 스스로를 자책했다면 이제는 속으로 되뇌인다. 이게 다 언젠가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그래서 생각지도 못했던 또다른 이야기에 가닿게 될 수도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울음은 그쳐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