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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요선 Oct 18. 2021

서른 살의 일기

'그 일들'에 대해 더이상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생각하기

그 일들에 대해 글을 쓸라치면 "그래, 지금 이 순간에만 쓸 수 있는 글이니까 일단 써보자"하는 다짐과 "이걸 어떻게 정리해야 할 지 알 수 없어 도대체 뭘 쓸 수 있을까"하는 혼란이 공존한다. '그 일들'은 어느 때는 엄마였거나 가난이었거나 나의 자격지심이거나 했고, 지금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이별이다.

글을 쓰거나 연기를 할 때면 언제나 '그 일들'은 내 발목을 붙잡았다. 결국 나라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 내가 가진 감정과 감각과 편견을 이해하고 그걸 이용하든 이용하지 않든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그 일들을 꼭 되짚고 지나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언젠가부터 인생의 중요한 많은 순간들을 글을 쓰지 않고 지나왔던 것 같다. 더이상 생각하기가 너무나 괴로워서. 그러다보면 시간이 어느덧 지나가 다른 일들이 중요한 시기가 찾아왔다. 그것들이 반복되다보니 또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고, 또 나도 이제는 나이를 먹었는지 "그래, 뭐 이만하면 됐지, 뭐."라며 안주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정말로 그렇게 되어버리면 내 삶에서 뭐가 남게 되지?

결혼? 회사 생활로 인한 돈? 그 이후 카페 창업?

내 동력은 어쩌면 '안주하지 않는 힘' 그 자체였던 것 같은데 말이지.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몰라서 혹은 너무 많이 원해서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내 연기 선생님은 나에게 그게 나의 장점이라고 했었다.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힘을 내는 건 정말 대단한 에너지라고.

그리고 이제 다시 힘을 내보려고 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이 싫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다시 힘을 내려는 이유는 지금이 싫어서도 아니고, 더 좋은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도 아니다. 그럴수록 마음만 급해서 조급해지고, 당도한 그 곳에 실망하리라는 걸 이제는 안다.

기대도 비관도 없이 가 보면 이번엔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은 가지고 다시 시작이다.
이제 진짜로 내 삶이 시작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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