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요선 Nov 11. 2022

자기 자신과의 좋은 대화

당분간은 연기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유는 내가 먼저 바뀌어야 연기가 바뀔 것이고 그러니까 우선 나를 바꾸는 작업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내가 연기를 통해 하고 싶은 게 아직은 나를 위한 것이다보니 직업 배우로서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연기가 너무 하고 싶어져서 수업을 신청하게 되었다. 연기가 갑자기 너무 하고 싶었다. 책임감이 높아지는 곳으로의 이직에 수습기간에 정신과 진료에 심리 상담에 책 출간에 글쓰기 수업에 운동하는 와중에 연기 수업을 추가하고야 말았다.


나는 연기를 통해 결국 뭘 하고 싶은 걸까. 이게 취미 생활 너머가 될 수 있을까.



1. 이 수업은 배우의 연기를 체화하는 작업을 하는 시간

- 만져보고 느껴보는 시간. 그 배우와 나 사이의 차이점을 느끼는 시간. 또 내가 저걸 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해보는 시간.


2. 배우가 하는 일은 못 해도 되는 일이다

- 계속 탐구하고 불안함을 가지고 가는 게 배우의 일이다. 시도해보는 것. 그 순간을 즐기는 것! 느끼는 것이 배우의 일이다.


3. 직업 배우의 일

- 물론 직업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스킬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최종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다. 표정, 톤, 몸짓, 강도, 변화로 소통을 해야 한다. 이 연기의 형식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4.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 배우의 개성과 매력에 대해서 주로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기본이 중요하다. 컨티뉴티를 지킬 줄 아는 정확함, 화술, 준비된 몸 등이 이에 해달할 것이다.


5. 전종서는 두 명이 필요하지 않다

- 전종서가 무척이나 매력적이지만 우리가 전종서가 될 수도 없거니와 될 필요도 없다. 전종서를 통해 '아, 저렇게 자신을 자유롭게 드러내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정도의 영감을 받으면 된다. 황정민, 이병헌, 박정민이 되고 싶은 순간 배우의 길은 틀어진다.


6. 이 수업에서 본인이 기대하는 것?

- 나는 연기를 내가 자유로워지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결국은 자유로워지고 싶다.


이를 위해서 이 수업에서는 우선 내 욕망을 들여다보고 싶다. 이제까지는 내 욕망을 위장하고 우회했는데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진짜 내 욕망이 뭔지 알고 싶고, 그걸 표출해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어려운 말이 아니라 이번 수업에서 내가 탕웨이 연기를 해보고 싶은 이유는 '예뻐서'이다. 예전에는 이런 말들을 수준이 낮다고 생각해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다음은 투박한 나의 제스처들을 세련되게 다듬고 싶다. 직업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싶다.


7. 영감을 준 배우 또는 뜻밖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

- 메릴 스트립. 배우가 수동적인 역할이 아님을 알려주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그 역할을 맡음으로써 아주 약간 다른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전도연. 이 배우가 하는 대부분의 역할은 내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부류의 인간인데 전도연이 연기하면 납득이 간다. 술집 여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보인다.


8. 이 수업의 궁극적인 목표

- 철학적인 영감을 얻는 것이 이 수업의 목표이다! 전도연과 에밀리 왓슨과 장선을 보면서 '아, 비극 앞에서 인간은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겠구나' 영감을 받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표현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연기는 결국 자기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 소통을 잘해야 한다. 자기 스스로를 현명하게 끌고 나갈 수 있다면 연기가 달라지고 연기를 잘 할 수 있다. 자기 자신과 좋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9. 솔직함

-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면 평가 받지 않는다. 그런데 자꾸 자기를 숨기면 연기로만 '평가'받게 된다.



결국 스스로를 잘 알고 그걸 솔직하게 잘 표현하는 것이 연기에서도 관건인 것 같다.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나를 잘 알아가는 시간으로, 그리고 그걸 남들 앞에서 적절하면서도 솔직하게 표현하는 시간으로 연말과 연초를 보내야지. 솔직하면 할수록 더 많은 걸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 솔직하면 평가받지 않고 응원받을 수 있다는 말을 잘 기억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알고도' 할 수 있을까: 내가 욕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