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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요선 Jul 18. 2018

나는 절대로 그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내가 되기

             


1. 맨 처음 배우를 꿈꾼다고 했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가 있다. 바로 "배우는 늘 평가받고, 늘 선택받아야 하는 직업"이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물론 당연히 누구나 평가받고 선택받는다. (그러니까 배우라는 직업이 엄청나게 특별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결국 무대 위에서 '몸빵'하는 게 나일 때, 모두가 나에 대해서 한 마디쯤 거들 때 '배우로서 평가받고 선택받아야 한다는 말'의 무게를 실감하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평가받고, 언제나 선택받아야만 하는 입장인 일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 때마다 순간순간 주눅이 든다. 특히나 여자라는 성별을 가지고 이 일을 하려고 시작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다른 어떤 직업인들보다도 가장 쉽게 판단받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니 갈피를 못 잡겠는 건 둘째치고 개인적인 부분들(피지컬, 외모, 성격 등등)과 결부된 피드백을 받아야 할 때는 당연히 열도 받는다. 어디까지가 나의 연기에 대한 것인지, 어디부터는 잘못된 피드백인지 경계가 모호하여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2. 그러니까 단도직입적으로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절대로 누군가가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가치관과 기준 하의 평가에 순응하고, 기회를 잡기 위해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불쑥불쑥 한다. 정말로 오래 걷고, 내가 원하는 길로 가기 위해서는 말이다.


다음은 이 다짐을 굳건히 지키기 위해 내가 명심해야 할 목록들이다. 한 감독님의 워크숍 뒤풀이 때 들었던 말이다. 이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이제 시작하는 배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라고 하셨다.


- 즐겁게 살기
무언가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 집중하면서 무수히 많은 나의 가능성들을 발견해내기.
매일 조금씩이라도 운동을 하고, 취미 생활을 가지고,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연기 이외로 이루어진 나의 세계를 잘 만들어 놓기.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안락한 공간과 사람과 일들을 만들어 놓기.


- 동료들을 만나기
누군가에게 의존하지는 않되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작업 동료들 만나기.


- 나를 아끼기
나의 일이 마음을 쓰고, 나를 쓰는 일임을 자각하기.


- 잘하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주도하는 것이라는 것 유념하기
잘하는 사람은 이미 너무 많기도 하고, 잘한다는 것 자체에는 한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주도하는 것이다.


- 공부하기

연기하는 사람은 어떻게 보면 창작자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

'지금'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알기 위해 공부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내가 구현하고픈 것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기.                                                  

특히 여자 배우들, 여자 캐릭터에겐 매우 필요해지고 있는 덕목이다.


3. 연기를 막 시작했을 때의 나는 '내가 솔직해지는 방법으로서의 연기'를 했고, 거기에서 해방감을 얻었다.

이제까지 나의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예민함과 불안함 등이 오히려 여기에서는 강점으로 빛을 발하고

그간 내가 숨겨왔던 나의 감정들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솔직해질수록 많은 것들을 허용받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시간들이었다.

이제는 '주도하는 작업자로서의 연기 방식'을 고민해 보고 싶다.

배우의 연기로 인해 많은 것들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어떤 깊이와 넓이를 구현해낼 수 있는지에 관해 창작자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공부와 기록을 할 계획이다.



4. 내가 될 수도 없는, 그리고 사실 되고 싶지도 않은 것들에 연연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십 대 초반에 겪었던 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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