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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요선 Jan 23. 2023

엄마 이야기를 썼다

나의 X 언니 '서로를 깨문 자국 위에서'

우리는 둘 다 절대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같이 꽃병을 깨고, 피아노를 부수고, 차까지 부수려 했다. 엄마가 내 동방신기 브로마이드를 찢어버리고 휴대전화를 박살내면 나는 이영자 그릇으로 유명한 엄마의 비싼 그릇을 깨뜨리고 아끼는 꽃을 짓이겨버리는 식이었다. 오빠는 이런 우리를 보면서 둘 다 똑같다고 했다.



다른 엄마들이 동화 《신데렐라》를 딸에게 읽힐 때, 엄마는 무려 페미니즘 동화책 《종이 봉지 공주》를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내가 ‘백요선’이라는 아주 특이한 이름을 가지게 된 데에도 엄마의 역할이 컸다. 할아버지는 딸 이름이니 알아서들 지으라 했다는데 엄마가 딸 이름도 지어주셔야 한다고, 남자들만 쓰는 ‘돌림자’도 꼭 넣어달라고 해서 나의 이름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을 때면 다른 애들처럼 무난하고 예쁜 이름을 가지지 못했다는 생각에 엄마를 원망하곤 했다. 맹랑한 며느리가 괘씸해 할아버지가 일부러 내 이름을 이상하게 지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런 엄마 덕분에 일찍부터 가만히 집에 있기보다는 다양한 모험을 떠날 수 있었다.

<나의 X 언니, 백요선>





수치심을 무릅쓰고 엄마 이야기를 썼다. 적어도 나에게는 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는데 왜냐하면 그간 엄마가 나의 약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에게 불우한 10대를 선사한 가해자이자 자기 인생의 피해자였고, 삶이 고통으로 이루어졌단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자 동시에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지적 호기심을 선물해 준 사람이었다. 이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보자는 마음으로 썼다.


엄마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쓰려니 잊고 싶었던 기억들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기억들을 꾹꾹 눌러 담아 썼고,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내 입장에서만 썼다. 해방감은 들었지만 내 입장에서만 쓴 글이 좋은 글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어 고치고 또 고쳤다. 엄마의 입장과 우리를 둘러싼 객관적인 현실을 염두하면서 내 입장에만 매몰되지 않을 수 있었다.  



출간 원고이기 때문에 글의 주인공에게 허락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글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엄마의 반응이 걱정되었다. 이런 글 쓰지 말아 달라는 최악의 수까지를 상상하면서. 엄마는 객관적으로 글에 대해 평가해 주면서 솔직한 글이니 미덕이 있다고 해주었다. 쓰고 싶은 대로 쓰라고 응원도 해주었다. 앞으로 계속 나아가라는 응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원고를 넘겨야 하는 날까지도 엄마에 대한 글을 고치고 또 고쳤다. 누군가는 이 부분이 엄마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 부분을 빼지는 않았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엄마에 대한 설명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했지만 더하지는 않았다. 전체적인 글의 구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검열한 부분은 '내 입장만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그렇다고 '글의 솔직함이 훼손되는 것은 아닌지'였다.  




그리고 드디어 책이 나왔다. 나만의 특수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분들이 본인 이야기인 줄 알았다고 해주었다. 신기했다. 우리의 삶이 저마다 개별적이지만 보편적이기도 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떻게 이렇게 솔직하게 쓸 수 있었는지도 많이 물어보셨다. 그간 하도 많이 말하고 또 말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답했다. 복받쳐서 어쩔 수 없이든, 서툴지만 용기내서든 많이 꺼내놓다 보니 절대로 쓸 수 없다고 생각했던 엄마에 대해서 이제는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물론 엄마 이야기를 썼다고 해서 내가 인생의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아직은 쓸 수 없는 또 다른 약점들이 내게 남아있다. 그 실타래들은 다시 한번 시간을 들여 찬찬히 풀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건 그래도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음 약점을 쓰기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또 다른 약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때까지 읽고 쓰고 말하기를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래서 엄마가 말한 것처럼 꼭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나아가보자고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낸다.     







독립서점 '게으른 정원'에서 북토크를 합니다. 정성스럽게 리뷰 적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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