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요선 Aug 11. 2023

5대에 걸친 부자되기보다 더 어려운 일

애착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

거의 한 달 만에 상담을 재개했다. 상담 선생님께서 긴 연수를 떠나시고, 코로나에까지 걸리셨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에게는 또(!) 많은 일이 있었다. 이사를 했고, 몇 번의 데이트를 했고, 그러면서 또 헛된 기대도 했다가 실수도 했다. 술을 마시고 과식을 반복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전처럼 자책을 많이 하지는 않았고, 작심삼일일지라도 계속 내 행동을 수정해나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감상에 젖거나 울지 않았다. 그래도 전보다는 덜 요동치기에 나의 예민함이 드디어 사라진 건가 싶었다. 약간 서운하기도 하고 안도감도 들었다. 상담 시간에 이 덤덤함을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랜만의 상담 시간. 덤덤함이 무색하게 엄청나게 울었다. 머리가 띵해지고 눈이 부을 정도로 많이도.


상담 선생님은 오랜만의 상담을 준비하며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을 시도해 보기로 하셨다고 했다. 늘 그간 있었던 일을 분석하고  '자기 처벌'까지 끝내고 오는 나를 보며 상담이 필요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어쩌면 내가 깊이 생각하지 않기 위해 정리를 해오는 건 아닐까 싶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힘들어하시는 과식, 알코올, 관계 문제 모두 애착과 깊게 관계되어 있어요."

선생님은 애착 이야기를 꺼내어 들었다.


나는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면 무언가를 시켜 먹는다. 맛있게 먹는다기보다는 혼자 다 먹지 못할 양을 시키고 많이 먹다가 버리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당연히 자책한다.


"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뭔가를 먹는 것 같아요."

나는 주눅 든 채로, 그렇지만 나도 안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저도 제가 왜 이런지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나아질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맞아요. 뭔가가 채워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먹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되게 순수한 행동이죠."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주문해서 바닥에 늘어놓고 뭔가를 먹고 있는 나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다. 나는 일부러 불을 켜지도 않는다. 컴컴한 곳에서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먹고 있는 나. 그리고 무표정으로 쓰레기봉투에 그것들을 담는 나.


"요선 씨는 한 번이라도 채워져 본 적이 있으세요?"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그래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한 번이라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 그 경험을 자양분 삼아 충족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어차피 다른 사람이 채워줄 순 없는 거 아닌가요? "

나는 좀 도전적으로 질문한다. 그러니까 알아서 혼자 수습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다들 그러잖아요.

다들 그러라고 하잖아요. 그렇게 하겠다는데도 혼나는 거 같아서 억울했던 거 같다.


“이상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성숙하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누군가를 만나야 된다고들 하잖아요."

내가 뱉은 말이면서도 완전히 동의하지만은 않는다. 남한테 징징거리고 싶다는 말은 아니지만 저 말이 자기 혼자 잘난 척한다고, 그래서 재수 없다고 평소에 생각해 왔다. 그렇지만 일단 다들 그렇게들 이야기하니까. 그러니까 나도 일단 그렇게 말해본다.


"아니요. 애착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절대로 문제를 혼자 해결할 수 없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쫌 단호하게 답한다.


나는 쫌 깜짝 놀란다. 마음 굳게 먹고 내가 나를 열심히 구해보려는데 혼자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니.


"아주 의미 있는 타인을 만나야만 해결할 수 있어요. 안전기지가 되어줄 사람."
"그런 사람이 누구에요?“
"이론적으로는 5대에 걸쳐 안정적인 관계를 경험해 본 사람이에요."

나는 여기서 아예 말문이 막혔다. 5대에 걸쳐, 안정적인 관계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니.

"5대에 걸쳐 부자인 사람보다 힘든 것 같은데요! 저 지금 완전히 절망했어요!!!”
"네, 엄청 힘들죠. 특히나 우리나라는 가부장적인 유교 문화를 가지고 있고, 전쟁까지 경험했으니까요."
"5대에 걸쳐야 한다는 건 유전적으로 영향이 있기 때문인가요?“

"문화에 가까워요."


그 사람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 아버지의 어머니와 아버지, 어머니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 위까지 거슬러 올라가 5대에 걸쳐 안정적인 문화를 경험한 사람을 만나야만 애착 트라우마가 해결될 수 있다니. 심지어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기까지 해야 하다니. 이건 그냥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아 나는 심난해졌다.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구김살 없이 자란 똑똑한 친구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선생님은 또 그런 사람들도 아니라고 한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보수적이고 두려움이 많다는 점에서.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요.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조금씩 채워나가는 수밖에 없어요. 내가 누군가를 믿을 수 있구나. 내가 사랑받을 수 있구나. 조금씩 깨달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머리가 띵해질 때까지 울었다. 하도 많이 울면 개운해지지도 않는다. 그냥 머리가 아프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그런 사람이 누군가에게 되어주자고. 그렇게 힘든 일을 해보자고.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그 일을 해보자고. 아직 결혼도 육아도 미정이지만 육아를 한다는 가정까지 해보며, 5대에 걸쳐 안정적인 경험을 해 누군가의 안전기지가 되어줄 만한 친구를 상상하기까지 했다.


선생님은 상담이 그런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해 보는 연습의 장이라고도 했다.


“요선 씨는 모든 관계에 리밋이 있다고 이야기하시잖아요. 아무리 좋았던 관계여도 끝이 있다고. 그런데 상담자와 내담자야말로 언젠가 헤어지는 관계예요. 이별을 함께 준비하고 이별을 맞이하고. 그렇지만 헤어지더라도 연결되어 있는. 그런 걸 같이 해봐요. 지금 우리는 헤어지면 그냥 끝인 관계에요. 늘 거리를 두고 이야기하는 거 같아요. 요선 씨 앞에 벽이 있는 거 같아요. 접촉하는 거 해봐요, 우리“


끝나도 끝나지 않는 관계.

연결되어 있는 것.

기대하는 것.

안전기지.


있다고 믿어보기로 용기를 내본다.

이거는 정말로 용기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