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사람 Oct 07. 2021

병아리

10살의 기억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교문 앞에서 병아리와 메추리를 봤다. 아저씨라기에는 늙었고 할아버지라기에는 아직 주름이 덜 진-그냥 병아리 아저씨라고 불렀던-사람은 병아리 한 마리당 500원, 메추리 2마리에 500에 팔고 있었다.


그 앞에 옹기종기 모인 애들 눈앞에서 아저씨가 병아리를 한 움큼 쥐었다가 풀어 그들은 털만 빼면 당시 내 새끼손가락 크기만 한 날개를 퍼덕이며 노란색 탱탱볼 튀기듯 툭툭 떨어졌다. 그것이 그 병아리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비상이었으려나. 불쌍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한 마리 사서 키워주고 싶었으나 아빠는 동물이란 동물은 질색팔색 하며 얼굴이 시뻘게지셨고, 혼자 사다가 기르기에는 준비물 가격을 거짓말 쳐서 얻어낸 거스름돈 몇백 원이 전부였던지라 제일 아파 보이는 병아리 한 마리를 집어 들어 ‘조금만 참아’하고 속삭여주고 오는 게 다였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상황은 조금 달라졌다. 9살에서 10살로 한 자리 숫자가 두 자리 숫자로 바뀌었으며, 복도에서 얼핏 본 4학년 언니 오빠들이 책상 위에 무릎 꿇고 앉아 혼나는 모습을 보고 고학년에 되는 것에 대해 겁을 먹기 시작했다. 아직은 많이 덥지 않았던 3학년 초여름. 그날도 교문 앞에는 병아리 아저씨가 나와 있었다.


어느 날부터 메추리는 보이지 않았고 병아리는 한 마리에 1000원이 되었다. 빠른 물가상승이 다 죽어가는 병아리에도 적용된 탓에 조금은 망설였지만 10살의 나는 용돈을 일주일에 2천 원이나 받아서 천 원 정도는 저 보드라운 털에 투자해도 좋을 듯했다. 삐약- 소리 한번 우렁차게 내지르는 병아리를 고이 모셔 친구네 집 옥상에 박스로 집을 대충 만들어 넣어두었다.


처음에는 박스의 뚫린 면이 하늘을 향하도록 했다가 혹시 모를 비바람에 추워하거나 산책이 하고 싶을 수도 있는 병아리를 위해 박스를 옆으로 눕혀놓았다. 병아리와 같이 팔던 500원짜리 먹이는 박스 안에서부터 시작해 그 근방에 고루 뿌려두었다. 집을 다 완성하고 병아리를 두고 가려는데 애가 비실거리며 고개를 잘 못 가누는 것 같았다. 우리는 친구 부모님이 없는 틈을 타 친구 집 전기장판 위에 병아리를 올리고 물에 레모나 비타민 가루를 옅게 타 귀이개로 떠서 부리 안으로 흘려보냈다.


부리 주변에 묻은 비타민 물은 노란 털에 섞여 지저분한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털을 콧잔등에 비비며 아기 새의 귀여움을 만끽할 때 약간 새콤한 냄새가 났다. 비타민 탓인지 따뜻한 장판 탓인지 알 수 없지만 이내 삐약- 소리가 다시 우렁 차졌다. 친구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옥상으로 올려진 병아리는 우리를 향해 제 몸짓보다 큰 소리로 삐약- 삐약-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날 저녁 우악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 탓에 다음 달 병아리가 차갑고 딱딱하게 죽었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조금은 무서웠으면서도 태어나 처음 경험해보는 죽음 앞에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쉬는 시간마다 읽었던 만화 주인공처럼 전화로 충격적인 일을 전해 들었을 때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지거나 전화기를 놓치는 등의 어떤 제스처를 취해야 할 것 같았다. 미끄럽지도 않은 전화기를 손에 힘이 빠진 척 바닥으로 떨구었다. 떨어진 충격으로 끊긴 전화를 다시 들어 내일 해 뜨면 같이 묻어주러 가자는 약속을 한 뒤 생각보다 슬프지 않음에 혼란스러워했다.


 병아리를 묻어 준 후 이틀이 지나 너무 보고 싶어서 친구와 함께 다시 땅을 파고 병아리를 꺼내보았었다. 동네 놀이터 미끄럼틀 그늘 아래 묻어주었었는데, 당시 문방구 앞에서 100원짜리 뽑기로 뽑은 곰인형이 붙어있던 파란색 주머니에 고이 넣어 함께 묻었었다.


땅을 파자 파란 주머니 가장자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주-욱 잡아당기자 약간의 흙의 무게감에 대항하여 생각보다는 쉽게 주머니를 빼내었다. 살짝 주머니를 열어보기에 겁이 났던 나는 친구에게 주머니를 넘겼다. 제대로 못 보고 다시 묻어주었지만 얼핏 보인 병아리의 눈이 HB 연필로 잔뜩 칠해 놓은 교과서 한켠의 낙서와 같은 색처럼 보였다. 아무리 덧칠해도 더 깊어지지도 진해지지도 않고, 어쩐지 힘이 없어 보이는 형편없는 색이었다.


병아리는 내 바램과는 다르게 그다지 행복한 곳으로 가지 못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미안해졌다. 그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하나님에게 "우리 병아리가 천국가게 해주세요. 아멘"이라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는 하루 만에 죽어버린 병아리에게 사죄하는 의미로 촉촉해진 눈을 있는 힘껏 꽉 감아 눈물 한 방울을 흘려보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