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 원더랜드 오타쿠걸 3장 : 지속가능한 덕질을 위해 2
지금까지 덕질에 대한 순기능, 긍정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다루었다면, 이번 챕터에서는 다소 어두운 면이나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도 조금 이야기해보려 한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경제권은 점점 확대되고 있으며, 전 세계가 팬덤 소비에 주목하고 있다. 원소스 멀티유즈와 미디어믹스, 팬덤이 가진 구매력을 노린 라이선스, 관련 시장 등 파급 효과도 크다.
덕질로 인해 생성되는 경제권을 보면, 이미 소비 시장은 많은 부분이 덕질과 얽혀있다.
아래 도표는 '귀멸의 칼날'이라는 콘텐츠 IP를 둘러싼 경제권을 설명하고 있다. '귀멸의 칼날'의 2020년 추산 경제 규모는 약 1조 엔. 서적이나 방송, 그 와 관련된 음반/영상 상품 외에도 게임, 공연, 이벤트 등 직접적으로 콘텐츠와 관련이 큰 분야 외에도, 상품화만으로 9000억 엔 규모이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뿐만이 아니라 콘텐츠 IP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낮은 업계의 매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하나가 경제 사이클에 적지 않게 공헌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오타쿠 대국이다 보니, 한층 더 덕질과 관련된 시장 분위기가 부드러운 것도 있지만, 덕질 자체가 예외적인 소비 형태에 가깝다.
일본의 소비는 오랫동안 위축되어 있었다. 지금도 사회 분위기는 크게 변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웬만한 일에 지갑을 열지 않는다. 장래적으로 사회의 생산과 소비를 담당할 Z세대는 물욕이 없고 기성세대보다 더 돈을 쓰지 않는 세대로 평가되고는 한다. 그런 와중에 덕질과 콘텐츠 상품만큼은 호황이다. 계속된 침체 속에서 오타쿠들의 소비 행태, 그들의 인터넷에서의 확산력을 보면 더 이상 소비자로서 무시할 수가 없게 된다.
일본 사회와 기업들이 이러한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활용하려 하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본만큼 덕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는 않지만, 한국도 덕질에 기대고 있는 부분이 적지만은 않으리라 추정해 본다)
그렇다면 최애 소비 중심의 덕질 트렌드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문화 콘텐츠계가 살아있고 계속 발전하는 이상, 무언가를 덕질하는 것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작금의 헌신적인 소비는 마치 썰물이 쓸려나가 듯이 어느 순간 갑자기 빠져나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기존의 소비 행태만 봐도 약 10년 단위로 그 가치관이 눈에 띄게 바뀌지 않는가.
물론 덕질 시장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유지되기를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있지만, 사회 풍조나 기술의 변화 등 거시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건강한 시장 생태계를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덕질과 관련된 소비가 급격한 증가를 보이는 한편으로, 덕질 피로(推し活疲れ)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서로 경쟁하듯 소비하고, 충분히 소비하지 못하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며 감정적으로 지치게 되는 상태를 추로 칭한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것은, 과도하고 무분별한 확장으로 소비를 부추기는 콘텐츠 쪽에서도 큰 책임이 있다. 좋아하는 마음을 인질로 경쟁을 부추기고 무리하게 객단가를 부풀리는 형태는 그저 착취일 뿐이다. 이러한 착취는 결국 팬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콘텐츠의 생명을 스스로 갉아먹기도 한다.
콘텐츠를 만들고 제공하는 입장이라면, 덕질이란 오타쿠의 일방적인 애정이 끝나면 그 관계가 끊기게 된다는 것을 늘 인지하고, 그 애정이 지속 가능한 것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덕질 피로의 누적이 덕질뿐만이 아니라 콘텐츠 산업 자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의 콘텐츠가 성장해 나가는 데는 많은 사람들의 지원과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노력의 시간이 거듭될수록 오랜 시간 관여해 온 사람들은 소위 고인물화 되어가기 쉽다. 고인 물은 팬뿐만이 아니라, 제작 측에 관여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대상에 대한 애정이 큰 만큼,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고인물화의 문제는 그들이 거듭한 오랜 시간, 그들만이 알고 있는 암묵적인 내용들이 콘텐츠의 전제 조건으로 깔리기 때문이다.
뱅드림 시리즈, 신 일본 프로레슬링 등 다수의 오타쿠 대상 IP를 보유하고 운용하는 일본의 기업, 부시로드의 기타니 사장은 "모든 콘텐츠는 마니아가 망친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이 말은 2012년 기타니 사장 취임 시, 일본 프로레슬링 팬덤의 문제점을 지적한 말로 유명하다. 당연하겠지만 오타쿠들을 광범위하게 저격하는 것처럼 여겨져 당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프로레슬링의 상황은 그 주변을 둘러싼 문맥이나 상황 해석이 중요시되던 시기로, 시합이라는 메인 콘텐츠를 100% 즐기려면 선수들과 주변의 관계성이나 사사로운 히스토리까지 알고 있어야 하는, 그야말로 뉴비의 입덕 장벽이 매우 높은 상태였다. 오래된 코어 팬들에게는 깊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라도, 흥미로 가볍게 접근한 신규 팬이 즐기기에는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았다. 덕분에 프로레슬링은 점점 하락세를 타게 되고, 그 타이밍에 나온 말이 위의 발언이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먼저 제작 측에서는 누구보다 콘텐츠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니아 편향적이 되기 쉽다는 점이다. 마니아 편향적인 콘텐츠는 현재의 팬을 컨트롤하기 쉬운 내용, 혹은 제작진의 입맛에 편중될 수밖에 없다. 특정한 팬층이나 일부 제작진은 만족할지 모르지만 새로운 팬의 수용 가능성은 점차 낮아지게 된다.
한 편, 팬 측에서는 오랜 시간 형성된 그들 만의 문맥이나 규칙이 마치 진리인 것 같은 암묵적인 분위기가 팬덤 전체에 만연하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가 주류로 자리 잡히면 제작 측 또한 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신참 입장에서 이런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가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제작 측과 팬 측의 닫힌 상호 작용을 통해, 콘텐츠는 점점 닫혀간다.
새로운 팬이 유입되지 않는 콘텐츠는 흐르지 않는 물과 같아서, 점점 고여가다가 이윽고 증발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최근 일본에서는 덕질과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콘텐츠가 늘고 있다. 2차 창작 등에 대한 지침도 있지만, 덕질 대상에 대한 거리감을 유지해 달라는 요청을 명확히 언급해두기도 한다.
팬과 제작 측 모두 건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이 관여하는 대상 및 최애와 그 콘텐츠가 오래 유지되고 더 크게 되었으면 하는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오래 유지되고 더 크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새로운 팬의 입덕문을 언제까지 어느 정도나 열어둘 것인가"라고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팬과 덕질 대상, 제작 측이 쌓아가는 라포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덕질 대상의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콘텐츠는 많은 사람과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 가는 인격체와 같으며 누군가의 소유가 아니다. 지나치게 마니아 편향적이 되거나, 대상을 휘두르려 한다면 그 콘텐츠와 최애의 성장은 요원해질 것이다.
코어 유저만으로는 콘텐츠를 성장시킬 수 없다. 콘텐츠의 장기적인 확대와 성장을 위해서는 제작 / 팬 / 덕질 대상 간의 적당한 거리감과 프레쉬한 시선의 유지가 필수이다.
덕질에서도 지속가능성은 중요한 화두이다.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여러 항목들에 미루어 봤을 때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다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기후나 환경 문제의 관점에서 봤을 때 K-POP 업계의 실물 앨범이나 굿즈 소비, 공연 시의 탄소배출량 등은 ESG시대를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 다르고 있다. 이는 비단 K-POP 업계뿐만이 아니라 덕질 경제권 전반에 해당되는 과제이기도 하다.
디지털화나 친환경 포장 등으로 일부 전환되고는 있다지만, 매출과 명성에 직결되는 부분이다 보니 기업 측의 대응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행태에 대해, 최근에는 관계자나 팬 측에서도 목소리를 내며, 업계 전반의 인식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물론 업계 전체의 근본적인 수익 구조와도 맞닿아있는 만큼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업계와 팬,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먼저 공급 측의 대응 설루션이 마련되어야 하겠지만, 소비자들에게도 그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진적인 아티스트와 팬들의 자발적인 움직임 또한 중요하다.
해외 아티스트의 사례로, Coldplay는 감소, 재창조, 복원이라는 세 가지 원칙으로 투어 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의 감소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렇게 목소리를 내고 직접적인 행동에 옮기는 케이스가 더 늘어나길 바란다.
Z세대들은 환경이나 사회문제에 대해 높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행동도 다른 세대들에 비해 적극적인 경향을 보인다. 일본에서도 윤리적인 소비/착한 소비가 주목받고 있다.
물론 타 세대에 비해 낮은 수입 등을 고려했을 때 직접적인 행동면에서는 다소 한계가 있기도 하고, 덕질 분야에 있어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쌓이기 시작한 기업의 이미지는 Z세대가 본격적으로 소비를 짊어지는 가까운 미래에, 장기적인 자산으로 이어질 것이다.
소비의 의미, 가치가 중요시되는 시기이다.
기업 측의 적극적인 대응은 물론, 소비자 측에서도 인식의 환기가 다시 한번 필요한 때이다.
덕질 또한 사회공헌적인 측면,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소비로 한 단계 더 진화해야 한다.
참고자료 및 출전
https://news.denfaminicogamer.jp/kikakuthetower/211109a/2
https://president.jp/articles/-/57128
https://dentsu-ho.com/articles/3961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15687.html
https://www.etnews.com/20220304000063
https://dbr.donga.com/article/view/1101/article_no/10948/ac/magazine/ac/m_know
https://dentsu-ho.com/articles/7976
https://prtimes.jp/main/html/rd/p/000000182.000033586.html
SHIBUYA109式 Z世代マーケティング | 長田 麻衣 (2023년 발행)
팬덤경제학 | 데이비드 미어먼 스콧, 레이코 스콧 (한국어판 2021년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