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 원더랜드 오타쿠걸 3장 : 지속가능한 덕질을 위해 1
Z세대에 대해 연구하는 SHIBUYA109 Lab. 는 Z세대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로 “불안”을 들고 있다. 일본의 과거 세대에게는 인생의 전체적인 루트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그 틀에 맞추어 살다 보면 평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름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모범 답안이 있었다. 하지만 장기적인 불황 이후, 지금까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면서, 모범 답안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게 되었다. 그에 따라 Z세대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치관 깊숙이 자리 잡게 되었으며, 실패나 리스크에 대한 회피 성향이 강하고, 소비에 대해 소극적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여기서, 한국의 Z세대에 대해서도 한 번 짚고 가자. IMF 외환 위기 때 태어나고, IT버블과 리먼 쇼크로 인한 불안한 경제 상황을 경험했다. 세월호 사건에서 COVID-19 팬데믹까지 현재 한국의 Z세대 또한 만만치 않은 격동의 시대를 보냈다.
몇몇 굵직한 사회적 이슈들은 전 세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만큼, 세대별 큰 특징은 나라에 관계없이 어느 정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는 한다. 다만 장기 불황의 침체된 사회에서 성장한 일본의 Z세대와 달리 한국의 Z세대는 같은 시기 안에 사회의 고도화, 국제적인 위상의 향상을 경험했다는 차이가 있다.
한국과 일본은 명백한 차이점은 사회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느냐의 차이라 생각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아직은 가치관의 바탕이 체념보다는 성장에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 덕분인지 한국의 Z세대에게는 아직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더 좋게 만들고자 하는 적극성이 남아있다. 덕질 외의 분야에 대해서도 좋다고 생각되는 것을 소비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다. (이런 강렬한 한국의 덕질 문화는 일본의 폐쇄적인 덕질 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일본은 한국의 미래 모습이라고들 한다. 심각한 불황이 가시화되고 있는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꽤나 현실감 있게 받아들여지는 표현이다. 어쩌면 한국의 알파세대는 일본의 Z세대와 비슷하게, 지금보다 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성향을 띠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편, 최근의 덕질 문화 변천사를 지켜보면서,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표현하는 Z세대의 놀이 문화에 있어 한일 양국이 많은 부분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느낀다. 덕질을 통해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비슷한 뜻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를 확장해 나가는 것은 사회에도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을 앞서 많은 예시들을 통해 설명했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전파된다는 말이 있듯, 국경에 관계없이 좋은 것을 보면 그에 영향을 받고 어떻게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 관계성 아래에서 한국 특유의 스피드와 추진력은 덕질 문화의 유행을 리드하는 역할을 한다.
아무쪼록 한국의 파워풀한 Z세대 오타쿠들이 전 세계의 건강하고 활기찬 덕질 문화를 계속해서 선도해 가기를 바라는 바이다.
덕질에 연령에 의한 세대 구분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때까지 한참을 Z세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놓고 이제 와서 갑자기 의미가 있냐고 물으면 읽으시는 분들은 당황스러우실 지도 모르겠다.
이때까지의 글에서는 Z세대를 중심적으로 다루기는 했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덕질에 크게 나이는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당장 임영웅 님의 팬덤만 봐도 덕질이라는 행위는 나이를 초월하고, 세대와 무관함을 알 수 있지 않는가.
물론 세대에 따라 살아오면서 겪은 사회상이 다르기 때문에, 나이에 따른 사고방식과 표현 방법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만한 보편적인 생각이나 세대를 관통하는 가치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덕질 안에 담겨있는 가치란 "좋은 것을 즐기고, 누군가를 응원하고, 그를 통해 느끼는 소속감"이다. 이런 보편적인 가치가 세대에 따라 크게 변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실제 만화, 게임, 음악 등의 콘텐츠 소비 시장에 있어, 연령의 벽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일본의 조사 결과가 있어 관련 내용을 인용해보려 한다.
일본에는 매년 12월 31일에 NHK에서 방송되는 음악 제전인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戦'이라는 방송이 있다. 그 해 활약한 아티스트들이 대표적인 아티스트들이 출연하는데, 작년에는 아이브와 르세라핌도 처음으로 출연했다. 홍백가합전 당일에 첫 출연자를 검색한 사람의 추산치를 살펴보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 특히 40대 이상의 사람들의 검색이 눈에 띈다. 참고로 첫 출연자들의 장르는 K-POP은 J-POP 아이돌, 락,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가 분포되어 있다.
음악 취미는 30대 전반에 고정되어 그 이후 새로운 음악을 잘 접하게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상기 데이터를 보면, 40대 이상도 새로운 음악을 능동적으로 찾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음악뿐만이 아니라 게임이나 만화 관련 앱의 이용자 연령비를 보아도, 40대 이상의 유저층은 점점 늘어나고 있어, 문화 콘텐츠의 소비 시장은 나이와 무관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Z세대의 소비 동향을 체크할 때 특정 카테고리를 덩어리 화해서 보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다. 가이와이(界隈) 소비라고 불리는데, 가이와이는 그 구역, 어떤 분야의 덩어리를 뜻한다. 넓고 얕은 세대 간 카테고리 분류가 아닌 패션 스타일, 공통된 취미, 지역, 콘텐츠 등 깊고 좁은 커뮤니티 내의 동향을 중시하는 것이다. 매스 마켓 중심의 대규모 히트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취향이 파편화된 마이크로 트렌드 시대에 이런 움직임은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며, 어떤 특정 분야의 히트를 중심으로 팽창해 나가는 것이 트렌드를 따르는 올바른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덕질 또한 세대가 아닌, 덕질의 대상이 되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묶어서 하나의 덩어리로 봐야 할 것이 아닐까. 하나의 덕질 집단 안에는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오고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같은 대상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같은 목적으로 뭉칠 수 있는 원동력이 있다. 그 안에는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대가 존재한다.
얼마 전 열린 아이브의 콘서트에 초등학생 팬들이 많이 관람을 온 것이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초등학생 팬들의 열광적이면서도 귀여운 응원에 감동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어린 팬들에 대한 다른 팬들의 호의적인 태도에 감동을 표하는 초등학생 팬 보호자들의 글도 눈길을 끌었다. 일본에서도 K-POP 아이돌의 콘서트에 가면, 모녀가 함께 방문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편, 연령대를 올려서 보면 임영웅 님의 팬덤에서는 덕질이 익숙하지 않은 시니어 층을 대상으로 원활한 덕질을 할 수 있게끔 돕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대에 따라서는 덕질이라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포용하고, 대상을 배려하는 다정함. 이것이 세대를 넘는 덕질이라는 큰 틀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출전 및 참고자료
https://seikatsusoken.jp/miraihaku2017/10306/
https://www.kocca.kr/n_content/vol02/vol02_02.pdf
https://xtrend.nikkei.com/atcl/contents/18/00834/00003/
SHIBUYA109式 Z世代マーケティング | 長田 麻衣 (2023년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