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성향 게임의 애니메이션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현재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가 가장 발달한 일본 시장에서의 이야기가 되겠네요.
일본의 애니메이션 정보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요 몇 년간 여성향 콘텐츠의 애니메이션 작품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분기별 신작에 몇 개 타이틀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요.
게임 원작에 있어서 애니메이션은 어디까지나 미디어믹스의 일환으로, 원작 측인 게임 회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게임 자체의 수익으로 환원시키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일본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여성향 게임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인지를 얻어 게임 판매량의 증가로 이어진 케이스는 과거 몇 번이고 있었습니다. <노래의 왕자님うたのプリンスさまっ>시리즈, <암네시아アムネシア> 등이 그 대표적인 예로 겨우 2~3 만장대 판매량에 머물던 타이틀을 당대 탑 티어 인기 작품으로 끌어올렸지요. 이러한 몇몇 타이틀의 성공이 있었기에 여성향 애니메이션 또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대박 사례는 이미 10년 가까이 이전의 이야기로 PSP 시절의 게임들이 원작이지요.
최근 모바일 여성향 게임들의 애니메이션 사정은 어떨까요?
애니메이션의 큰 강점은 비교적 비슷한 속성을 가진 유저에게 폭넓은 리치가 가능하다는 점으로, 원작 게임 측은 이를 통해 질이 높은 신규 유저를 획득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미디어믹스를 전제로 하는 여성향 콘텐츠 시장에서, 게임 실적 하나만을 놓고 성패를 논하는 것은 완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성과가 하나의 기준이 될 수는 있겠지요.
그럼 일례로 7월부터 애니메이션 방영 중인 <러브앤프로듀서>의 랭킹 동향을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애니메이션 방영이 게임 서비스에 미치는 영향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본작의 애니메이션은 게임의 개발사인 중국 [Paper Games]가 설립한 자회사 [Paper Pictures]와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인 [MAPPA]의 합작으로, 발표 당시부터 팬들의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먼저 언급하였듯 7월부터 일본과 중국, 한국에서 방영을 시작하였고, 일본은 TOKYO MX(심야 애니메이션 시간대)를 포함한 공중파 채널 및 다수의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에서, 중국에서는 bilibili, 텐센트 동영상腾讯视频 등 동영상 플랫폼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은 애니플러스에서 방영하는 걸로 알고 있고요.
<러브앤프로듀서>는 한국과 중국의 여성향 게임 시장을 논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작품이라 생각되는데요. 중국 및 한국에서 여성향 게임 장르 내 최고 수준의 인기를 얻은 작품이지만, 사실 일본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근래에는 일본의 월 매출액이 한국과 별반 차이가 없는데, 일본이 여성향 게임의 가장 큰 시장이며 규모 자체가 한국과 큰 차이가 나는 것을 감안하면 많이 아쉬운 수준이죠.
이미 출시 후 1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 일반적인 시책만으로는 폭발적인 성장을 노리기에는 어려워졌으니, 이번 애니메이션을 기점으로 한 신규 유저풀이 일본 서비스의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실제 첫 방송 후 일본의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올라가는 등 화제성으로는 나쁘지 않은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애니메이션 방영 전후의 게임 내의 랭킹 변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신규 유저 획득에 성공하였나
그래프를 보면 방영일을 기준으로 다운로드 랭킹이 소폭 상승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다운로드 수는 평상시의 자연 유입보다 늘어난 신규 수는 1일 당 100명 전후 증가로 추정되며, 전체 방영 기간을 따져 단순 계산을 하면 애니메이션을 통한 실질적인 증가 수는 1만 명 남짓이 되겠네요.
여담이지만 좀 더 넓은 범위의 수치를 보면, 사실 애니메이션 방영 이전인 5월 초, 디즈니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던 시기가 상승폭이 더 큽니다. 콜라보레이션과 함께 트위터 광고 등 UA시책을 동시에 진행했었던 시기지요.
2. 획득한 신규 유저는 어떠한가
다운로드 수는 소폭이지만 증가를 보인 반면, 매출 랭킹은 거의 영향이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임 순위를 통해 매출액을 추정하는 일본의 사이트 <Game-i> http://game-i.daa.jp/ (일본어)의 추정치에 따르면 애니메이션 방영 전인 2020년 6월에는 3,809만 엔인데 비해, 방영이 시작된 2020년 7월에는 2,357만 엔, 8월에는 2,907만 엔으로, 오히려 전월에 비해 하락하였으리라는 예측을 보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신규로 들어온 유저가 금방 이탈하거나, 과금 유저로 전환이 미미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방영 초기 특히 약 2주간은 일정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직 여성향 부문의 경쟁작이 많지 않은 점과 게임 자체가 시즌2에 돌입한 것도 함께 감안해야 하겠지만요.
비단 <러브앤프로듀서>뿐만이 아니라 여성향 게임 원작의 애니메이션들이 예전 같은 대박을 터트리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 그래프는 요 1년 이내 애니메이션을 방영했던 인기 여성향 모바일 게임들의 랭킹 추이입니다.
이러한 인기 작품들 또한 <러브앤프로듀서>와 비슷한 그래프 형태를 보이고 있죠.
물론 원작 팬들에게 있어서 애니메이션을 통해 실시간으로 말하고 움직이는 캐릭터를 즐기며 템포 있게 흘러가는 시나리오를 감상할 수 있다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겠지만, 질 좋은 유저 획득 측면에서는 성공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신규 획득 효과는 일부 있을지 몰라도, 매출을 놓고 본다면 게임으로의 환원 효과에 의문이 남습니다.
최근의 여성향 게임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일정 이상의 유저 규모가 있는, 즉 최소한의 수익성이 보장된 작품을 중심으로 제작됩니다. 이 또한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타이틀의 애니메이션은 수익성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지요.
한창 여성향 애니메이션이 피크였던 2017년~2018년에 비해 비교적 덜 유명한 작품들이 인지를 확대하기 위해 제작하는 애니메이션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일본 공중파에서 심야 시간대에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의 1쿨(약 11~13화, 1분기 분량)을 제작 및 방송, 프로모션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평균2억 3400엔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여성향 애니메이션 자체의 선택지가 늘어 유저가 분산된 것도 큰 요인으로 작용하겠지만, 현재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모바일 게임 원작의 작품들은 원작 특유의 구조 상 신규 획득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어디까지나 제 개인의 의견이니 그 점 감안하시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과거 원작 게임의 판매량마저 하드캐리 한 애니메이션의 특징으로는, 원작을 1도 몰라도 애니메이션 자체만으로도 즐길 수 있는 분명한 기승전결을 가진 완제품이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맺고 끊는 게 비교적 분명한 패키지 게임을 베이스로 하고 있으니 가능한 부분도 있었겠지만요.
지난 글(차세대 일본 여성향 게임, 4개월의 성적표)에서도 언급했지만 최근 일본 여성향 게임, 특히 모바일 게임은 몇 년째 큰 변화 없이 매너리즘에 빠져있습니다.
대표적인 유사성으로 아래에 몇 가지 예를 들어봅니다.
1. 다양한 유저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수의 캐릭터가 등장, 캐릭터들은 그룹핑되어있음.
2. 모바일의 특징 상 스토리의 맺고 끊음이 부족하여 갈등 구조가 약하거나 열린 결말화 되기 쉬움
3. (아이돌, 학교 등) 어떠한 틀 안에서의 캐릭터 육성이 게임성의 주요 요소
최근의 일본 여성향 게임들은 다양한 유저의 니즈를 충족시키려 하다 보니, 캐릭터 수가 늘어나기 십상입니다. 게다가 공식 측은 이 많은 캐릭터들(혹은 그룹핑된 유닛들)을 비교적 공평하게 대해야 합니다. 캐릭터들 사이에 인기의 차이는 존재할지 몰라도 공식 측이 특정 캐릭터를 편애한다면 곧바로 유저의 불만으로 인한 문제 제기로 이어질 테니까요.
이러한 상황을 애니메이션으로 가지고 오면, 필연적으로 캐릭터 간의 차별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수의 캐릭터에게 일정 이상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어집니다. 그에 따라 스토리의 주축이 약해지고 흐름이 지지부진해질 수밖에 없죠. (가뜩이나 1분기용으로 짧게 제작 경향이 있는 최근 애니메이션은 상당 부분이 등장 캐릭터 소개로 끝납니다 ㅋㅋ) 또한 원작들의 소재 및 게임성이 비슷하다 보니, 애니메이션의 방향성 또한 비슷해질 수밖에 없어, 작품 간의 차별화와는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스토리 라인은 물론이고, 주요 캐릭터는 이미지 컬러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아 빨간 머리의 주인공급 캐릭터가 종종 등장한다거나... 성우의 인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 여성향 게임 특징 상 등장 성우도 늘 듣던 분들이 또 등장하듯, 시각면 청각면에서도 유사한 작품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집니다.
소재가 비슷해서 뭘 봐도 비슷하니 라이트 시청자층은 작품의 매력을 느끼기 어려워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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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 시청자는 게임 인스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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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팬만이 즐기는 팬서비스 차원의 콘텐츠로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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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의 수익성 저하, 일정 이상 성공이 보장된 작품들만 애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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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일정 이상 진행이 된 작품이다보니 신규 유저는 정착이 힘들어짐
즉 이런 구조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러브앤프로듀서>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러브앤프로듀서>의 경우는 위 언급했던 일본 모바일 게임과는 차별적인 요소가 분명히 있습니다. 캐릭터 수도 적고, 워낙 스토리가 방대하여 1분기에 전부 담기 힘들지언정 비교적 시나리오가 탄탄한 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미미한 원인 중 하나는 게임 과의 연결고리가 미약한 것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예를 들자면 게임으로의 유입 유도(방영 중 게임 광고), 게임 내 신규 유저를 위한 캠페인 등이요.
실제 <러브앤프로듀서> 애니메이션의 TV 방영 중에 그 흔한 게임 광고는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주로 돈 문제 등 여러 가지 뒷 사정이 있었을 거라 궁예 해봅니다..) 게임 내에서도 애니메이션으로 들어온 신규 유저를 대상으로 한 이벤트나 캠페인, 공략 면의 지원이 별 다른 게 없는 것도 아쉬운 점이고요.
워낙 초기 밸런스 설계가 잘 된 게임이긴 하지만 서비스 1년 이상이 지난 지금, 뉴비가 소외감을 느낄 요소는 얼마든지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애니메이션은 과거와 같은 대규모 유저 풀은 기대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여전히 다양한 유저에게 가장 광범위하게 도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매체입니다.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리려면, 모처럼 관심을 갖고 게임을 다운로드 한 신규 유저를 정착하게 만드는 게 중요한 관건이겠지요.
애니메이션 방영을 통해 조금이라도 게임에 환원시키고자 한다면, 방영 시기에 맞추어 신규 유저의 지속적인 플레이를 도와주는 위한 게임 내외의 시책 설계 또한 반드시 검토가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애니메이션 자체의 구성이나 전체 완성도를 통해, 원작 게임에 흥미를 갖도록 하는 게 제일 첫 번째 조건이겠지만요.
덧.
여담이지만 요 몇 년 사이 중국 IP 원작의 애니메이션의 일본 방영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매년 성장을 거듭하는 중국의 애니메이션 업계가 일본을 포함 점차 글로벌 진출을 꾀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게임이 그러했듯 말이죠.
저는 [Paper Games]가 이러한 시장 추세를 읽고 발 빠르게 애니메이션 제작에 뛰어든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장기적 시점으로 봤을 때 <러브앤프로듀서>의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의미는 어쩌면 실제 게임 매출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 내의 재생수가 당초 공약을 걸었던 목표치에 비해 낮은 것은 안타까운 부분이지만요.
■참고자료
アニメ制作現場の実情とクラウドファンディング活用のメリットとは(2018.10.17)
https://relic.co.jp/battery/articles/4854
#セルラン分析/ゲーム株『Gam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