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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하는유리 Jun 11. 2019

빵이라는 기적

밀의 처음과 끝: 효모

동이 막 튼 일요일 아침 여섯 시, 나는 알람보다 먼저 일어나 부리나케 부엌으로 향한다.


잠들어 있던 냉장고 안에는 내가 오랫동안 키워온 생명체가 자라나고 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소쿠리 안에 웅크려 새근새근 자고 있는 반죽을 꺼낸다. 무겁게 차가운 밀과 물이 한 몸이 된 덩어리덮고 있던 헝겊을 제치자 뽀얀 모습을 드러낸다. 여덟 시간 동안 몸을 잔뜻 부풀린 반죽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밀가루가 골고루 뿌려진 주방 탁자 위에 내려놓는다. 마치 자다 깨서 심통이라도 난 듯, 반죽은 힘을 잃고 살짝 퍼져있다. 아직 나도 반죽도 눈을 다 채 뜨기도 전인 이 새벽에 차가운 반죽을 어르고 달래며 치대는 내 얼굴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과정이 즐겁다는 흔치 않은 기적]                                                                              

빵은 항상 내게 두려운 존재였다. 먼 땅 다른 나라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기본 음식이 왜 그렇게 만들기가 어려운지,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물과 쌀만 있으면 밥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빵 역시 밀과 물만 있다면 더 필요한 것이 없다. 하지만 끓이기만 하면 되는 밥과는 달리 이 고소하고 부드러운 하지만 딱딱하고 바삭하기도 한 타원형의 물체는 많은 주의와 노력을 요한다는 게 나를 겁먹게 했다.


처음 스스로 빵을 구웠을 때 나는 밥보다 빵을 더 많이 먹는 나라에서 살고 있었다 (현재는 더 심각한 불균형이 만연한 곳에서 살고 있지만). 요리법을 수십 번도 더 읽었기에 준비된 반죽을 오븐에 넣으며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바삭하고 노릇한 겉표면과 부드럽고 가벼운, 촉촉한 식감을 기대했다. 아궁이에 불 지피던 아낙네처럼 나는 은은하게 불빛이 새어 나오는 오븐 앞에 쪼그려 앉아 한참 동안 빵을 바라보았다. 알람을 울리는 첫 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부리나케 오븐 문을 열고 틀을 가득 덮도록 부푼 완성품을 꺼내 놓았다.

처음 구웠던 빵들 중 하나


초심자의 행운은 없었다. 겉모양은 흡사 빵집에 진열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지만 빵을 잘랐을 때 그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에멘탈 치즈처럼 큰 공기구멍은 없었고 속은 처진 듯 약간 무거웠다. 맛있었지만 내가 원하던 콧소리 절로 나게 하는 그런 맛은 아니었다. 기대감이 컸던 탓에 실망스럽고 아쉬워서 빵을 대강 잘라서 냉동실에 냅다 얼려버렸다. 그렇게 내 첫 빵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꽤 오랜 시간 동안 냉동실 한 켠을 지켜야 했다.


내가 프로 제빵사가 꿈이었다면 실망감에 잠도 못 들었을 테지만 그저 즐겁게 요리하고 맛있게 먹는 게 행복한 일반인인 나에겐 주말 시간을 때운 좋은 경험일 뿐이었다. 그 뒤로 여러 번 더 빵을 구웠지만 - 올리브를 다져 넣은 터키식 빵부터 각종 씨앗을 더한 통밀 빵까지 - 한동안은 빵집에서 사는  대신에 꾸준히 집에서 만들고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적당히 실망스러운 빵을 계속 구워냈다.


가끔 이렇게 멋진 빵을 굽기도 했다.


결과물을 위해서만 빵 굽기를 했다면 아마 진즉에 때려치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제빵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사랑다. 밀가루에 물을 더했을 때 뭉쳐지는 그 반죽의 모양, 열심히 치대고 난 뒤 아기 궁둥이 같이 보송보송한 모습의 반죽, 그리고 틀 안에서 살이 차오르는 예비 빵의 모습을 보고 기다리며 보내는 시간이 다른 무엇보다 나를 설레게 했다. 밥을 할 때와는 다른 밀만의 매력이 나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결과에만 몰두하는 일상에서 마지막을 기대하지 않고 과정에서 즐거움을 얻는 법을 배우는, 요즘 느끼기 힘든 이 기적 같은 순간들을 빵을 구우면서 나는 매주 마주하고 있다.


[천연효모로 배우는 밀의 시작과 끝]

빵 굽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처음 밀을 가는 도구를 발명한 것은 기원전 8000년 전쯤 이집트였다고 한다. 이글거리는 뜨거운 사막의 기후와 갓 간 밀가루, 그리고 물이 합해지면서 공기 중의 박테리아가 자연스럽게 반죽에 자리를 잡고 자라난 그게 바로 첫 효모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효모를 만드는 것은 정말 밀과 물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것을 집에서 직접 만들며 깨달았다.


처음엔 반신반의 했었다. 유기농 통밀가루를 사 와서 생수를 더해 통에 함께 섞어 따뜻한 실온에 두기만 하면 된다고 해서 주방 선반 한 구석에 올려두었다. 이틀이 지나자 공기 방울이 자잘하게 올라오고 묽었던 반죽의 부피가 점차 자라났다. 아주 진한 맥주의 향이랄까, 김치와는 다른 시큼한 하지만 살아있는 냄새가 났다. 밀과 자연이 만나서 새로운 생명체들을 자라나게 하는 그 놀라움에 나는 푹 빠졌었다. 저녁밥을 먹기 전 하루에 한 번 밀과 물을 섞어서 내 천연효모들 밥을 주었다. 놀랍도록 빠르게 자라나는 효모의 양 덕에 나는 사워도우 빵을 점점 더 자주 구워야 했다.


사워도우 (Sourdough) 빵은 신맛이 나는 반죽이라는 뜻이다. 천연효모로 구운 빵은 특유의 신맛이 난다. 그 이유는 천연효모에 있는 락토바실리 박테리아(lactobacilli bacteria) 덕분인데 얘네들은 밀의 당분을 분해해서 신맛이 나는 성분을 배출한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 덕분에 글루텐 함량도 줄어들어 빵의 소화를 돕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천연 효모에 사는 박테리 아중 대다수가 흔히 흙과 우리 뱃속에서 찾을 수 있는 종류와 같기 때문 가능한 일이다. 12시간 이상 반죽을 오래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우리 몸이 소화하는 것과 같은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왼쪽이 사워도우빵 반죽, 유리 용기에 든 것이 내 천연효모 '스타터' 그리고 오른쪽 아래는 효모가 준비됐는지 확인하기 위한 물

빵집이 아닌 집에서 천연효모를 사용해 빵을 굽는 건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매일 70g 정도의 새로운 밀가루를 먹여야 하고 박테리아가 수돗물에 들어있는 특정 성분들을 싫어한다는 탓에 좋은 생수를 사서 매번 먹이는 게 생각보다 비쌌다. 그리고 무턱대고 자라나는 효모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빵을 굽는 나로서는 그 양 감당하기 힘들었다. 일부분의 효모를 버리고 시작해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뒤면 다시 같은 과정 - 효모에게 먹이를 주고 너무 많아진 양을 일부분 버리는 - 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두 달간 길러왔던 내 효모들에게 작별을 고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효모들을 냅다 버린 것은 아니었다. 마침 페루로 2주간 여행을 가게 되어 효모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 잠시 냉동실에 얼려두면 된다는 글을 읽었고 떠나기 전날 밤 조심조심 효모를 차디찬 냉동실에 넣어야 했다. 이때 마음이 이상하게 불편했는데 그게 바로 내 효모가 정말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떼놓고 가려니 내 애완동물 마냥 느껴져서 힘이 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짐을 풀기도 전에 한 일이 내 효모들을 냉장실로 옮기는 것이었다. 처음 이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잘 지냈는데 나흘째 되던 날 효모에 물이 많이 생기더니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냄새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암시했다. 죽은 것 같이 톡 쏘고 불쾌한 향이 나서 결국 사망 선고를 내리고 보내주어야 했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검고 묽은 반죽을 보며 이상하게도 슬픔과 안도가 교차했다.


곧바로 효모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밀과 물, 그리고 공기만 필요한 이 작업을 다시 시작하기는 너무나 쉬웠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정말 살아있는 동물을 다루듯 세심하고 주의가 깊어야 했다. 이 역시 나 스스로에겐 큰 기적 같은 깨달음이었다. 세상에 모든 것, 아주 기본적인 것도 모두 살아있으며 공기와 물, 밀 그리고 우리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 사실 빵 더 고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여겨졌다.


오븐에서 막 꺼낸 예쁜 사워도우 빵의 모습


[마른 효모로 빵 굽기는 반칙일까]

하지만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빵은 사워도우 빵이 아니다. 그렇담 그 많은 빵은 어떻게 그리고 무엇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대부분의 빵집은 '제빵사의 효모'라고 불리는 말린 효모를 쓴다. 이 말린 효모는 19세기 중반에 맥주를 발효시키는데 쓰였던 박테리아인 Saccharomyces exiguus에서 유래했다. 빵 반죽을 빠르고 쉽게 부풀게 하고 구웠을 때 가볍고 고소한 맛을 내어서 제빵사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러면서 급속한 속도로 마른 효모를 사용하는 제빵사들이 늘어났다.


마른 효모를 사용해 구운 빵은 이렇게 속이 부드러운 촉감이다.


마른 효모를 사용하면서 반죽을 숙성시키는 시간이 대폭 줄었다. 빵을 만들기 더 쉬워진 것이다. 그러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싸고 간편하게 빵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나 역시도 고난했던 천연효모 만들기를 졸업하고 마른 효모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갓 구운 따끈하고 신선한 빵을 만드는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점은 매일이 바쁜 내겐 엄청난 장점이다. 사실 요리법이라고 하기도 너무 간단하지만 그동안 빵을 배우며 알게 된 자잘한 팁을 섞은 나만의 방법도 생겼다.


내 유튜브 채널 영상 중 하나인 비건 통밀빵 만드는 법


쉬워진 과정에 잃게 된 것들도 있다. 마른 효모는 빵을 부풀리는데 돕는 몇몇의 박테리아만 들어있기 때문에 짧은 빵의 숙성 시간 동안 - 약 20분 정도 - 소화를 돕는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통밀빵엔 입맛을 적당히 돋우는 사워도우 특유의 신맛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굽는 빵이 꼭 나쁘다고 하기는 어렵다.


요즘 우리가 쉽게 사 먹는 대량 생산된 빵들에는 많은 첨가물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제빵 회사들은 좀 더 가벼운 식감을 위해, 좀 더 중독적인 맛을 위해 설탕이나 인공 첨가제를 넣고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방부제를 넣는다. 반면에 밀가루, 효모, 물, 소금, 그리고 약간의 단맛만 더하면 되는 간단하고 정직한 집에서 구운 빵이 건강에 더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매주 마른 효모로 빵을 굽는다. 아침을 토스트로 먹는 남편은 일요일 오후 집안에 가득 퍼지는 통밀빵 향을 맡으면 방앗간에 날아드는 참새처럼 주방으로 달려온다. 오븐에서 막 꺼낸 빵을 틀에서 꺼내 한 시간 동안 푹 식힌 후 자르는 첫 조각은 바삭하고 고소하다. 우리는 그 빵 끝을 서로 맛보며 빵으로 건배한다. 마법 같은 밀의 끝과 빵의 시작 그리고 기적 같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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