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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하는유리 May 19. 2019

입맛 바꾸기 대작전

당신의 먹거리가 당신을 만든다.

[변하지 않으면 진짜 나를 알 수 없다]


오후 네 시쯤이 되면 빈 책상 한 곳에 수북이 쌓아둔 과자들 사이로 많은 손들이 분주해진다. 멀찍이 앉아있던 동료들도 살금살금 다가와 어느샌가 책상 앞에 둘러 서서 다양한 주전부리들을 골라가며 맛본다. 색색이 다양한 하리보 젤리부터 영국에서 온 초콜릿 쿠키 세트 등 널브러진 플라스틱 용기와 봉지들이 금세 바닥나고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나는 그 사이 사과를 하나 먹으며 내가 제일 좋아했던 간식이었던 더위사냥과 포카칩을 생각한다. 내 기억 속 그 맛의 조합은 달콤 쌉싸름하면서도 바삭하고 짭짤한, 학창 시절 내 헛으로 고픈 배를 채워주었던 가장 완벽하지만 너무나도 사소한 행복이었다. 사과를 먹는 나를 보며 동료 중 한 명이 묻는다.


"유리 너 저 중에 제일 좋아하는 맛이 뭐야? 내가 좀 가져다줄까?"

"아냐, 고마워! 난 괜찮아."


마음은 너무 고맙지만 내심 원하진 않는 동료의 따뜻한 제안을 뿌리치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감자칩이랑 커피맛 아이스크림 참 좋아했어.'


나의 애정 간식이 과거형 문장의 목적어가 되기까지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수많은 과자 종류와 간식들을 보며 '절대 먹고 싶지 않은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되기까지 내 입맛도 완전히 바뀌었다. 배고프면 편의점 가서 쉽게 사 먹던 과자들을 지금 맛보면 이상하게도 인공적인 맛이라고 느껴질 뿐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흔하게 자주 먹던 초콜릿도 입 안에서 맴도는 그 이상한 질감에 당황할 때가 있었다. 자연과 가장 가까운 재료들을 만지고 먹으면서 나 역시도 천천히 달라졌다는 걸 먹는 것에서 자주 깨닫는다.


이렇게 바뀐 내가 낯설 때도 있었다. 뼈다귀 해장국을 좋아해서 해장국집 맏며느리가 되고 싶었던 내가 채식을 하고, 운동신경 하나도 없던 내가 실내 암벽등반과 요가를 즐겨하면서 처음엔 내가 가식적인가 생각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그리고 더 나은 모습의 내가 되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를 전에 알았던 사람들이 지금의 내가 채식 요리법을 나누는 유튜버가 되고 건강에 대한 글을 쓴다고 알게 되면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 초간단 5분 완성 부드러운 연두부밥


그러나 나는 내가 항상 의문하고 행동하는 존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먹거리를 바꾸며 입맛이 바뀌었고 결국 나라는 사람도 바뀌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소중하게 여기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알게 되었다. 변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시도하고, 느끼고, 경험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진정으로 깨닫게 된다. 먹거리를 바꾸는 것이 별것 아닌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 사소한 변화들이 당신을 바꾸고 다져준다는 것을, 정말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을 때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시간에 먹는 걸 그렇게 챙기니?]


새 직장에서 만난 동료들에게 내가 이전 회사에서 점심 도시락을 싸서 팔기도 했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모두가 하나같이 놀란 눈으로 자신들도 집밥을 먹고 싶다며 이 곳에서도 팔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우리 회사의 악명 높은 업무량을 알지 않느냐며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 못한다고 너스레 웃음으로 답하고 넘어갔다. 그 후 내가 직접 싼 주전부리나 매일 가져오는 점심 도시락을 보며 동료들은 내가 정말 음식을 좋아하고 챙겨 먹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집에서 만든 간식은 세 가지 간단한 재료와 주말 시간 20분이면 주중 내내 먹을 수 있는 양을 만들 수 있다. 절대 내가 슈퍼맨이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 노설탕 노오븐 초간단 간식 달달이볼



주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안티 스트레스 수업'에서 심호흡 연습과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강사가 '요 근래 어느 다른 생각도 하지 않고 그 행동에만 집중해 본 사람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대부분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복잡한 업무와 부족한 시간에 일하면서 한가지 일만 할 수 없고 집에 가면 회사에서 있던 일들을 생각하느라 그럴 수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나 역시도 생각에 생각으로 꼬리를 잇는 습관을 가졌었는데, 출퇴근 길에는 책을 읽고 집에 돌아와서는 재료를 다듬 요리를 하면서 나와 복잡한 세상을 잠시라도 단절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양파를 썰면서 성가신 동료 생각을 하면 양파를 제대로 썰 수 없다. 분노로 마구 칼질을 하다가 손을 베일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늘을 다질 땐 내 손과 그 반복적인 움직이에만 집중하고, 당근을 채 썰 땐 두께에만 집중한다. 그래야 골고루 익은,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들여 성을 낼 바엔 맛있는 음식을 챙겨먹는게 건강에 훨씬 더 이익인 것은 뻔하다. 하지만 어느 시간에 그렇게 먹는 것을 챙기며 사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당하게 그렇지 않으면 잘 살 수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내 몸과 정신의 건강을 지키지 않으면 정신없는 회사 생활에서 나를 잃기 쉽다. 인스턴트 음식이나 시중에 파는 과자를 막 먹지 말자는 나의 원칙도 시간에 쫓기다 보면 무너지기 쉽고 계획 없이 살기 쉽다. 그래서 나는 잘 먹는 법에 집중할수록 삶이 더 살기 쉬워진다고 믿는다.





[너는 한국 음식이 그립지 않아?]


나는 한국에서도 오트밀을 먹었다. 유튜브에서 본 건강 요리들을 따라 하며 이미 여러 요리들을 많이 시도했었다. 한국을 떠나려고 치밀하게 입맛까지 바꾸기로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나는 새롭고 다양한 것을 시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서서히 나는 하이브리드 인간이 되었다. 물론 한국음식을 먹으면 어느 다른 음식보다 더 마음속으로 깊게 그 맛을 즐기고 행복하다. 그렇다고 매일 혹은 매주 한국 음식이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주중 저녁 메뉴의 대부분은 파스타나 코코넛 카레 등 다양한 음식들로 짜고 그 안에서 나는 충분한 즐거움을 느낀다.


그중에서 변하지 않고 매일 아침 먹는 것이 오트밀인데, 남편이 언젠가는 내게 '그렇게 귀리만 먹으면 지겹지 않아?'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전혀 지겹다고 느낀 적이 없다. 내 입맛이 그렇게 바뀌기도 했거니와 매일 먹더라도 맛있는 오트밀이라면 절대 지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블루베리를 넣어 굽기도 하고, 어느 날은 코코아 가루를 듬뿍 타서 간단하게 먹는 내 아침식사를 나는 사랑한다. 그리고 이 재료를 만나고 즐길 수 있게 된 것에 고마운 마음으로 항상 아침을 먹는다.


    - 초간단 5분 완성 오트밀



    - 노오일 노설탕 비건 블루베리 구운 귀리


지금의 나는 5년 전의 나와 다른 사람이다. 나는 바뀌었고 그 사실이 자랑스럽다. 스스로 끊임없이 더 나아지려고 하지 않으면 달라질 수 없고, 달라지지 않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찾을 수 없다는 게 내 믿음이다. 먹거리를 바꾸고 내 몸과 마음에 더 집중하면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물론 이건 내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 하나가 건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건강한 사람이고 싶고 조금은 느리더라도 나와 다른 동물들, 그리고 환경에 더 좋은 방법으로 살고 싶다. 그래서 나의 입맛 바꾸기 작전에는 종료 버튼이 없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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