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나 먹지 않거나, 그것이 문제로다.
지난 크리스마스, 시조부모님 댁에서 점심을 먹었어요. 바르셀로나에서 평생을 사신 두 분의 크리스마스 점심 식사는 전통 '카탈란 (Catalan)' 식이었죠. 시금치와 잣을 채워 넣은 카넬로니, 간단한 샐러드, 집 앞 빵집에서 갓 사온 바게트, 견과류의 후식으로 가득 찬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어요. 유제품을 먹지 않는 저를 위해 우유 대신 두유로 만들었다는 소스를 보여주시는 시 할머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내심 너무 폐를 끼친 것 같아 죄송하다 말씀드렸어요. 할머님께선 당연한 일에 대해 미안해할 것 없다며 잘 먹어달라고만 당부하셨죠. 아흔이 다 되어가시는 나이에도 손주 며느리를 위해 손이 많이 가는 많은 음식들을 손수 차려주심에 감사하며 식사를 마쳤어요.
주방에서 후식으로 마실 커피를 내리며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우리 시할아머님은 벌써 아흔세 번째 생일을 맞이하셨는데, 어떻게 아직도 매일 산책을 나가시고 건강히 사시는 것일까? 후식을 먹으며 보통 식사는 어떻게 하시느냐고 물었어요. 두 분의 답변에 저와 저희 남편은 깜짝 놀랐어요.
두 분은 보통 채식을 하시지만 주에 1-2회가량 어류나 육류의 식사를 하신다고 하더라고요. 빵은 항상 필수로 드시며 후식을 드시는 일은 적다고 하셨어요. 저는 두 분의 식단을 들으며 나이가 많으심에도 이토록 건강하신 건 당연한 이치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야기를 하시며 커피에 할아버지께서 우유를 자연스럽게 더하시는 모습을 보고 저는 당황했어요. 그러면서 매일 이렇게 커피를 마신다고 하셨어요. 유제품을 끊은 지 벌써 6년이 넘어가는 저는 이 사실에 어벙 벙해졌죠.
유제품을 제 식단에서 끊은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였어요. 심한 비염이 있던 저는 학창 시절 매일 큰 재채기를 소란스럽게 했고 막힌 코 때문에 잠도 설치며 살았었죠. 게다가 저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아토피까지 달고 살면서 고생했어요. 나이를 먹고 아토피는 서서히 사라지는 듯했지만 곧 한포진이 찾아왔고 2012년도 저는 손이 아파 머리도 감을 수 없을 정도로 피부 발진에 시달렸어요. 그러던 중 그 당시 독일인 남자 친구의 삼촌이었던 의사분이 제게 유제품을 끊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셨어요. 유제품이 우리 몸의 염증을 극대화시키는 성분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였어요.
그전까지 저는 요거트를 달고 살았기에 이건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어요. 여태껏 몸에 좋은 줄 알고 챙겨 먹었던 유제품이 내 비염과 아토피를 악화시키고 있었다고? 저는 그 날 이후로 유제품을 완전히 끊었어요. 신기하게도 비염이 사라졌고 저는 처음으로 뻥 뚫린 두 콧구멍에 시원하게 숨 쉴 수 있게 되었죠. 이 자유가 얼마나 행복하한지 전 주위 사람들에게도 유제품을 끊은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녔고 권장했어요.
치즈를 사랑하는 저의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치즈나 우유를 먹지 않는다고 했고 남편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어요. 하지만 남편도 스스로 여러 가지 기사나 블로그 글을 인터넷에서 읽은 뒤 우유를 끊고 두유를 먹게 되었죠. 그렇다고 그의 치즈 사랑이 끝난 것은 아니에요. 그는 치즈를 자주 먹고 저 역시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치즈를 소량 먹을 때가 있어요. 그러나 생 우유나 요거트는 일절 사지도 입에 대지도 않아요.
그래서 시할아버님의 이야기가 저희를 조금은 당황하게 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할아버님은 너무나 정정하시고 산책도 스스로 나가 장을 직접 보실 정도로 건강상 문제가 없으셔요. 우유를 매일 드시는데도 장수에 건강까지 지키고 계시다니, 제 믿음에 작은 의심이 생겼어요. 그리고 집에 돌아온 이후 우유에 관한 논란에 대해 조금 더 찾아보기로 했죠.
우유는 송아지를 위한 것이고 성장이 끝난 동물 중 다른 동물의 젖을 마시는 종류는 지구 상에 인간뿐이에요. 우유의 칼슘이 뼈를 튼튼하게 해 준다는 주장은 이미 여러 연구결과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어요. 또, 2014년에 발표된 스웨덴의 연구결과에선 하루에 우유를 더 마신 사람들의 사망률이 두 배 가량 더 높은 것으로 나왔죠. 그런데 아직도 언론에선 우유가 완전식품이다, 아이들 성장발달에 좋다며 광고하고 있어요. 우유 업체들의 광고가 사실이라면 우리 시할아버님이 매일 우유를 드시는 게 정말 건강에 이로운 게 아닐까요?
하지만 단순히 우유를 마심으로써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건 아니예요. 두 분은 채소와 과일을 넉넉히 드시고 매일 마실도 나가세요. 할아버지께서는 매일 공원을 산책하시고, 할머님은 이웃들에게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음식 솜씨가 좋으셔서 매일 주방에서 요리하며 지내신다고 해요. 활동적인 일상과 건강한 식단이 두 분의 건강을 지키고 있는거죠. 또, 두 분이 드시는 우유의 양은 아주 적어요. 하루에 한두 잔 드시는 커피에 조금씩 더하는 우유 양은 소량이기에 우유가 건강상 좋거나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 내리기엔 어려운 일이예요.
또, 우유의 영양분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많은 소를 농장에서 키우면서 1년 내내 젖을 짜내는 데에는 많은 항생제와 호르몬이 필요하다고 해요. 우유 업체와 낙농업계에선 우리가 섭취하는 우유에 이런 성분이 들어있지 않다고 광고하죠. 하지만 이런 주장과는 다르게 작년 12월 우유에서 항생제가 검출되었어요. 심지어 어떤 우유에서 얼마나 많은 양의 항생제가 남아있었는지 공개하지도 않았죠. 이런 이유 때문에 영양소가 풍부해 좋다는 말만 믿고 우유를 마시고, 우리 아이들에게 권장할 수 없는것 같아요.
우유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들이 시장에 이미 많이 나와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마셔온 두유뿐만 아니라 아몬드유, 코코넛 우유 등 다른 동물의 젖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죠. 요거트도 식물성 재료로 만든 제품들이 많이 출시되고 있어요.* 음식에 필요한 유제품은 생각의 전환으로도 대체할 수 있어요. 저는 인터넷과 요리책에서 찾아낸 방법들로 우유, 요거트, 생크림 없이도 케이크와 샐러드드레싱, 크림 파스타를 더 가볍고 건강하게 만들어서 유튜브에 공유하고 있어요.
[우유 없이 만드는 랜치 샐러드드레싱과 채식 콥 샐러드]
[생크림 없이 만드는 초코크림 비건 모카 케이크]
유제품을 식단에서 제외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평소 비염이나 피부염, 여드름, 알레르기 등 염증 질환을 겪고 있거나 우유를 마셨을 때 속이 편하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면 천천히 우유를 여러분의 식단에서 제외해 나가기를 권해요. 그리고 몸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최소 1-2개월가량 지켜보세요. 개개인의 경험과 반응이 다를 수 있으니 충분히 시간을 갖고 세심히 관찰해보시길 바래요. 유제품을 먹거나 혹은 먹지 않거나. 그 해답은 여러분 스스로의 결정과 관찰에서 찾으실 수 있을거예요!
*제가 꼭 당부드리고 싶은 점은 구매 전 영양성분표와 원재료 및 함량 확인이에요. 우유 대체품에도 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첨가물을 넣는 경우가 많아요. 설탕이라던가 우유의 맛을 흉내내기 위해 특정 성분들을 더할 수 있으니 확인 후 구매하시길 바라요. 제 추천은 무가당 두유 (물과 콩, 소금만 들은 제품들)을 구매하신 후 적정량의 당분을 집에서 더해 드시는 겁니다.
**실제로 유럽인들에 비해 아시아인의 유당 소화율이 현저히 적어요. 아시아인의 90% 가까이가 유당 소화를 못한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