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볼 수 있는 두 나라의 다른 국민성과 국민 음식
작년 10월에 이사 왔으니 독일에서 산지도 벌써 네 달 가까이 되어가네요. 여기 오기 전에는 네덜란드에서 3년간 살았아요. 막상 적고 보니 꽤 오래 살았구나 싶어요. 헤이그에 처음 살기 시작했던 때부터 쭉 집밥을 해 먹었으니 장보기는 이미 도가 텄었어요. 어디 가면 더 신선한 과일이 있는지 어느 슈퍼마켓에 더 싸고 질 좋은 채소를 파는지도 터득했었고 한국인에게 특히 중요한 어느 슈퍼 두부가 제일 맛있는지 등 자잘한 저만의 팁도 있었죠. 처음 '독일로 이사 가자!' 결정했을 때 사는데 사실 별 차이가 있겠어? 싶었는데 웬걸, 여기 오니 다른 점도 너무 많고 그동안 네덜란드에서 참 잘 누리고 살았구나 깨닫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이 글에선 단순히 어느 나라가 더 좋다 나쁘다 보다는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 두 나라에서 장보며 느낀 차이점* 소개해 드릴게요.
*현재 저는 독일 서남부 지역인 Baden-Württemberg에 살고 있어요. 시장 특성은 지역마다 다를 수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두 나라 모두 시내 중앙에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장이 섭니다. 기본 과일과 채소부터 시작해서 고기, 생선, 견과류, 빵과 주전부리 파는 것은 같은데 그 안에서도 차이점이 있어요. 먼저 네덜란드 장터는 과일과 채소가 항상 비슷비슷해요. 항상 들어오는 물건들이 같아서 사계절 내내 웬만하면 항상 먹던 채소와 과일을 먹을 수 있어요. 한 겨울에도 수입해온 망고를 먹고 계절 채소인 가지도 언제나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건 아마도 네덜란드가 세계에서도 두 번째로 큰 농산물 수출국 이기 때문일 거예요. 각종 최첨단 기술로 그리 크지 않은 영토에서도 네덜란드는 엄청난 양의 식재료를 실내 재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죠. 토마토도 실내 재배해서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답니다.
왼쪽이 Kibbeling 오른쪽이 Haring.
또 다른 특징은 네덜란드 시장엔 생선 가판대가 참 많다는 거예요. 그건 네덜란드 사람들이 생선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장 유명한 Haring (절인 청어요리)과 튀긴 대구살 Kibbeling 도 간식으로 많이 팔아요. 그래서 네덜란드 장터엔 갈매기도 많이 날아다니고 고소한 튀김 냄새가 항상 가득해요. 토요일 아침 장보는 거의 모든 더치 사람들이 간식으로 하나씩은 사 먹는 거 같아요.
이 Haring에 대한 더치인들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은 사건이 있어요. 주중 아침 9시가 갓 넘었을 시간이었어요. 당연히 생선가게도 막 문을 연 참이었죠. 제가 자전거를 타면서 지나가는데 두 아이 아버지 한 분이 애들을 옆에 두고 앉아서 이 하링을 입에 넣는 걸 봤는데, 그게 우리나라 사람으로 치자면 아주 고약한 숙취를 겪고 난 뒤 시원한 해장국을 처음 입에 넣는 순간에 비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 아버지 표정이 행복하면서 정말 통쾌하고 시원한 그런 얼굴이었어요. 전날 밤 아이들이 잠을 안 자고 괴롭힌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육아에 지친 아빠가 Haring 먹는 행복한 얼굴을 보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더라고요. 아, 이 사람들 이 하아링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고 그 날 깨달았어요.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한 번도 먹어 본 적은 없어요. 회는 먹겠는데 이건 도저히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대신 Kibbeling은 가끔 먹었는데 정말 맛있답니다. 네덜란드 가실 계획 있으시면 꼭 드셔 보세요.
그리고 네덜란드 시장하면 Pindakaas (땅콩버터)를 빼놓을 수 없어요. 더치 사람들이 또 좋아하는 식재료 중 하나가 바로 이 핀다카스예요. 얼마나 좋아하는지 'Helaas Pindakaas'라는 말을 써요. 운 나쁜 일이 있을 때 쓰는 말인데 네덜란드어 못하는 저도 자주 썼었어요. 제가 살던 도시에 서는 장에는 견과류와 올리브, 각종 남유럽식 소스를 파는 가판대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갓 만든 땅콩버터를 파는 기계가 있었어요. 그곳 땅콩버터 냄새는 특히나 고소해서 지날 때마다 시식하고 그랬어요. 벌써 또 먹고 싶네요ㅋㅋㅋ
그와 반대로 독일의 주말 시장은 또 다른 특색이 있어요. 여기 얼마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그 사이에 벌써 제철 과일이 들어오고 나가는 변화를 파악했죠. 여기는 지역농산물과 제철 채소를 많이 팔아요. 예를 들어 제가 처음 왔을 10월에는 비트류가 많이 있지도 않았고 가격도 좀 더 비쌌는데 요즘엔 가격도 싸고 질도 훨씬 더 좋아요. 그리고 제철이 아닌 채소가 있을 경우엔 굉장히 비싸고 보기에도 그다지 신선하거나 좋아 보이지 않고요. 어느 지역에서 났는지도 꼼꼼히 표시해 두는 걸 보면 확연히 독일 사람들이 지역 농산물을 더 많이 선호하는구나 알 수 있어요. 하나 더 추가하자면 독일 시장에는 다양한 빵 판매상이 있어요. 빵 종류가 600개가 넘는 나라니, 당연한 거겠죠? 덕분에 저는 이 빵 저 빵 다 먹으며 빵빵해지고 있어요 하하...
이렇게 빵에 끼워 파는 Bratwurst.
그리고 네덜란드인들이 생선을 사랑한다면 독일인은 소시지에 대한 애정이 넘쳐요. 주말에 장을 보러 가면 Bratwurst (구워 먹는 소시지 종류로 주로 빵에 끼워 팔아요) 가판대에 스무 명도 넘는 사람들이 줄줄이 서서 기다리고 있어요. 저는 먹지 않지만 먹고 있는 사람들 얼굴을 보면 웃음이 넘치는 게 맛있는 건 틀림없는 거 같아요. 저희 도시 장에서만도 이 Bratwurst와 Currywurst (구운 소시지를 잘라 카레 가루 뿌려서 감자튀김과 함께 팔아요) 파는 가판대가 세 곳이나 되는 걸 보면 더치인의 생선 사랑만큼이나 대단한 걸 느껴요.
가장 중요한 독일 주말 시장의 다른 점은 바로 유기농 채소와 과일 전문 소매상이 있다는 거예요. 네덜란드는 유기농 전문 슈퍼에 가야 그나마 신선도가 떨어지는 제품을 살 수 있는데 독일은 주말 시장에서 신선한 채소를 잔뜩 살 수 있어요. 그리고 또 제가 독일 시장을 조금 더 선호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플라스틱 봉지에 대한 인식 때문이에요. 독일 사람들은 에코백이나 따로 작은 천으로 만든 주머니를 가져와서 채소를 담아가요. 물론 시장 상인들도 종이봉투에 담아주고요. 플라스틱 봉지를 쓸 일이 적게 미리 준비하는 이런 습관이 참 좋더라고요. 저도 요즘 그렇게 실천하면서 얼마나 우리가 쉽게 플라스틱 봉지를 사용하고 버리고 있는지 많이 깨달았어요. 이 점에 관해선 제가 따로 영상제작과 포스팅을 할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독일의 큰 슈퍼마켓 체인에는 REWE, EDEKA, Aldi, Lidl, 그리고 저의 사랑 Alnatura가 있습니다. 타 체인점과 다르게 Alnatura는 유기농 제품 전문 슈퍼마켓이에요. 한국의 한살림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저희 식재료의 60%는 이 알 나투라에서 사 옵니다. 다른 슈퍼는 제가 급할 때나 지나가다가 생각나면 들어가서 사는 편이에요. 처음 왔을 때 REWE 가서 장 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비싸더라고요. 그런데 비교해 보니 그 슈퍼마켓 체인뿐만 아니라 확실히 네덜란드보다 독일이 식재료 값이 더 비싸요. 집밥 해 먹는 저희에겐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주말 시장도 이용하고 그러면서 최대한 싸게 장 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네덜란드의 큰 슈퍼마켓 체인은 Albert Heijn, Jumbo, Dirk, 그리고 저의 사랑이었던 Ekoplaza가 있습니다. (Aldi와 Lidl도 있지만 제가 가본 적이 없으므로 뺐어요). 네덜란드 살 때 제일 많이 갔던 슈퍼마켓은 Albert Heijn이에요. 제일 깔끔하고 유기농 제품도 많이 팔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여러 나라에서 온 좋은 상품을 많이 팔았기 때문이었어요. 다른 유럽연합 내 국가 제품뿐만 아니라 멕시코, 태국, 인도네시아, 일본 등 에서 가져온 수입 제품도 손쉽게 찾을 수 있었고 우리나라 김과 된장, 고추장이 있는 매장도 봤었어요. 독일로 이사 오고 이 가까운 두 나라 국민성에 얼마나 큰 차이점이 있는지 새삼 깨달았어요. 네덜란드 사람들이 조금 더 다른 문화와 음식에 열려있고 진보된 마인드라면 독일 사람들은 자국 음식과 문화를 더 소중히 생각하고 자기 사생활 - 특히나 경제적인 면-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예를 들어 네덜란드 슈퍼에서는 현금 쓸 일이 없었어요. 보너스 카드도 있어서 적립금도 쌓고 계산대도 무인계산대가 있어서 간편했거든요. 모두 다 접촉식 카드로 계산해서 지갑 통째로 들고 갈 일도 없었고요. 그런데 독일에 오고 나니 세상에나 여기는 현금 아니면 지불도 안되고 카드도 독일에서 연 계좌로만 나오는 EC카드만 받더라고요. 네덜란드에서 지갑 쓸 일이 없어서 이제 그만 지갑을 버릴까 생각했었는데 안 버리고 가지고 있었던 게 너무나 다행이더라고요. 독일 살면서 장 볼 때 가장 불편한 건 이 현금 지불이에요.
불만은 아니지만 제품의 다양성이 네덜란드보다 떨어진다는 게 독일 슈퍼마켓의 단점이에요. 다양한 나라 음식을 하고 싶은 저는 재료 구하기가 힘들어서 요즘 저녁 메뉴가 단조로워지고 있는 게 안타까워요. 태국 카레도 먹고 싶고 인도네시아 삼발 (우리나라 고추장처럼 매운 고추소스)도 먹고 싶은데 슈퍼에서는 살 수 없고 아마존 가야 구할 수 있어요. 타히니 (참깨 페이스트)도 Alnatura에서 산 게 맛이 없어서 앞으로는 아마존에서 시켜먹기로 했답니다.
적고 보니 독일의 슈퍼마켓 장보기에 단점이 너무 많은 거 같은데 사실 장점도 많아요. 독일의 Alnatura 같은 경우는 유기농 먹거리 이외에도 비건 화장품과 생활용품이 훨씬 더 다양해서 정말 좋아요. 뭐랄까 독일 사람들은 먹는 것 이외에도 조금 더 삶에 동물 보호를 하려는 노력을 들인다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제가 없으면 못 사는 초콜릿 종류도 네덜란드보다 훨씬 더 많고 맛도 좋아서 또 열심히 사 먹고 있답니다.
간단히 쓰려던 비교글인데 생각보다 길어졌네요. 혹시 더 궁금하신 게 있으신가요? 댓글 남겨주시면 제가 아는 한 정성껏 답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