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리하는유리 Jan 20. 2019

그래서 나는 건강하게 살기로 했다

아토피와의 끊임없는 사투

2015년 5월 7일

아침 - 바나나 하나, 사과 하나, 견과류 한 움큼

점심 - 청계천 주변 식당 순두부찌개 (??)

간식 - 초콜릿, 00 이가 준 과자(?)

저녁 - 집밥 김치찌개, 밥, 계란말이


이 날 저녁은 손이 무척 간지러웠다. 나는 그 날의 식단을 적고 의심스러운 식사 옆에 표시를 해두었다. '4년 전 어느 날 점심으로 먹은 것이 무엇인지 혹시 기억하시나요?'라고 누가 묻는다면 '누가 그런 걸 다 기억하고 살아요'라고 대답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걸 다 기억하진 못해도 기록해 두었다. 아니, 기록해야만 했다. 아토피와의 사투에서 이기기 위해 나는 기록하고 또 기록했다.


처음엔 알레르기로 시작했다. 어려서는 복숭아를 먹으면 간지럽더니 십 대 때는 모든 과일류를 먹을 때마다 입술이 빨갛게 붓고 목이 간지러웠다. 그래서 모든 과일을 끊고 살았었다. 과일을 안 먹는다고 채소를 더 먹은 건 아니다. 맥도날드 상하이 버거를 좋아했고 포카칩과 더위사냥 콤보를 즐겨 먹었다. 잠은 걸러도 라면은 안 거르고 먹었다. 어린 나는 먹는 것에 관심은 많았지만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는 몰랐다.


클수록 원인도 알 수 없는 발진이 피부에 돋기 시작했다. 밤낮으로 미친 듯이 간지러워 참을 수 없었다. 병원에 갔더니 그것이 아토피라고 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스테로이드제 연고를 줬었다. 신실한 신도처럼 나는 매일 연고를 발진에 발랐다. 피부가 바싹바싹 마르고 얇아져서 아팠고 살짝만 스쳐도 금방 찢어졌다. 팔 접힌 곳, 다리 접힌 곳 등 연약한 살에 돋아난 그 징그러운 발진이 나는 항상 창피했다. 도려내고 새 살을 붙일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새빨갛고 울퉁불퉁한 내 살갗을 볼 때마다 나는 울고 싶었다. 왜 나는 이 끔찍한 질환을 가졌는지, 어떻게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 커서는 에 아토피는 사라졌지만 내 손에 무언가 나기 시작했다. 발진이 아닌 자잘한 물집이 돋고 터지면 쓰라리고 아픈 한포진 (dyshidrotic eczema)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손에 땀이 많이 나면 나는 질병이라고 생각해 한포진이라고 이름지었지만 사실 한포진도 아토피와 같이 자가면역질환이다.


아토피(eczema)는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로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혼란이 와 발생하는 질병이다. 우리 면역체계는 외부 항원이 들어왔을 때 그에 대항해 항체를 만들고 싸우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자가면역질환은 외부의 항원을 공격하는 대신 우리 몸을 공격하는 질병이다. 그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외부 환경과 유전적 영향 등이 요인이고 사람마다 아토피를 유발하는 물질은 다 다르다. 따라서 확실한 치료 방법은 아직 없다. 면역체계 질환이기 때문에 그저 잘 먹고 건강해서 스스로의 면역력을 기르는 것이 증상 완화를 돕는 길이다.


식단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사소한 의심이 시초였다. 이상하게 어느 날은 발진이 너무 심해서 밤에 잠도 못 자고 긁느라 고생하는데 어느 날은 감쪽같이 간지러움이 없었다. 나는 그 원인이 알고 싶어서 내 몸에 실험을 해보자 생각했다. 매일 달라지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나와 우리 집, 내가 가는 곳, 내가 쓰는 샴푸나 로션은 다 같은데 달라지는 건 내가 입에 넣는 것들이었다. 어느 날은 치킨을 시켜 먹고, 어느 날은 뚜레쥬르에서 빵을 하나 더 사 먹고, 어느 날은 친구들을 만나 바깥 밥을 먹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식사들과 내 증상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실험 결과는 내 삶을 바꾸었다.


라면을 먹으면 즉각 반응이 왔다. 얼굴에 열이 오르고 손이 아주 심하게, 오래 간지러웠다. 과자를 먹고, 편의점 샌드위치를 먹어도 그랬다. 내 식단 기록장에 의심되는 음식들의 목록이 점점 늘어났다.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식품, 그리고 배달음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집밥만 먹은 날은 그 정도가 덜 했다. 그래서 요리에 대해 뭣도 모르던 내가 집밥을 해 먹기 시작했다. 도움보단 독이 되는 스테로이드제 연고도 완전히 끊었다.


집밥을 먹는다고 깨끗이 증상이 사라진건 아니었다. 집에서도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증상을 기록하며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건강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음식에 대한 내 생각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그저 맛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식사가 어떻게 길러진 재료로 어떤 방법으로 조리된 것인지 꼼꼼히 따지게 되었다. 채소와 과일은 되도록 유기농 제품을 사려고 노력했고* 가공식품 없는 요리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렇게 천천히 나는 건강에 미쳐 건강하게 살게 되었다.


애석하게도 내가 건강하게 산다고 해서 아토피와의 전투가 끝난 것은 아니다. 언제든 내가 방심하는 순간 아토피는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것을 안다. 내가 왜 아토피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무언가 오래 끈질기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전투에 지치지 않고 싸우기 위해선 즐겨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집밥 해 먹는 즐거움을 찾으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알리고자 하는 게 이제 나의 또 다른 목표이다. 앞으로도 나는 글을 쓰고 요리법을 만들어 나누며 즐겁게 그리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




*유기농 제품이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기만 한지에 관한 글은 다음 주에 올릴 예정입니다.

** 이 글은 저의 개인적인 기록들과 경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먹고사는 방법이 아토피나 한포진 치료 방법은 절대 아닙니다. 그저 이 지긋지긋한 아토피와의 전쟁에서 제가 썼던 전투 방법을 혹시나 싸우고 있을지도 모를 여러분을 위해서 공유하고자 쓰는 글이니 참고해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아토피에 관한 정보들)

https://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18657921

https://www.thermofisher.com/us/en/home/life-science/cell-analysis/cell-analysis-learning-center/cell-analysis-resource-library/ebioscience-resources/th17-cells-overview.html

https://www.saintlukeskc.org/health-library/dyshidrotic-eczema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364640/

https://nationaleczema.org/research/overview/our-research/

작가의 이전글 네덜란드와 독일 장보기 차이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