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작물은 불필요한 사치일까?
전라북도 고창군과 충청남도 서산시등 여러 자치단체에서 작년 말부터 주민들의 농약을 한 곳에 모아 보관하는 '농약 안전 보관함' 정책을 실시했다. 농촌지역 어르신들의 충동적인 음독 사고 예방을 위해 시작한 이 정책을 소개하는 뉴스를 읽으며 '참 잘 만든 정책이네'라는 생각과 함께 든 생각은 '근데 왜 그 많은 어르신들은 농약을 선택하실까?'였다. 철마다 농약을 치며 사시는 분들이 생의 마지막으로 쓰는 극단적 방법이 자신의 생계수단 중 하나라니, 농사짓는 분들이 은연중 농약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확연히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농부들이 자신의 목숨을 확실히 앗아가게 해 줄거라 확신하는 농약을 사실 우리는 매일 식재료를 통해 소량씩 먹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새삼 소름 끼쳤다.
건강에 미쳐 살면서 유기농 팬이 된 나는 처음 농약이 우리 몸과 환경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을 알게 된 후 무엇을 사던 무조건 유기농 마크가 있는 제품을 샀었다. 집에서부터 걸어서 15분 거리에 멀리 떨어진 한살림까지 일부러 가서 장을 봐 밥을 해 먹고, 점점 더 늘어나는 식료품비를 확인하고 놀라면서도 집 앞 슈퍼에 파는 피망이나 딸기는 사고 싶지 않았다. 농약의 부작용을 읽고 난 후 모든 비유기농 제품은 독약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 농'약'이라고 불리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다.
우리가 쉽게 한 단어로 이름 지어서 그렇지 사실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농약의 종류 수는 2000 가지에 달한다. 그 용도는 균, 곤충, 바이러스, 잡초, 곰팡이 등을 예방하거나 살생하기 위함 등 다양하다. 이렇게 여러 생물을 죽이는 강력한 화학제품인 농약은 당연히 우리 몸에도 좋을 것이 없다.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시도하시는 농부들까지 있는데도 정부는 농약을 금지하지 않고 대신 안전사용 기준을 정해두었다. 그 이유는 왜 일까?
농약 없이는 우리가 현재 먹고사는 식재료를 모두에게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초제나 살충제 없이 농사를 지으며 현재처럼 풍족한 식재료를 재배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농사 인구가 극 격하게 줄어든 요즘 농부의 일손을 90배 이상 감소시켜준 농약은 현대 농사법에 꼭 필요하다. 전통 방식으로 과일과 채소를 재배한다면 수많은 병해충에 타격을 입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될 테고 우리가 맛있게 먹는 사과나 감자 등을 쉽게 못 먹게 될게 당연하다. 그런 식량부족을 감수하면서 우리는 이 풍족함을 버릴 수 있을까?
그 풍족함을 버리지 않고 많은 땅을 이용해 친환경 재배 방법으로 농사를 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은 유기농 농작물이라 할지라도 농약을 친다는 것이다. 다만 그 차이점은 일반적으로 농사에 쓰이는 유기합성농약 (화학적으로 발생하는 물질)이 아닌 천연물농약 (황이나 독초, 식물이 자연적으로 생산하는 방어 물질을 추출해 사용)을 쓴다는 것에 있다. 자연환경에는 독버섯은 물론이거니와 생감자의 솔라닌, 생아몬드와 생캐슈너트에도 초극소량의 독극물 등 식물 자체가 생성하는 방어물질이 있다. 자연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전부 몸에 해로운 물질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또 일부 농학자들은 이런 천연물농약은 일반 유기합성농약처럼 수많은 실험을 거치지 않고 정확한 제한량 없이 쓰이기 때문에 유기농 작물이 몸에 더 해로울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연구로 확실히 밝혀지진 않았다.
이렇게 유기농 작물에도 농약을 뿌린다고 해서 이런 친환경 작물을 사 먹는 것이 돈 버리는 일은 아니다. 일반 농약이 그렇다고 덜 해롭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감자, 고추, 생강, 오이, 양파 등 수많은 채소와 과일류에 뿌려지는 클로로탈로닐 (Chlorothalonil) 은 피부와 눈에 심각한 발진과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딸기와 수박, 감귤, 비트, 호박 등에 치는 코퍼설페이트베이식 (Copper sulfate) 농약은 호흡기 수축과 구토, 메슥거림, 복통*을 일으킬 수 있다. 이 외에도 너무나 많은 종류의 농약과 그에 따른 부작용은 수없이 많아 다 열거할 수도 없다.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경악한 것은 농약이 우리의 생식력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한 최근 연구이다. 작년 1월 발행된 이 연구에 따르면 식품에 잔류하는 농약을 2배 더 섭취한 여성의 임신 가능성이 농약을 거의 섭취하지 않은 그룹보다 18% 더 낮았고 정상 출산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26%나 더 낮았다는 것이다. 또 2012년 미국 소아과 의사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어린아이들이 과다한 농약에 노출되었을 때 발달장애나 인지 장애, 심지어는 소아암까지도 일으킬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매일 먹고 즐기는 식재료에 다양하게 뿌려지는 농약이 안전 기준치를 넘으면 정말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태껏 값을 몇 배나 더 주고서라도 유기농 제품을 사 먹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더 이상 단순히 건강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 환경을 위해서도 유기농 제배는 농약이 우리의 토양과 공기, 물에 스며드는 것을 줄이며 생태계를 더 잘 보전한다. 또 더 건강한 토양을 만들어 지속 가능한 농사 환경을 조성한다. 우리 몸에도 안전할 수 있는 유기농 농사가 선순환을 만들어 더 건강한 자연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점을 읽고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가끔씩 유기농 제품을 비웃으며 마케팅에 불과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의 반론을 들으면서도 유기농 제품을 더 산다. 그리고 이런 나의 선택적 유기농 제품 구매가 한 소비자로서 거대 공급자들에게 보내는 투고라는 생각으로 항상 장을 본다. "이렇게 많은 돈을 주고서라도 나는 건강한 식재료를 먹고 싶다.", "내 지갑을 털어서라도 나는 환경 보호에 참여하고 싶다."라는 나의 목소리를 식품 업체들과 농부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식재료를 유기농으로 사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나도 비유기농 재배 식재료를 적절히 섞으며 장을 보고 있다. 어떤 식재료를 유기농으로 사고 어떤 것은 비유기농으로 사는 가의 기준은 미국의 Environmental Working Group (EWG)에서 작년 발행한 기사에 참고된 목록에 따라 정했다. 물론 미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내가 사는 독일도 농약에 대한 기준이나 검출 결과가 다를 수 있지만 일반 식재료이고 농약이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게 사용되는 점을 고려했다. 이 글을 읽는 건강에 관심 있는 모든 분들께도 조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 농약 잔류물이 높은 작물: 사과, 블루베리, 포도, 줄기콩, 푸른 잎채소들, 배, 복숭아, 감자, 자두, 시금치, 딸기, 건포도, 피망, 토마토, 호박류
- 농약 잔류물이 낮거나 적정량인 작물: 사과주스, 아보카도, 바나나, 콩류, 브로콜리, 양배추, 칸탈롭스 (멜론과 과일), 당근, 콜리플라워, 셀러리, 옥수수, 가지, 자몽, 렌틸, 양배추, 양파, 오렌지, 오렌지 주스, 콩, 프룬, 애호박, 고구마, 두부, 토마토소스
** 글을 쓰면서 유기농과 친환경 농사를 인정하고 장려해주는 국민 농산물 품질 관리원의 정보를 많이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PLS (Positive List System)이라는 제도를 2017년도에는 일부 과일류, 그리고 이번년도 초부터는 모든 국내 생산 및 해외 수입 농산물에 도입했습니다. 이 제도는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농약의 경우 아주 극소량 (국제규격 기준 수영장에 담긴 물의 양에 해당 농약이 한 숟가락 반 섞인 정도) 이상 검출되었을 때 그 식재료의 수입을 허가 하지 않도록 조정한 제도입니다. 조금 더 안전한 식재료를 위해 정부가 노력하고 있는 점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농약에 관한 더 많은 정보는 농촌진흥청 농약정보서비스에서 더 찾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