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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시 Nov 13. 2022

(다시) 공동체 일원이 되다.

아이를 키우게되면서 동네에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다. 

아이가 없던 시절엔 결혼해 신혼으로 이 동네에 살면서도 '요즘같은 시대'에 굳이 얼굴을 익히면서 살 이웃이나 상인들이 생기진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편리하게 살아질 대안들이 넘쳐났고 또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게 더 깔끔하고 편하게 느껴졌으니.


하지만 아이를 키우게되면서 얼굴을 알게 된 동네사람들이 늘었다.

우선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아이와 그 부모들을 동네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어제만해도 산책을 하다 아이 어린이집 친구네 가족을 마주치게 됐다. 산책이나 장을 보러가면서 "~~엄마 아니에요?" 라며 반갑게 말을 걸어주면 나도 괜히 반가움에 마음이 환해진다. 

오늘은 집 뒤에 있는 중앙공원에서 강아지 산책을 하다 아이 예전 시터를 만났다. 시터를 구할 당시 가까이 사는 분이면 좋을 거 같아 동네분으로 고용을 했더니 이렇게 시터 일을 그만두셨음에도 마주칠 일이 생기게 됐다. 

그 외에도 아이와 평일 아침 등원때 마다 만나는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 아저씨, 자주 들리는 과일가게나 정육점 점원이나 사장님들, 우리집 강아지가 매 달가는 동물병원 수의사선생님들, 매일 가는 카페 점원, 하원 시간마다 놀이터에서 만나는 아이 또래 친구나 언니 오빠들.


아이와 생활하는 반경이 대부분 동네다 보니 동네를 지날 때 마다 아는 얼굴들이 자연스럽게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괜히 내 차림새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동네 다닐땐 머리를 안감았어도 그냥 질끈 묶고 세수도 안했어도 그냥 나돌아다녔는데, 이젠 최소한 머리는 이틀에 한 번은 감고, 세수하고 로션은 바르고 돌아다니자는 마음가짐으로 바뀌었다. '예쁘게' 꾸미진 못해도 '깔끔하게'는 하고 다녀야 아이가 나중에 엄마를 덜 챙피해 할 것 같았다.


차림새 뿐 아니라 행동거지에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내 아이에겐 어린시절의 기억으로 남게 될 이 동네가 따뜻하고 정겨운 곳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나도 좀 더 내 이웃들에게 친절하고 공동체의 결정에 주권의식을 가지고 적극 대응하고 참여하면서 지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원래 오지랖이 넓은 내 성격탓인지 최근 교복입은 학생들이 최근 한명을 괴롭히면서 다투는 모습을 봤을 때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내 아이가 살게 될 이 공동체 안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관리하는 존재라는 걸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토대로 한 행동들이 모여 동네의 분위기를 만들거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학생들이무섭게 대응한다는 소리를 워낙 많이 들은터라 학생들의 다툼에 개입하는게 다소 무섭기도 했다. 용기를 내 "거기 여학생 분 괜찮아요?"라고 말을 걸자 그 여학생을 괴롭히던 남학생과 여학생이 웃으면서 날 쳐다봤다. 그리곤 "그냥 장난이에요."라고 말하고 가버렸다. 그 여학생도 그냥 장난이었다고 말하더니 사라졌다. 좀 더 개입해서 일을 무마하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나 나간 오지랖같았으므로 나 역시 그 쯤에서 개입을 멈췄다.


이런 '용기'까지 내야 하는 개입이 아니더라도, 소소한 일상의 개입도 많아졌다.

요즘은 낙엽의 계절이라 아이와 그네를 타고 있으면 낙엽을 치우는 청소 아저씨가 오시곤한다. 그럴때마다 아이에게 "아저씨 청소하시게 비켜드리자. 청소 마치시면 다시 와서 타자."라고 말하고 아저씨에게 "청소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말을 건다. 아저씨는 "비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하고 청소를 하신다. 아이는 그런 모습을 보고 그네를 더 타고 싶어도 상황을 바로 수긍한다. 

아이 덕분에 평소에는 그냥 지나칠 수 많은 이웃들과의 기분 좋은 대화가 늘고 있다. 


내가 살아온 내 어린시절에 대한 생각도 어렴풋이 다시 들고 있다. 내 기억 속 내 어린시절은 동네 아이들이 아파트 화단 앞에 우르르 모여 같이 소꿉놀이를 하고 달리기를 하고 땅따먹기를 하다 밥먹을 시간이 되면 옆집 언니 오빠 집가서 얻어먹거나 친구들이 우리집에 와서 먹거나 그러다 어둑어둑해지면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자던, 그런 정겨운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당연히 시대가 변화면서 생활 모습도 변했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공동 생활 속에서 안정감을 느낄 것이다. 어쩌면 그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함께 모여 살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비대면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살면서 공동체 일원으로 사람들과 부대끼고 사는 건 철저하게 선택이 되었다. 부당해보이는 일에 내 일이 아니어도 개입하고, 지나가는 아이와 강아지가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웃들과 소소한 스몰토크를 나누고 장을 보면서 요즘 물가에 대한 인심을 듣고 말하며 사는 게 난.. 효율적인 비대면의 삶보다 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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