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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시 Nov 20. 2022

신호등에 쿵쿵거린 심장이 노을에 위안을 받았다.

삶의 무게에 떠밀리지 않기 위한 한 워킹맘의 발악 그리고 단상

우리집은 서울 서북권에 위치해 있다. 내 직장은 강남역 인근이다. 

'도어 투 도어'로 버스를 타면 1시간이 더 걸리고 자차를 이용하면 시간대에 따라 40분~1시간 40분까지 가늠할 수가 없다. 때문에 왠만하면 강남으로 갈 때는 시간이 그래도 예측가능한 버스를 이용한다. 


1년 반가량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한 지 한 달이 다 돼간다. 1년 반이라는 공백은 육아의 입장에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회로 돌아온 입장에서 보면 참 긴 시간이란 걸 알게 됐다. 1년 반 전과 회사는 많은 것들이 변화 돼 있었다. 인트라넷 시스템에서부터 휴일 근무 시스템 심지어 밥을 먹는 시스템까지 죄다 변해있었다. 이런 사사로운 것들은 사실 주요 업무를 하는 데 있어 아주 자잘한 배경일 뿐 고민하고 배워야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라 복직을 하고 나서 난 적잖이 당황했다.


얼굴도 모르는 많은 후배들이 있었지만 '육아휴직을 하고 돌아온 선배라 감이 역시 없네~'라는 소리를 들을까 하는 괜한 자격지심(?)에 쉽사리 이것 저것 물어보지도 못했다. 결국 제일 만만한 동기들에게 사사로운 잔무들에 대해 꼬치꼬치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기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내며 전쟁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음을 알기에 너무 세세하게 다 물어보기엔 나도 염치가 있었다.


결국 첫 휴일 근무날 사고를 쳤다. 기존 휴일 근무 출근 시간을 착각해 지각을 했고, 보고 해야 할 것들을 놓쳐 일지를 제대로 작성하지 못했다. 너무 당연하게 담당자가 처리할 일들을 그냥 하나하나 다 놓쳐 버린 것이다.

휴일 근무때는 보통 10분 정도 일찍 나와 부서에서 보고할 회의내용을 부서당직자가 미리 정리해야 하는데 내 모습이 모이지 않자 부장님이 연락이 왔다. 


아뿔싸..! 2시 출근인줄 알았는데 1시 20분에 부장의 콜이라니. 이 때부터 내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현 위치 종로에서 강남으로 넘어가는 모든 정류장, 모든 신호마다 버스는 정차했다. 정차벨 소리가 너무 거슬렸다. 서울 시내에 이토록 신호등이 많았다니.. 지나는 곳이 하필 서울 거점이라 사거리 신호마다 최소 4분은 대기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니... 정말 내 모든 신경은 횡단보고 녹색등이 깜빡이기 시작하며 얼마 남았는지를 알려주는 '초' 안내판에 온통 집중됐다. 그때마다 회사에서 오는 연락은 내 애간장을 녹이기에 너무나 충분했다.


그렇게 회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이 빠졌고, 이미 늦은 김에 부장님 커피라도 사 들고가 노여움을 좀 덜어들이고자 1층 카페로 향했다. 왠걸. 카페에선 왠 아주머니가 뭔 쿠폰을 취소하고 추가 결제를 한다면서 밍기적 거리면서 간단하게 바코드만 찍으면 될 결제를 앞두고 끙끙대고 있었다. 후. 크게 심호흡을 했다.

여차여차 회사에 도착해 밀린 업무들을 폭풍처럼 해댔다. 엎친데 덮친격 업무로 전화를 해야하는데 폰 충천이 안돼있었다. 집에서 정신없이 충전기에 꽂아두느라 제대로 플러그가 꽂혔나 확인을 못한 것이다! 


겨우 일들을 마치고 너덜너덜 해진 기분으로 퇴근을 했다. 어서 가서 아이 저녁 밥을 챙겨줘야 했기에 오랜만에 만난 동기와 반가웠지만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그 역시 1살 아기의 아빠로 얼른 돌아가 할 일들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돌아가는 길은 버스의 신호등에 심장이 쿵쿵 거리진 않았다. 데드라인이 없고, 아이 저녁은 7시 전후로 주면되는데 집에는 6시반이면 너끈히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숨통을 돌리고자, 11월임에도 포근한 바람이 부는 이날의 저녁 공기를 즐기고자 창문을 살짝 열었다. 노을이 지는 서울 도시의 하늘이 내 모습 같이 지쳐보였다.


워킹맘이 되니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게, 10분 단위의 시간으로 쪼개져 사용되게 됐다. 챙겨야 할 일들, 또 사회생활을 한 만큼 내게 주어진 책임의 무게가 늘었기 때문일 것이다. 11년차 직장인으로서 한 아이와 강아지를 책임지고 있는 난 회사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내게 요구하는 이 요구들을 감당하기 위해 좀 더 영리하게 부지런해지기로 했다. 밀레의 서재에서 시간관리법, 워킹맘 자기관리 등과 같은 노하우를 알려주는 방법을 찾아봤다. 나에게 요구되는 일들에 떠밀려 신호등 변화에 심장이 쿵쿵거리게 내비뒀다간 내 심장이 제대로 살아남질 못할 거 같았다. 바쁘고 할 일이 많아도 시간을 내가 컨트롤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상황에 맞게 짊어 져야 할 삶의 무게가 있다. 외벌이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무게, 이제 갓 세상에 태어나 무서운 것 투성이인 아이들이 한발 한발 용기를 내어 세상과 부딪히며 배워나야야만 하는 무게, 정해진 것 없이 불투명하고 어두워보이는 미래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야만 하는 청년들의 무게,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생계를 이어가야만 하는 소상공인의 무게, 한 회사를 짊어진 사장의 무게, 당장 내일 먹고살 일이 걱정인 노숙자의 무게... 모두가 지니고 있는 삶의 무게는 분명히 있다.  


징징 댄다고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는 자신이 지닌 각자의 삶의 무게를 견디며 걸어가느라 힘들고 바쁜 하루를 보냈을테니. 그리고 이 저녁 노을 하늘이 모두에게 위로와 내일의 희망을 안겨줄 힘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건 내 스스로에게 건내는 위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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