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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시 Apr 05. 2023

죽지 않을 기회-신의 선물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 사고가 나도 다음날 출근하는 아빠

아침 시간은 항상 바쁘다. 


눈을 뜨자마자 집안 가득한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려 창문을 열고,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 대충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질끈 묶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아이를 깨운다. 

이때부터 다들 겪을 법한 '전쟁통'이 시작된다. 

한껏 전쟁통을 치르고 드디어 등원을 위해 아이를 유모차에 실어 문 밖을 나서는데 카톡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엄마였다. 

엄마는 이렇게 이른 아침에 카톡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더군다나 얼핏 보아 카톡메시지가 꽤 길었다.

뭔 일이 있는가 싶어 등털이 갑자기 쭈뼛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빨리 유모차를 밀라는 아이의 재촉을 뒤로하고 엄마의 메시지를 읽었다. 

동생들과 엄마만 있는 카톡 단톡방(아빠는 카톡을 안한다. 그렇다 아빠는 고집쟁이다.)에 엄마는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유모차를 전속으로 밀어 아이를 어린이집에 후다닥 밀어넣고, 바로 아빠한테 전화를 했다.


아빠는 많이 놀라있었다.

시속 100km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장애물과 부딪히는 건 정말 엄청난 충격이다.


초보 운전 시절, 강변북로에서 급정거하는 앞차량으로 인해 브레이크를 뒤늦게 밟아 100km로 달리던 중 앞차와 충돌을 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4중 추돌이 났고, 기적적으로 크게 다친 사람이 없었다. 차들은 박살이 났지만.


그 사고 이후로 운전에 자신이 있고 또 운전을 즐기던 나는 한 달 넘게 운전대를 다시 잡지 못했다. 핸들을 잡으려고 시도도 해봤으나 심장이 너무 요동치고 숨이 가파라져서 운전을 하기가 무서웠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다. 

(지금은 다시 운전을 즐겨 한다.)


사고를 듣고 보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완전하게 다른 말이다. 


우선 아빠를 진정시키고, 다음날 아빠한테 또 전화를 했다. 아빠는 여전히 놀라있었고, 살아돌아온 것이 정말 다행이라며 기적이라고 말했다. 


인생에서 죽을 고비는 누구에게나 불현듯 어떤 방식으로든 몇 번씩 찾아오는 듯 하다. 


끊임없이 인생에선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듯 하다. 


'어때 이제 알겠지? 너도 죽을 수 있단 걸.'


강변북로에서의 4중추돌, 

갑작스런 대장암 초기 선고,

의료 사고로 인한 장 천공,

2주 간 금식과 끔찍했던 입원의 시간들,


생사를 오가는 경험을 통과하고 있을 때 난 병원 밖의 노인들이 가장 부러웠다.


'저 노인들은 그래도 저 나이까지 두 발로 걸어다니면서 살았네. 

자식들은 있겠지. 자식들도 많이 컸겠네. 부럽다.'


자신만만하고 모든 걸 내가 다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오만과 자만은 일련의 사고들로 인해 모두 다 꺾이고 그 자리에 겸허와 겸손이 들어와 앉은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신은 나에게 다시 살 기회를 주셨고, 

이제 나는 매 순간 주어진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다.


아침이 전쟁통같아도 회사 일이 힘들어도 집안일이 쌓이고 쌓여도

살아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일이다.


아직 너무 어린 아이가 커가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볼 기회가 남아있고

그 아이에게 난 아직 사랑을 줄 기회가 있는 것이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표현을 할 기회가 아직 주어진 것이고

나 역시도 내가 펼치고 싶은 일들을 할 기회가 다시 주어진 것이니까.


신이 가끔 인간세계에 내려와 죽이지는 않지만 죽을 뻔한 기회를 선물로 주고 가는 이유는 이런 이유에서라고 생각한다.

살아있음 그 자체가 기적이라는 걸 잊지말라고.


내가 이 자리에 이 아이와 만나기 위해 온 우주는 억겁의 시간을 지나왔다고, 부디 이 시간들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달라고. 


오늘도 하루가 주어짐을 감사히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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