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 나갔나?
종종 들러는 중국요리점이 이름이 도원(桃園)이다. 桃園, 복숭아밭이란 뜻 아닌가? 북경반점, 홍콩반점, 중화루, 양자강, ...이런 이름들에 비해 희소성도 있고 뭔가 사연도 있을 것 같다. 더욱이 나는 복숭아를 무척 좋아해서 도원이란 이름이 더 끌렸다. 그리고 몇 년 전 태평양을 건너기 위해 환승했던 타이페이 국제공항(TPE) 이름도 타오위언 즉, 桃園이었다. 식당 주인들이 마침 이곳 타오위언 출신이라서 이름을 이렇게 지었나? 어느 날, 밥값 계산을 하며 지나가는 말이라는 듯 툭, 한마디 던졌다.타이페이 자주 가세요?
-네?....아, 네.!
-타이페이 국제공항 이름도, 이 식당 이름 모두 같은 桃園이네요.
-네? 아, 그렇네요!(놀랐다는 듯)
-공항이 있는 그 동네가 원래 복숭아밭이었어요?
-아뇨. 복숭아밭 아니고 그냥 그 동네 지명인데요.
-어,(실망)…
하기사 金海라고 해서 금이 많이 나오는 바다도 아니고 金浦라고 해도 금과는 무관하고, 仁川이라 해도 어진마음이 내처럼 흐르는 곳은 아니지 않은가? 도원이라고 해서 꼭 복숭아밭일 필요는 없지. 하지만 이왕 말이 나온 거 이렇게 끝낼 수는 없고....
- 그렇다면 이 식당 이름은 왜 桃園으로 지었어요. 혹시 부모님께서 그 동네 출신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복숭아라도 무척 좋아하시나 봐요?
-아, 우리 식당 이름요…... 거 있쟎아요…. 관우, 장비, 유비 나오는…
-삼국지(三國志)요?
-네, 삼국지 시작할 때에<도원결의(桃園結義)>나오죠.거기서 '결의'를 빼고 남는 '도원'으로 한 거예요.
이후로 그 집에 갈 때마다 몇 번은 결의에 찬 각오를 하면서 자장면을 먹은 기억이 난다.
타오위엔국제공항의 이름은 대부분 그렇듯 공항이 자리잡은 그곳의 지명에서 왔다. 중국 사서에 따르면 18세기에 많이 심어진 복숭아 때문에 지명이 桃園이 되었으니 삼국지의 도원결의와도 무관하다. 지금은 대만의 주요 공업지역이다.
'복숭아밭'을 집으로 삼고 전 세계의 하늘로 날아다니는 중화민국의 플랙캐리어(flag carrier)는 중화항공(CAL)이다. 1959년에 설립되었고 1968년에는 우방국인 우리나라에 취항하여 1992년까지 운항되었다. 국교 단교와 함께 단항되었고, 2005년부터 복항되어 인천, 김포, 김해에서 중화민국을 연결하고 있다.
중화항공의 로고는 아름다운 꽃인데 桃園국제공항의 이름에 걸맞게 복사꽃인가 했지만 아니고 매화(梅花)다.
중화항공 창립 당시에는 기체에 플랙캐리어답게 중화민국의 국기를 작게 그려넣었지만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후부터는 대륙의 중국 정부가 중화민국 국기 문양을 빌미로 취항을 방해하는 바람에 중화민국의 국화(國花)인 매화를 아주 크게 그리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매화를 그려 넣은 항공사의 본거지인 도원국제공항 역시 아픔의 역사가 있다. 원래 이름은 중정(치앙카이섹)국제공항으로 중정(中正)은 타이페이의 초대 총통이었던 장제스(蔣介石;1997~1975)의 본명이었다. 2006년에 전추이벤 정부 때 지금의 타오위안국제공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IATA 부호는 TPE 로 타이페이의 줄임말이지만 수도 타이페이(Taipei)로부터 40km 밖에(!) 안 떨어져 있다. (인천공항은 서울 도심과 52km 떨어져 있다.)
어느 여름날, 밴쿠버(YVR)에서 출발하여 환승을 위해 도착한 타오위언국제공항, 여름 새벽에 당도하니 안개가 옅게 끼여있다. 터미널에 한 줄로 늘어선 중화항공 여객기들의 꼬리에 핀 아름다운 매화를 보니 시 한 수 생각난다.
서울을 떠도는 저 나그네야
구름 산 어드메가 그대 집이뇨
엷은 안개 대숲 길에 피어나오고
보슬비 등꽃 위로 떨어집니다.
京洛旅遊客
雲山何處家
疎煙生竹徑
細雨落藤花
-이달李達(조선 중기 시인), <윤서중시에 차운하여次尹恕中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