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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

『야간비행』으로 읽는 '아갼비행'

by 박지욱

생떽쥐베리가 1931년에 발표한 소설『야간비행』을 얼마 전에 읽었다.

생떽쥐베리는 1926년부터 항공우편회사의 비행사로 일을 시작했고 나중에는 지상 관리자가 되었다. 그가 우편 항공기를 몰고 하늘을 날아다니거나(『남방우편기』), 노선 운용을 관리하던 시절(『야간비행』)은 항공 우편 역사의 초창기로 작품들은 당시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야간비행』은 프랑스 항공우편회사의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 지사가 배경이다. 소살 속에는 엄격한 감독관, 조종사, 중간 간부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짐작하듯 이 시절은 항공역사의 초창기였고, 비행이란 아주 위험한 일, 일종의 모험이었다. 조종사치고 추락사고를 겪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고, 결국 몇 번의 행운으로 살아남았던 비행사들도 결국 실종과 추락으로 삶을 마감하는 조종사들이 부지기수였다. 소설을 쓴 생떽쥐베리도 추락 사고를 여러 번 겪었고(결국 추락으로 지금까지 실종된 상태이다), 그의 약혼녀 가족은 그가 비행사란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항공우편기 조종사들이 낮에도 위험천만한 비행을 캄캄한 밤에도 감행해야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기록된 야간비행 기록은 1910년4월28일에 영국의 그레이엄-화이트가 세웠다. 1903년에 라이트 형제가 최초의 유인 동력 비행에 성공했지만 이것은 일종의 시험비행이었고, 실용적인 비행이 성공한 것은 1908년이었다. 이후로 유럽에 항공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여 비행 성공에 거액의 상금을 거는 후원자들이 등장했다.


DSC_0525 (3).JPG ©박지욱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바다를 처음으로 비행 횡단했던 조종사는 1,000파운드의 상금이 걸렸고, 1909년 7월에는 비행에 성공해 상금을 차지했다. 그러자 런던~맨체스터 구간(런던~맨체스터의 직선 거리는 262Km이지만 통상적인 거리는 335km)을 가장 빨리 나는 비행사에게는 무려10,000 파운드(현재 금액으로 15억원)의 상금이 걸렸다.


1910년 4월 27일 두 명의 조종사가 비행기에 올랐다. 궂은 날씨 때문에 저녁이 다 된 5시 31분에 프랑스 비행사인 루이 폴랑(Louis Paulhan)이 먼저 이륙(야간 등화가 없던 시기여서 조명을 환히 밝힌 특별 열차가 항로를 인도)했고, 한 시간 후인 6시20분에 영국 비행사그레이엄-화이트(Claud Grahame-White)가 이륙했다. 두 사람 모두파르망 복엽기를 몰았다.


DSC_0006 파르망.JPG 홍콩국제공항(HKG) 1터미널 천장에는 파르망 복엽기의 실물크기 복제품이 걸려있다. 1910년에 있었던 홍콩 최초의 비행을 기념하는 의미다. ©박지욱

정해진 비행 항로조차 없던 시절이라 두 사람은 모두 런던과 맨체스터를 이어주는 철도를 따라 비행했다. 주변이 충분히 어둑어둑해진7시55분에는 영국인이, 8시10분에는프랑스인이철로변에무사히 착륙했다. 두 사람은 대략 100km 의 거리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뒤쳐진 영국인 비행사 그레이엄-화이트가 뒤따라잡을 요량으로 착륙 4시간 만인 오전 2시 50분에 이륙을 감행했다.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야간비행'기록이 되었다. 1910년4월28일 오전이다.


비행기2.JPG ©박지욱

당시 달력을 조사해보니, 4월 24일이 보름달이었으므로 3일 지난 4월 27일 밤은 날씨만 맑았다면 보름달이 8시 30분 경에 떠올라 밤하늘을 환하게 비추어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비행 항로는 기차길이었으니 달빛으로 하얗게 반사되는 철로를 따라 비행다면 성공했을 가능성도 높다. 비행사가 이것을 다 감안하고 야간비행을 결행했는지는 자료를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2시간을 날아 앞선 주자와의 간격을 18Km까지 쫓아갔던 그레이엄-화이트는 궂은 날씨를 만났고 엔진에 무리를 느껴 비행 1시간 반인 오전 4시 13분에 비행을 포기하고 말았다. 경쟁자가 자신의 뒤를 바짝 좋아왔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프랑스인은 동이 튼 오전 4시(16분?)에 이륙하여 고도 1,000 피트를 유지하며 비행하여 1시간을 약간 넘긴 오전 5시32분에 맨체스터에 무사히 착륙했다(총 비행시간은 4시간18분이 걸렸고, 지금은 55분이 걸린다.). 착륙하고 나서야 영국인 경쟁자가 심야에 자신을 바짝 추격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만약 프랑스인 조종사가 이 사실을 아마 사상 최초의 '야간비행 경주'의 신기록마저 세웠을 지도 모를 일이다.


DSC_0286.JPG ©박지욱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던 야간비행을 항공우편조종사들은 일상적으로 감행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경쟁력' 때문이었다.


당시의 항공우편 사업은 첨단 기술을 적용한 보기에는 거창한 신사업이었지만 배나 기차에 비해 경쟁력이 약했다. 왜?『야간비행』 속에 등장하는 감독관의 말을 빌리면 "낮동안에 벌려놓은 격차를 밤에 다 까먹기 때문"이다. 비행기는 낮에 빠른 속도로 날아가지만 해가 지면 지상에 내려 해가 뜰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배나 기차는 밤이라도 그대로 갈 수 있다. 마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시합처럼.


하지만 언제까지 당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1920년대에 미국 우편국은 대륙횡단 항공우편기의 야간 비행을 위해 항로상에 점등시설을 갖추었다. 이후로 야간비행이 가능해져, 여러 항로에도 도입되었다. 1930년대에 미국에서는 야간비행이 활발했지만 유럽에서는 1934년까지도 착륙 라이트를 갖춘 비행기가 드물었다. 여전히 야간비행은 조종사들의 목숨을 담보로 잡았다. 소설 속의 야간비행사도 결국 목숨을 잃었다.


DSC_0120.JPG 착륙 유도등. ©박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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