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타이어들의 처참한 파편들
활주로 끝에서 비행기가 착륙하는 장면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맑은 날에는 경쾌하게 내려오는 항공기들도 바람이 부는 날에는 아슬아슬하게 좌우로 흔들리며 내려온다. 그러다가 바퀴(랜딩 기어)가 활주로에 살짝 닿은 순간 가벼운 충격과 함께 바퀴에서 하얀 연기를 낸다. 그리고 전속으로(?)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다.
착륙하는 여객기들은 대략 시속 270 km 내외의 속도로 활주로에 접근한다. 이 정도면 얼마나 빠른 속도일까? 걸어가는 인간의 속도는 시속 4km, 달려가면 시속 7km 정도다. 마라톤 종목 세게 기록 보유자들은 시속 20km를 내고, 100미터 세게 신기록 보유자 유사인 볼트가 100미터 달리듯 계속 달리면 시속 36km를 낼 수 있다. 프로 야구의 일급 투수들이 던진 강속구는 시속 150km를 찍으며 타석으로 파고들고, 내가 타고 다니는 승용차의 계기판에 붙은 최고 속도는 220km다. 인간의 신경 신호 전달 속도는 시속 180~400 km이고 국제선 여객기의 비행속도는 시속 900km를 훌쩍 넘는다. 하지만 착륙 속도는 시속 270km 정도로 우연의 일치겠지만 인간의 신경신호 전달 속도 내에 있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위해 속도를 줄이면서 활주로에 접근하는 동안 기어 박스가 열리면서 바퀴는 긴 잠을 깨고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잠시 후 느닷없이 기체 아래로 내려온 바퀴는 공중에 달랑거리며 무회전 상태로 매달려 있다가, 활주로와 쿵-하고 부딪히면서 비로소 몸을 굴리기 시작한다. 무회전에서 순식간에 시속 270km로 활주로를 질주하는 항공기의 속도에 도달해야 한다. 대략 초당 25바퀴를 굴러야 그 정도 속도가 나온다.
그 속도에 이를 때까지는 활주로 바닥이 바퀴를 강제로 굴리는데 이때 당연히 바퀴와 활주로 사이에 마찰이 생긴다. 그때 바퀴가 타면서 연기가 생기는 것이다. 잠시 후 바퀴가 항공기 동체의 질주 속도만큼 따라잡으면 더 이상 마찰로 인한 연기는 나지 않는다.
이착륙하는 항공기의 창 밖을 내다본 사람이라면 활주로의 양끝 부근에 까맣게 그을린 바닥을 보았을 것이다. 마치 급정거를 하는 자동차 바퀴가 남긴 자국처럼 이것도 '스키드 마크(skid mark)'라고 한다. 자동차의 스키드 마크는 달리는 바퀴와 가만있는 땅바닥과 마찰을 일으켜 고무가 녹으면서 생기지만, 활주로의 스키드 마크는 가만있는 바퀴가 움직이는 비행기에 매달려 질주하면서 가만 잇는 활주로 바닥과 마찰하여 생기는 자국이다. 모양은 같아도 발생 원리는 반대다.
활주로의 스키드 마크는 고무가 타서 엉겨 붙은 것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제거작업을 해야 한다. 스키드 마크 위에 다른 비행기들의 바퀴가 닿으면 정상적인 마찰이 일어나지 않아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활주로 끝의 까만 바퀴 자국, 알고 보면 타서 땅과 하늘의 치열한 마찰로 생긴, 바퀴들의 처참한 파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