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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욱 Jul 23. 2017

나의 첫 비행

꿈만 꾸던 첫 비행의 추억


    나는 어렸을 적부터 탈 것에 관심이 많았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한 것이 1970년, 그 무렵에 처음으로 부산~대구를 오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당시 신생 교통수단이었던 고속버스는 지금과 달리 승객 유치를 간식을 제공해주었다. 일종의 기내식 개념이었을까? 승무원들의 복장도 여객기 조종사나 객실 승무원의 유니폼과 비슷했다. 특히 독수리 그림이 그려진 한진고속의 카스텔라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아무래도 항공사를 운영하던 계열회사의 영향이 컸겠지?  


    고속버스 이전에는 경남 삼천포(지금은사천시)에 있는 외갓집에 오가려고 여객선을 많이 탔다. 금성호라는 흑백 도색의 여객선이었는데 기름 냄새가 많이 났고, 흔들림도 심했다. 4시간 정도 갔던 것 같은데 번번이 뱃멀미를 심하게 했다. 하지만 육로로 그 길을 가려면 비포장도로에 완행버스라 가는 데만 하루 걸렸을 것이다. 

그리고 처음 기차를 탄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 주말에 아버지와 함께 통일호 야간열차를 타고 꿈에 그리던 서울에 처음 갔다. 새벽에 서울역을 나서자 낮은 구름이 꼭대기를 가린 ‘대우빌딩(지금은 서울스퀘어 빌딩)’을 처음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서울에 가면 ‘촌놈 티’ 낸다고 절대로 하지 말라던 것이었는데...


    비행기를 처음 타본 것은 1989년 여름으로 내 나이 스물네 살 가을이었다. 부산 시내에서 201번 버스를 타고 김해 국제공항까지 가는 데만 1시간 정도. 김해 국제공항은 지금보다는 훨씬 작았고 한산했다. 항공사는 국내 유일의 대한항공. 1층에서 표를 샀다. 편명과 좌석 번호를 펜으로 쓴, 미끈미끈한 종이 탑승권을 받았다. 2층으로 걸어 올라가 비행기에 탑승했다. 지금은 공항이 확장되어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겠지만, 옛 여객 청사는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산지방항공청과 한국공항공사가 청사로 쓰고 있다. 실내 구조는 다 바뀌었겠지?


 

김해 국제공항 옛 국내선 청사. 박지욱 사진.



    그때 탄 비행기의 기종은 모르겠다. 비행기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고 지식도 없었으니까. 분명한 것은 프로펠러 기는 아니었고 제트 여객기였다는 정도다. 그렇다면 B727-200(1992년 퇴역), DC-10(1996년 퇴역), MD-11(1998년 퇴역),  F-28(1996년 퇴역), F-100(2004년 퇴역) 중 하나일 것 같은데...


대한항공에서 운용했던 기종들의 모형들. MD-82, DC-10, F28, MD-11, B727-200. 제주 정석항공관. 박지욱 사진.  


    객실 승무원들의 유니폼은 파란색과 빨간색이 공존했었나? 빵모자나 스카프는 못 본 것 같다. 모든 것이 다 처음이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여승무원의 안전 교육이었다. 비상구는 객실의 앞뒤에 있고~ 이 장면에서 손을 앞뒤로 펼칠 때는 경쾌한 율동처럼 보였다. 한참을 넋 놓고 보았을 것이다. 처음 비행기 타는 사람은 다 그럴 것이다. 



대한항공 여승무원 유니폼 변천사. 우측이 오래된 유니폼이다. 제주 정석 항공관. 박지욱 사진.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올랐는데 그때 처음 아랫배 깊숙한 곳이 출렁하는, 짜릿한 느낌이 왔다. 아, 이것이‘비행기 타는 기분’인가? 물론 난생처음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엘리베이터를 처음 탔을 때나, 놀이공원에서 청룡열차(롤러코스터)를 탔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야릇한 느낌의 정체는 무엇일까? 몸은 공중으로 부~웅 떠오르는데, 미처 따라 오르지 못한 내장들은 아래로 쳐지고, 이를 막으려고 골반 근육 이반 사적으로 수축하면서 만든 생소한 느낌이 그 현상의 근원일까? 누군가는 중력가속도를 느끼는 것이라 하고, 누군가는 비행기를 공중으로 띄우는 양력(揚力; lift)을 느끼는 것이라 했다.


이륙 때 느끼는 오묘한 기분은 첫 비행에서 제일 강하다. 놓치지 말자. 제주 국제공항. 박지욱 사진.

  

    이후로도 아주 오랜만에 비행기를 탈 적마다'비행기 타는 느낌'이 몇 번은 왔지만, 이제는 완전히 사라져서 전혀 느낄 수 없다. 이제 비행에 내 몸이 적응한 것일까? 좀 서운하다. 하지만 종종 중고등학교 수학여행단과 동승을 하면, 이륙 때 학생들이 내지르는 비명, 탄식을 들으며 그때를 생각한다. 녀석들이 부럽다. 


    부산~서울 가는 나의 첫 비행, 좌석은 오른쪽을 배정받았다. 서울 가는 내내 창밖으로 펼쳐진 하늘과 땅을 보았다. 전망은 북동향이라 동고서저(東高西低)의 한반도 지형에서 산만 보였다. 산이 구불구불 연결된 것을 보고, 저것이 책에서 배웠던 산맥이구나. 초록색 담요를 뒤집어쓰고 놀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마치 초록색 담요가 펼쳐진 것 같았으니까. 산 지나면 또 산, 산이 끊어지면 강이 있었다. 호수도 봤나? 

    고속도로, 경부선 철로, 도시,... 이런 것들을 봤을까? 보고도 식별할 수는 있었을까? 봤어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기억이 없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려다본 한반도는 별로 재미는 없었다. 볼 것이 없었다. 고속버스는 들판이라도, 기차는 도심이라도 보여주지만, 비행기에서 본 풍경은 밋밋하기만 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몇 년 전까지는. 


한반도 내륙 노선의 창 밖 풍경은 산지가 대부분이다. 박지욱 사진. 

    

부산~제주 노선은 다도해를 따라 가므로 창 밖 경치가 아주 멋지다. 통영 상공. 박지욱 사진. 


    하지만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본 부작용을 얻었다. 내리려고 일어서는데 목이 안 돌아갔으니까. 며칠 동안 목 결림으로 고생 좀 했다. 하지만 그 귀한 돈을 내고탄 항공여행으로 얻은 훈장으로 여기며 뿌듯하게 여겼다. 그 뒤로도 한참 동안은 비행기를 타지는 못했다.   


    이렇게 나의 비행이 시작되었다. 1989년 10월부터 2017년 7월까지 28년 동안 400회에 400시간이나 될까? 조종사가 400시간의 비행 기록을 가지면 베테랑으로 친다. 나도 400시간의 비행-물론 탑승으로만-기록을 가졌으니 베테랑 승객으로 쳐도 되지 않을까? 다른 것은 몰라도 비행에 대한 열정은 조종사 못지않다고 생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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