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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욱 Sep 17. 2017

비행기 창 모서리는 왜 둥근가?

D.H. 코멧의 비극에서 얻은 교훈

    나는 언제나 비행기 창가에 앉는다. 창가에 앉으면 볼 것이 아주 많아 항공 여행이 전혀 지루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해외 유명 관광지에 가서 일부러 돈을 내고 비행기 투어도 한다는데, 제주 오가는 비행기 창가에만 앉아도 공짜로 이 섬의 장관들을 하늘에서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언제나 창가에 앉는다.

     그러던 어느 날, 창 모서리가 둥근 것을 알았다. 오래된 여객기들, 이를테면 프로펠러기의 창은 반듯한 사각형인데, 제트여객기들의 창은 둥글거나 적어도 모서리가 둥근 네모난 창이다. 이렇게 일률적으로 창 모양을 규정한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이런저런 자료들을 뒤척여보니 50년대에 활약했던 전설적인 제트 여객기 ‘코멧 D.H. Comet’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코멧과 여객기의 둥근 창 사이에 무슨 연결 끈이 있을까?



    1945년, 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끝이 보였다. 이 전쟁의 수많은 키워드 중 빼먹을 수 없는 하나는 ‘공중전’이었다. 비행기들의 전투, 비행기를 이용한 공습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에는 미미한 활약을 펼쳤던 항공기들이, 이 전쟁에서는 무기로서 확실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참전국들은 항공기를 대량 생산했고, 국가의 존망을 건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과학과 기술이 연구되고 개발되었다.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은 항공의 역사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든든한 뒷배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 전쟁이 끝나면 항공 과학 기술은 모두 사장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제 하늘에서 새로운 전쟁, 민간항공의 공중전이 시작될 것이다. 적어도 영국 정부는 그렇게 생각했다.

    당시의 민간 여객기 시장은 미국이 이끌었다. 미국의 더글러스 사 Douglas Aircraft Company가 만든 여객기인 DC-3(군용 수송기 버전은 C-47)와 후속 모델 DC-4(군용 수송기 버전은 C-54)가 여객기 시장을 주도했다. 영국은 전후에 폭발적으로 성장할 민항기 시장에 후발 주자로 뛰어들어 어떻게 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나름대로의 히든카드는 있었다. 이 카드는 따라잡는 수준이 아니라 경쟁자들을 단숨에  따돌릴 강력한 카드였다. 바로 제트기였다!

    이미 여객기 시장에서 고공비행 중인 DC-3, DC-4, 그리고 곧 나올 록히드 사의 L-649는 모두 프로펠러기다. 프로펠러기 승객들의 가장 큰 고충은 소음과 진동이다(국내 일부 저비용항공사에서 한동안 프로펠러기들이 운항했는데, 승객들의 진동과 소음 그리고 느린 속도에 대해 제일 많은 불평을 했다. 서울~제주 노선인 경우 제트여객기에 비해 10분 더 걸렸다).


알래스카 항공 소속의 DC-3. 시애틀 항공박물관. 박지욱 사진.
DC-4의 군용 수송기 버전인 C-54. 제주 항공우주 박물관. 박지욱 사진.

    프로펠러를 단 비행기라면 진동과 소음은 피할 수 없었다. 프로펠러를 떼어버린다면 모를까? 프로펠러를 없앤다? 제트 엔진이라면 가능할 것 아닌가! 프로펠러 대신 제트 엔진을 단 여객기가 가능만 하다면 승객들의 불만을 모두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은 자신이 있었다. 영국은 독일과 함께 제트 엔진 기술을 가진 나라였고, 전후에 이 기술을 주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제트 여객기를 만들어 민항기 시장을 단숨에 석권하기로 결정했다. 영국은 정부 차원에서 제트 여객기 개발을 적극 지원했다.  

    하지만 제트기라고 해서 단점이 없겠는가? 제일 큰 문제는 프로펠러기보다 무려 3배 가까이 연료를 많이 먹는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높이 날아오르면 되었다. 높은 하늘은 공기 밀도가 낮아 공기 저항이 줄어들기에 낮은 출력으로도 비행할 수 있었다.

    개발자들은 고도 10.7km(35,000피트) 상공이라면 가장 좋은 연비가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제 제트 여객기는 프로펠러기보다 2배나 높이 날게 될 것이다. 높이 나는 것은 또 다른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지상에 가까울수록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지만 저 높은 하늘을 날면 기상 현상에서 자유로운 전천후(全天候) 비행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골치 아픈 문제도 하나 생겼다. 희박한 공기는 엔진 효율에서는 이득이지만, 사람에게는 치명적이다. 때문에 승객들에겐 산소마스크가 필요하다.  전투기 조종사도 아닌데, 승객들이 비행 내내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을 수야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객실 전체에 산소를 공급하고 기압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등장한 것이 여압 pressurization 객실이다. 여압 장치만 있다면 높은 고도의 낮은 기압과 희박한 산소 농도와 상관없이 객실에는 항상 일정한 기압과 충분한 공기를 공급하고 유지해 지상과 다름없는 공기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여압 장치가 필요했다.     


객실 압력 조절기. 제주 정석항공관. 박지욱 사진.


    이렇게 해서 영국을 대표하는 항공기 제조사인 드 하빌랜드 사 de Havilland 가 내놓은 D.H. 106 코멧이 1949년에 첫 비행에 성공했다.

    코멧은 디자인부터 혁신적이고도 아름다웠다. 총알을 닮은 유선형의 동체,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뒤로 꺾인 날개(후퇴익), 날개에 감추어진 4개의 제트 엔진, 그리고 크고 네모난 창. 어디 하나 더하고 뺄 것도 없는, 기존 프로펠러기들을 순식간에 구시대 유물로 만들어버릴 만큼 아름답고 완벽한, 미래형 여객기였다.   

    하지만 디자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성능이었다. 코멧의 순항 고도는 무려 13Km 상공, 순항속도는 시속 740km 로 DC-3에 비해 속도와 고도에서 대략 두 배 정도 되었다. 승객들은 여압 장치가 가동되는 쾌적한 객실에서 진동과 소음 없이 엄청난 속도와 고도의 항공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BOAC 소속의 코멧. 위키백과 자료.

      1952년 5월 2일, 코멧은 영국해외항공사(BOAC;British Overseas Airways Corporation)의 날개 옷을 입고 런던~요하네스버그의 하늘길에 첫 상용 정기 노선에 취항했다. 승객 36명(정원 36명), 승무원 6명, 30개의 우편낭을 실은 코멧은 5회 기착하며 11,000km 의 거리를 날아 만 24시간이 채 못되어 지구 반대편인 요하네스버그에 착륙했다. 사람들은 놀라운 여객기를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와 코멧을 에워쌌다. 전설적인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Concord도 이런 열렬한  환영을 받았을까?  

    코멧의 성능에 만족한 BOAC 은 8대를 주문했고, 에어프랑스, 팬암 같은 외국 항공사들도 코멧의 구매자로 줄을 섰다. 65 대가 넘는 주문이 이루어져 이제 코멧의 성공과 프로펠러 여객기들의 몰락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끔찍한 대형 사고가 터졌다. 그것도 연이어서.

 

    취항 10개월 무렵(1953년 3월 3일), 캐나디안 퍼시픽 항공사(CP) 소속의 코멧기가 파키스탄의 카라치 공항을 이륙한 직후에 추락했다. 11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목숨을 잃은 이 사고의 원인은 항공기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조종사의 조종 미숙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2개월 후, 상업 취항 1주년을 맞은 코멧은 대참사를 겪었다(1953년 5월 2일). BOAC 소속의 여객기가 인도 캘커타를 이륙한 후 악기상 속에서 화염에 휩싸이며 추락해 4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도 정부는 비행기의 구조적 결함을 사고 원인으로 추정했다.  

    8개월 후(1954년 1월 10일), 런던을 출발해 싱가 폴로 가던 BOAC 소속 코멧이 중간 기착지인 로마를 이륙한 직후 엘바 섬 상공에서 불길에 휩싸여 추락했다. 사고기는 코멧의 역사를 연 1호기였기에 충격은 더 컸고, 모든 코멧기는 운항 정지 명령을 받았다. 사고 원인은 켈커타 사고와 마찬가지로 구조적 결함으로 추정되었고, 이를 충분히 개선했다는 판정을 받고 코멧의 운항이 재개되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보름 후(1954년 4월 8일), 대참사가 또 터졌다. 요하네스버그로 가던 남아프리카 항공 소속 코멧이 로마를 이륙한 후 나폴리 인근 해상에서 ‘공중분해’되었다. 코멧은 이 사고로 사실상 비행불가 판정을 받았다.  

    나폴리 사고기 기체는 모두 바다에 빠졌지만 수심이 깊어 거의 회수가 불가능했다. 상대적으로 엘바 섬 부근의 얕은 바다에 가라앉은 코멧 1호기의 잔해 회수가 사고 원인 규명에 핵심이 될 것으로 판단하여 8개월 동안 영국 해군이 수중 카메라까지 동원하여 해저 180m에 흩어져 있는 잔해의 80%를 회수해 맞추어 가며 사고 원인을 찾아보았다.

    사고 원인은 ‘동체의 창(窓) 부위에서 생긴 균열이 동체 전체로 퍼지면서 비행기가 공중분해’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균열은 왜 생겼을까? 여압식 동체가 문제였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비행하고 착륙하면서 지속적으로 가압(加壓)과 감압(減壓)을 했었고 때문에 동체는 압력 변동으로 금속 피로 metal fatigue가 생겨 구조가 약해진 것으로 밝혀졌다. 충격적인 결과였다. 그렇다면 기존의 코멧기의 동체에도 가압과 감압을 반복하면 이런 일이 생길까?

    조사단은 발이 묶여있는 코멧의 동체에 압력을 가하고 빼는 테스트를 반복했다. 그러자 사고기처럼 동체에 균열이 생겼다. 특히 코멧의 독특한 디자인인 크고 네모난 창의 모서리에 압력이 집중되면서 동체 균열이 시작되는 것을 확인했다.    

 

    영국 항공 기술의 자부심에 먹칠을 하고 제트 여객기 시대의 미래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일련의 참사를 겪은 후, 드 하빌랜드는 코멧의 네모난 창을 모두 둥근 창으로 바꾸었다. 다른 제트 여객기들도 코멧의 교훈을 되새겨 둥근 창이나 적어도 모서리만이라도 곡선 처리가 된 창을 달았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객기들이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창을 달고 다니는 것은 모두 이 코멧의 비극에서 얻은 교훈 때문이다.


코멧 1의 네모난 창은 코멧4에서 둥근 창으로 바뀌었다. 위키백과 자료.

 

    4년이 지나서(1958년 10월 4일), 최신형 코멧 4가 72명(종전에는 36명)의 승객을 싣고 제트여객기 사상 처음으로 대서양 횡단 정기노선(뉴펀들랜드에 한번 기착)에 취항했다. 하지만 코멧 4는 대참사의 기억을 지우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코멧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했다. 곧이어 등장한 미국의 보잉 707이 제트여객기의 왕좌에 등극했고, 제트 여객기의 선두 자리도 미국에 내어주었다.

    코멧의 화려한 등장과 그만큼 가팔랐던 몰락을 바라보면서 이름도 잘 지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코멧 comet 즉, 혜성’은 화려하지만 금세 추락하는 별똥별이란 뜻이 아닌가? 어쩌면 이 전설적인 제트 여객기의 운명과 어쩜 이리도 잘 맞는지! 이후로 비행기들의 별명 중에서 이처럼 화려하고도 위험한 이름을 붙인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록히드의 전투기 F-80 Shooting Star(별똥별)가 있다!), 대체로 이름은 순둥이들이 많이 보인다. 점보(코끼리), 컨스텔레이션(별자리), 카라벨(범선), 콩코드(조화), 트리스타(별셋), 드림라이너(꿈의 여객기),… 과학과 기술이 지배하는 항공업계라도, 너무 센 이름을 자제하는 편이다. 불가사의한 징크스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코멧 4 모형. 시애틀 항공박물관. 박지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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