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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욱 Sep 24. 2017

제트기류

제트기류의 발견과 이용.

    초등학교 자연 시간, 아니면 중학교 과학 시간인가? ‘제트기류’라는 멋진 이름을 처음 들었다. 아마 대기권에 대해 배울 때 대류권 위로 올라갈수록 기온이 떨어진다는 것, 그리고 대류권 위에는 제트기들이 날아다니는 성층권이 있다는 것, 아울러 제트기들 제트기류라는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다닌다고 배운 것 같다. 그렇다면 제트기류는 제트기가 날아다닌 이후에 발견되었을까?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인 1926년, 일본의 기상학자인 오이시 와사부로Wasaburo Oishi (大石 和三郎;1874~1950)는 후지산(해발 3,776m) 근처의 높은 하늘에 부는 '강한 편서풍'을 발견하고 학계에 보고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에스페란토어로 논문을 써 발표했다. 그는 무척 열렬한 에스페란토어 애호가였기 때문에. 고고도 하늘의 강력한 편서풍은 중요한 발견일 수 있지만 에스페란토어로 발표한 덕분에 이 바람의 존재는 그와 주변의 몇몇 사람에게만 알려지고 말았다(덕분에 나중에 아주 기상천외한 일을 꾸밀 수 있었다).


우리가 사는 동북 아시아 상공의 높은 하늘에는 강한 편서풍이 분다. 일본 세토 내해 상공에서. 박지욱 사진.

        7년 후인 1933년, 최초로 단독 세계 일주 비행에 성공한 미국 비행사 포스트 Wiley Hardeman Post(1898~ 1935)는 고도 6.2km 이상의 하늘에서 비행기를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이 있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그는 다행히도 동쪽으로 비행 방향을 잡았고, 7일 18시간 49분 만에 지구 한 바퀴를 돌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1939년에 독일 기상학자 자일 코프 Heinrich Seilkopf(1895~1968) 역시 하늘 높은 곳에서 부는 강한 편서풍을 발견하고 'Strahlströmung(beamflow = Jetstream = 쏘는 듯 강한  바람)'라고 불렀다. 이렇게 해서 ‘제트기류’라는 이름이 세상에 나왔다. 제트 엔진을 부착한 최초의 제트기는 전쟁 막바지에 등장했으니, 제트기류의 탄생은 제트기와는 일단 관련이 없다.  


제트엔진보다 제트기류를 먼저 알게되었다.  뮌헨 도이치 박물관. 박준영 사진.


     높은 하늘의 강한 편서풍인 제트기류를 제일 먼저 이용한 것은 최초의 발견자인 일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45년 겨울에 일본 군부는 미국 쪽으로 부는 강한 편서풍을 이용해 풍선 폭탄을 보내는 작전을 폈다. 물론 이 바람을 발견한 오이시가 도왔다. 풍선에 폭탄을 매달아 편서풍에 실어 미국으로 보내는 이 작전에 무려 9,300 개의 풍선이 동원되었다. 도착 예정 시간은 출발 후 65시간으로 계산되었고, 시한폭탄의 기폭장치도 그 시간으로 맞추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풍선이 태평양을 건너는 데는 평균 96시간이나 걸리는 바람에 풍선 폭탄들은 대부분 태평양 상공에서 터졌다. 하지만 300개 정도의 풍선은 미국과 캐나다 본토까지 날아갔다(횡단 성공률은 3.2%). 하지만 그 폭탄들도 기대와 달리 큰 활약도 못했다. 비상한 작전이었지만 대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미국은 제트기류를 이용하고 있었다. 1944년 여름, 미국이 일본 동남쪽에 있는 마리아나 제도를 점령하자 그동안의 국가적 숙원 사업이었던 일본 본토 공습을 시작할 수 있었다. 괌이나 사이판에서 발진한 B-29 폭격기들이 일본 본토까지 직접 날아가 드디어 폭탄을 퍼붓기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게 되었다.  

    1944년 11월에 111대의 B-29가 마리아나 제도에서 발진하여 도쿄를 목표로 북서쪽(!)으로 날아갔다. B-29 폭격기는 부분적으로 밀폐된 폭격기라 기존의 폭격기보다 더 높이 날아갈 수 있었다. 높은 고도를 유지하면 적의 대공포  공격을 피할 수 있으니 공습에 유리했다.

 

B-29 폭격기. 내부의 노란 부분은 외부와 밀폐된 공간이다. 덕분에 더 높이 날아다닐수 있었다. 사천 항공우주박물관. 박지욱 사진.



    비행 고도를 8,200 m 정도로 유지하던 미군 폭격기들은 예상 못한 강한 ‘맞바람’을 만났고, 편대를 유지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간신히 목적지 상공에 도착한 폭격기들도 투하한 폭탄이 강풍에 떠밀려 목표지점에서 벗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것이 무슨 바람이여? 이렇게 미군도 제트기류를 처음 실감했다.

    강한 바람에 맞서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을 깨달은 미군은 이후로 바람을 이용하기로 했다. 일단 마리아나 제도를 출격한 폭격기들은 곧장 도쿄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도쿄의 서쪽인(!) 후지산까지 날아갔다. 그곳에서 편서풍인 제 트기류를 타서 빠른 속도로 동쪽으로 날아가면 도쿄가 나오고, 여기에 폭탄 투하를 하고 편서풍을 타고 재빨리 태평양으로 빠져나가는 비행 계획을 세웠다. 후지산은 아주 높은 산이라 구름이 많이 낀 날이라도 구름 위로 불쑥 솟아 있으니 찾기도 얼마나 쉬운지!


태평양전쟁 말미에 미군 폭격기들도 제트기류를 이용했다. 구글 지도.


    한편, 전쟁 중에 대서양을 날아다니던 조종사들은 미국에서 영국 가는 길 즉, 동쪽으로 가는 비행기들은 되돌아올 때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가볍게 나는 것을 알았다. 고고도에서 시속 160km 이상으로 부는 편서풍 즉, 대서양 상공에 부는 제트기류를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다닌 지는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왜 이렇게 늦게서야 제트기류를 발견했을까? 제트기류는 위도 30도 근처와 우리나라가 속한 중위도의 9~12km 상공에서 분다. 초창기 비행기들은 그렇게 높은 하늘까지 올라갈 수 없었다. 고고도의 낮은 기압을 감당할 수 있는 밀폐식(여압장치를 장착한) 비행기들이 제 2차 세계대전 때에 개발이 되면서 높은 하늘에 올라갈 수 있었고, 그제야 제트기류를 만난 것이다.

       오늘날 제트기류를 가장 잘 쓰는 것은 단연 제트기들이다. 동아시아에서 북아메리카로 가는 여객기들은 제트기류를 타면 비행시간도 줄이고, 연료도 아낄 수 있다. 아마 일본의 풍선 폭탄이 날아간 그 하늘길을 따라가지 않을까? 반면에 되돌아오는 비행기들은 맞바람인 제트기류를 피해야 하니 훨씬 더 북쪽으로 돌아온다.  

    예를 하나 들어, 인천~뉴욕 노선을 살펴보자. 뉴욕으로 갈 때는 동해를 거쳐 일본을 지나 북태평양 상공에서 제트기류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제트기류를 피해 북극, 시베리아, 만주를 거쳐 서해상으로 들어온다. 거리로 보면 북태평양 항로가 더 멀지만 제트기류 덕분에 비행시간도 아끼고 연료 절감도 되어 오가는 시간은 비슷하다.

같은 날 인천~뉴욕을 오가는 비행기의 항로는 아주 다르다. 제트기류 때문이다. 플라이트레이더 24에서.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늦여름에 홍콩을 출발해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오호츠크 해 상공 9.75km(32,000피트) 상공에서 비행기의 속도는 시속 1078km(670마일)이 되었다. 이때 비행기를 밀어주는 뒷바람의 풍속이 시속 160km(100마일)이나 되었다. 비행 중 최고 속도가 난 구간은 제트기류를 탔던 북태평양 상공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제트기류에 제일 먼저 올라탄 비행기들은 제트기가 아닌 프로펠러기였다. 제트 엔진을 장착한 제트기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jet’는 '뿜어낸다'는뜻으로 이미 쓰고 있었다. 물이나 공기를 강하게 뿜어내는 것은 뭐든 ‘제트’라 부를 수 있다. 제트기라는 이름도 공기를 강하게 뿜어주는 ‘제트엔진’을 탑재한 비행기란 뜻이다.


제트 jet란 뿜어준다는 뜻이다. 제트 엔진 뒤쪽을 보면 강하게 뿜어지는 열기를 볼 수 있다. 박지욱 사진.  

    그러고 보니 자연풍이 아닌 인공(!) 제트 기류는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화장실의 손 건조기 jet airdryer, 옷과 신발의 먼지를 털어내는 공기총, 분수, 선박, 수상 레저기구, 그리고 잉크젯(!) 프린터도 제트 원리를 이용한다. 그러고 보니 제트는 저 높은 하늘 만의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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