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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욱 Mar 02. 2023

샤를 보네 증후군

뇌는 입력 자극이 없으면 만들어 낸다. 


맹점은 눈이 볼 수 없는 지점이다. 뇌도 물론 볼 수 없다. 그 만큼은 시각의 공백이다. 하지만 뇌가 배경 화면을 이용해 적당한 배경을 만들어 그 자리를 메운다. 왜 뇌는 굳이 사실 왜곡까지 하는 무리수를 두는 걸까? 뇌는 감각의 공백을 사고의 진공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샤를 보네 증후군(Charles Bonnet syndrome)이라는 병이 있다. 실재하지 않는 것을 보는 병이다. 간단히 환시를 보는 것이다. 나이가 많은 분들 중에서 백내장, 녹내장, 망막출혈 등으로 눈이 나빠진 경우, 어둑어둑해지면 헛것을 본다. 환자들은 자신이 헛것을 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른 인지기능이나 판단력도 정상이다. 그래서 정신 이상이나 치매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환시는 아주 생생하고 정교하다. 정말 실제로 있는 것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원인은 뇌가 만들어낸 환시다. 눈으로 들어오는 시각 정보가 줄어들자 지루해진 뇌가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샤를 보네(Charles Bonnet)는 1760년에  자신의 이름이 붙은 증후군을 발견했다. 할아버지의 증상이었다.

나이 많은 눈 병 환자들만 이런 생생한 환시를 보는 것은 아니다. 광산 사고나 매몰로 캄캄한 동굴 안에 갇힌 사람도 겪는다. 극지나 오지 여행을 간 사람, 독방에 갇힌 수형자 들도 생생한 환시를 볼 수 있다. 모두 시각 자극의 차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굳이 동굴에 갇히지 않아도, 극지 탐험에 나서지 않아도 우리는 손쉽게 환시를 경험할 수 있다. 한밤 중에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고 불을 다 끄고 누워 캄캄한 천장을 쳐다보면 된다. 캄캄하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한번 쳐다보고 있어 보라. 시간이 조금 지나면 캄캄한 천장에서 무엇인가 보인다. 움직이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뇌가 만들어낸 환시다. 뇌는 지루한 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뭔가를 만들어 낸다. 이런 현상을 우리가 경험하게 되면 귀신 영화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독일 화가로 조형병 환자인 나터러(August Natterer)의 마녀의 머리(The Witch's Head, 1915년)



 커버 이미지는 르네 마그리테의 <피레네의 성(The Castle of the Pyrenees), 195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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