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오 의과대학 학생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필자는 며칠간 일본 게이오대학교 의과대학 학생들과 교류할 기회가 생겨서 그동안 궁금했던 의문점들을 해소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일본에서 의대에 진학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까? 일본 의사들의 연봉은 어느정도 수준일까?
일단 일본에서도 의사는 가장 연봉이 높은 직업군에 속했다. 그리고 가장 인기있는 전공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은 우리나라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살펴보도록 하자.
아래 수치는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지 약5년 밖에 안된 평균나이 마흔살인 (재수생까지 포함하면 평균 경력은 5년 미만이었을 것이다) 전문의의 평균연봉이며 실제 전문의들의 평균연봉은 2억을 상회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게이오 의과대학 학생들에게 검증을 받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몇가지 알 수 있었다. 게이오의대 병원의 인턴 월급은 90만원 정도 수준이며 레지던트 월급은 200만원 정도라는 것. 게이오대학은 동경에 위치한 일본 최고의 사립대학이며 와세다대와 함께 연고대와 같은 입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 대학병원에서의 월급이 고작 저정도 밖에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이미 개원하기 어려워진지 오래되어 전문의 과정을 마치면 연봉 1억대 초반으로 대학병원에 남는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게이오의대 학비는 연간 3600만원이라는 것이다. 집안이 어지간히 잘살지 않으면 6년동안 2억이나 되는 학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집에서 학비를 지원해줄 수 있다고 해도 일본의 의대생들은 입학 후 10년 이상 공부만 하고 바쁜 병원생활에 치여 살다가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결혼자금을 마련하는 등 미래를 계획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의대입학은 굉장히 치열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의대 입학은 얼마나 치열할까?
아래는 일본 제국대학 수능 성적에 따른 대학 입결을 보여주는 표이다. 재밌게도 일본수능은 제국대학 입학을 위해서만 사용되며 게이오대학 같은 사립대학은 수능점수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수능 + 대학별 입학고사 = 제국대학
대학별 입학고사 = 사립대학
그리고 게이오나 와세다대학 같은 명문사학은 각자 사립 고등학교를 두어 특별히 선발된 학생들을 받아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한다고 한다. 그리고 동경에 사는 명문 사립고 출신들은 수능을 보고 동경대에 입학할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게이오대나 와세다대로 진학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사립대학은 돈 있고 빽 있는 학생들을 위한 보험이 아닌가 싶었다) 일본은 과학고/영재고/외고 같은 특수목적고등학교가 없고 그 대신 명문사학과 제휴가 되어있는 명문 사립고가 여럿 존재한다고 한다.
아래 일본 수능 점수들은 사립고등학교 입학에 전혀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게이오대, 와세다대 등의 명문사학들이 순위권에서 빠져있는 것을 감안하고 살펴보아야 한다. 동경 사람들의 게이오대 선호도는 교토대, 오사카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위와 같은 정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일본에서 의학과는 입결이 높은 전공이다. 하지만 모든 의대가 입학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2. 일본에서 치대 입결은 꽤나 낮다 (의대입결이 다 돌고 난 후 시작하며 약대입결보다도 낮다)
3. 일본의 TOP3 공대 (동경대 교토대 동경공대)는 동대학 약대를 비롯해 35개 국립 의과대학들 보다 입결이 높다.
공대입결이 지방의/치대 입결까지 다 돌고 나서야 시작하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밸런스있어 보였다. 의/치/한/약/수 와 같은 전문직 양성 학과에 대한 선호도가 우리나라만큼 높지 않은 것이다. 특히 일본엔 입학이 정말정말 쉬운 사립의과대학들이 많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싶다. 명문의대에 입학하는 것은 어렵지만 의대에 입학하는 것 자체가 어렵지는 않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같은 대학이라면 공대에 입학하는 것이 치대나 약대에 입학하는 것 보다 어렵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의 의대 쏠림 현상은 그야말로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사회적 분위기 (IMF이후 안정적인 직장을 추구함), 문화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함), 교육정책 (수능으로 줄세워 대학에 입학하게 한다), 보건복지정책 (의/치과대학과 의사, 치과의사의 숫자를 엄격히 제한함) 등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국가인재들이 전문직으로만 몰리지 않고 공대나 경영대로 진학하여 산업을 이끌어야 국가의 경제가 발전하는데 우리나라는 의사, 변호사, 공무원 등 안정성만 추구하는 것이 문제라고들 한다. 그래서 과학고, 영재고 출신에게 의대 입학을 제한하자는 비민주적인 주장까지도 국회에서 힘이 실리곤 한다.
우리나라는 어떻게해야 인재들의 의대쏠림 현상을 막을 수 있을까? 아니면 어떤 정책을 펴야 의대 졸업생들을 의료/바이오 R&D 산업을 이끌어가는 리더로 키울 수 있을까? 일본의 사례를 통해 본받을 점이 있으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