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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 May 29. 2020

우리나라는 의사 수가 부족한가?

정부는 우리나라 의사 숫자가 인구 천명당 2.2 (일본 2.4명, 미국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므로 현재 3,058명으로 묶여 있는 연간 배출되는 의사 수 정원을 적어도 500명 이상은 더 늘려 공공의료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미래에 또 닥쳐올지 모를 코로나 사태에 대비해서 감염내과 전문의, 예방의학과 전문의 등 관련 분야 인력과 흉부외과 등 수요에 비해 공급이 낮은 전공과 의사들을 충원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한편, 의사협회에서는 약 7~8년 후면 인구 고령화,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로 인구당 의사 수가 OECD 평균 (천명 당 3.3명)을 뛰어넘게 되며 국토 단위 면적당 의사수가 많아서 의대 정원을 늘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정말 정부의 주장대로 우리나라 의사 수가 적은가? 과연 의료인들은 밥그릇을 챙기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으로만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것일까?



(1) 학령인구 저하로 대학들이 사라지는 판국에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은 말이 안된다.

당장 내년부터 학령 인구가 절벽으로 떨어지게 된다. 때문에 2020학년도 수시 입시 결과를 발표한 대학 중 학생부교과전형을 운영하고 있는 13개 대학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년도에 비해 교과 평균 성적이 약 0.11등급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014/0004425479).



(2) 출산율 저하가 심각해서 얼마 안 있어서 인구 천명 당 의사 수는 OECD 평균을 뛰어넘는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0.92명으로 출산율이 0명대로 떨어진 국가는 2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를 통틀어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는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이스라엘 3.11명, 프랑스 1.86명, 미국 1.78명,  일본 1.43명 보다도 훨씬 낮다. 인구 수 감소 때문에 나라가 사라질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출처1 : https://www.yna.co.kr/view/AKR20200226079251002)
(출처2: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2710)


(3) 연간 의료인 500명 추가 양성에 들어가는 비용이면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의료 문제를 해결하고도 남는다.
연간 추가될 500여명의 의료인 양성 비용을 정책적으로 잘 활용하면 대학병원의 의료수가를 높여서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고 오늘날 겪고 있는 '상급 종합병원 쏠림 현상' 으로 인한 의료인 피로도를 낮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요 공급 곡선이 맞지 않는 분야의 전문의 인력을 늘릴 수 있다 (경제 논리에 따라 공급에 비해 수요가 높은 진료에 대해 수가를 높이면 된다...). 연구에 따르면 전문의 자격 취득 시까지 의사 1인당 교육·수련 비용이 8억6700만원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전문의를 양성하는데 까지 매년 4335억원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고된 업무와 낮은 급여 때문에 공급이 부족한 분야 (ex: 흉부외과) 전문의들에게 연봉을 1~2억씩만 더 올려줘도 의대생들의 진로 선택의 트렌드가 변할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출처: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020711232853349).


(4) 젊은 의사들은 개원을 하지 않고 (사실은, 하고 싶어도 못하고) 대학병원에 가게 될 것이다.

서울은 어딜가나 병원이 즐비하다. 입지 좋은 곳은 이미 선배 의사들이 다 차지하고 있기에 젊은 의사들은 개원을 포기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1등하면 피부과, 성형외과를 가던 시절도 끝물이다. 대출을 받아도 임대료가 너무 높아서 개원하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삼삼오오 돈을 모아서 함께 개원을 한다고 해도 경쟁이 너무 치열한 까닭이다. 의사들이 지방으로 내려가주길 원한다면 답은 간단하다. 지방에서 개원할때 세금 감면, 입주공간 지원 등 각종 혜택을 주면 된다.


(5)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가 도래하면 진료보는 의사가 지금처럼 많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젊은 의대생/의사들은 일찍이 IT 교육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디지털 헬스케어 혁신에 긍정적인 편이다. 문재인 정부도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 지원이 포함된 뉴딜정책을 추진하는데 굉장히 적극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비대면 진료와 인공지능 기술 (왓슨, 루닛, 뷰노 등) 을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의료행위가 합법화 될 뿐만 아니라 트렌드화 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당뇨병 환자를 웨어러블 장비를 통해 원격으로 24시, 365일 모니터링 하는 기술이 상용화/표준화 될 경우, 의사들의 진료 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의사 수가 부족할리 만무하다. 의사 1인당 볼 수 있는 환자 수가 늘어나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진료를 할 수 있게 되면 대학병원 쏠림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다. 따라서 의사수가 적은 것을 걱정할게 아니라 반대로 1차 의료를 담당하는 개원가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어느날 갑자기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질 것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6) 양보다 질, 무작정 의사수를 늘리면 의료인의 전문성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헬스 트레이너 자격증은 하루만 공부해도 취득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 때문에 매년 쏟아지는 트레이너 숫자가 너무 많은 실정이다. 헬스장 폐업률이 업종별 폐업률 중 1위인 것은 당연하다. 젊은 트레이너들이 높은 임대료를 부담하며 새로운 헬스장을 차리는 것도 도전하기 힘든데, 헬스장을 차려도 3년안에 문을 닫게 될 확률이 67%나 된다는 것이다. 트레이너가 많다보니 헬스장 취업 경쟁률도 높아서 사회 초년생들의 경우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기본급 100만원을 받으며 영업을 뛰러 다녀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다보니 헬스장 업계는 트레이너들이 실력으로 승부하는게 아니라 영업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이상한 생태계가 자리를 잡았다.


결론: 우리나라 의사수는 결코 적지 않다. 그리고 학령인구 감소, 인구 수 감소, 개원가 경쟁 과잉,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의 도래 등의 트렌드를 고려해 보면 오히려 의료인 공급 과잉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리고 의사 수를 늘린다고 결코 훌륭한 의사가 많아지는 것은 아니다. 의사 수가 연간 500명 정도 많아진다고 과연 그 사람들이 지방 오지에 가서 근무할리가 있을까? 고된 일을 하면서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일을 선택할 사람들이 과연 몇명이나 나올까? 학령인구도 감소하는데 의대 정원을 높이는 정책을 펼치면 의사들의 퀄리티 컨트롤만 실패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의사들이 본인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마케팅과 영업에만 열을 올린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이 떠안게 될 것이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늘리는 irreversible한 정책 추진으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의사협회에서 주장하는 '적정 수가를 반영한 시나리오'와 정부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의사수를 늘렸을 때의 시나리오'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다양한 각도로 면밀히 검토한 후에 정책 결정이 내려져야 나중에 후회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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