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

by 백윤

아롱이를 보냈을 적의 내 불성실함이 가슴 한켠에 자물쇠 걸린 검은 방으로 남아있다. 우리 가족은 내가 어릴 적 부모님의 사정과 교육관으로 비봉이라는 공업 시골 단지에 살았다. 동갑내기 부모의 혈기로 부부싸움이 잦아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민해 봤자 소용없는 걸 알았기에 마음 편히 그 시절을 받아들이고자, 속 편해지는 음료 정도로 치고 그 시절 따뜻했던 우리 가족의 추억과 뒤섞어 들이켰다.


그 사이에 아롱이가 있었다. 동물을 좋아하던 내 성향에 부응하려 아버지가 수소문해 분양해 온 암컷 잡종견이었다. 아롱이를 처음 집으로 데려온 날이 기억난다. 나는 아버지의 차를 얻어 타고 아마도 수원의 외곽쯤 되는 읍내로 저녁을 달렸다. 주황빛이 깔린 전봇대 밑에서 인상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튼튼한 쇼핑백에 네발 달린 따뜻한 아기 동물을 담아 건넸다. 아버지를 거쳐 나는 추운 저녁 날 설레어 부푼 가슴으로 쇼핑백을 품에 안았다. 귀여운 갈색 반점이 둥글게 번져 있는 하얀 빵처럼 생긴 강아지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제 어미와 떨어뜨려 놓아 불안해 보이는 눈동자를 보였고 내심 미안했다. 일방적인 설렘과 미안함으로 따뜻한 쇼핑백을 품에 안은 그 저녁이 나와 아롱이의 첫 만남이었다.


아롱이는 순한 애였다. 나를 물려 들거나 사람에게 위협을 가한 적이 없었다. 아롱의 모든 순간을 내가 지켜본 것은 아니라 ‘없었을 것이다’라고 함이 진실이지만, 내가 오판으로 내려놓은 털도 안 자란 새끼토끼를 물어뜯지 않고 내 경고에 응해준 아롱이는 착한 아이가 분명했다.


우리 가족은 차량 출입구부터 건물 주변 전체에 막돌이 깔린 저층형 아파트에 살았다. 시골집이 즐비한 동네에 그나마 도시적인 공간이었고 조금만 걸어가면 옆 켠에 마을 토박이 대가족의 벽돌집이 있었다. 잔디가 드물게 난 마당이 넓었고 ‘ㄷ’ 자로 지어진 건물 중 한 줄은 농업 창고 겸 헛간이었다. 아롱이는 그 헛간 안에서 목줄이 묶여 저녁마다 아버지가 가져다주는 잔반을 먹고 자랐다(아마도 중간에서부터는 사료를 줬을 것이다). 목줄이 있어도 동물 윤리의식이 높았던 아버지 덕택에 시골개 치고 상당히 긴 거리를 종횡무진으로 다닐 수 있었다.


새끼토끼 사건이란, 내가 마당에서 뜬금없이 발견한 분홍빛 살덩이를 집어 올리면서 시작이다. 당시 나는 여덟 살이었고 아버지는 토끼를 길렀는데 골똘한 추론의 결과로 아마 새끼토끼들의 움막을 바꿔주다 실수로 떨구어진 개체 같았다. 나는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순수한 생각으로 “토끼 친구와 사이좋게 놀아. 새로운 친구들이야”라고 양측에 서로를 소개하며 개들 앞, 마당 가운데에 토끼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벽돌집이 키우는 진돗개 흑구가 토끼에게 달려들어 잔인하게 물어뜯고 내팽개치다 다시 물어대고, 야만적으로 고개를 빙빙 돌렸다. 아롱이도 뒤이어 달려들 채비를 하였다. 아마 그들에게는 순수한 사냥 혹은 놀이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흑구의 모습이 무서워 막을 엄두를 못 냈다. 그러나 아롱이에겐 부탁하듯 엄포를 놓았다. “안돼!”라고 외치며 ‘동물’적인 두 견에게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아롱이까지 타락의 길로 인도할 수는 없다는 죄의식에 제한속도가 사라진 고속도로처럼 당황스럽게 전개되는 상황을 수습하고자 했다.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망울을 틀어막고 아롱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눈 맞춤을 시도했다.


흑구를 따라 당장이라도 토끼에게 달려드려 했던 아롱은 나의 경고성 발구름에 잠깐 놀라더니 이내 유심히 내 눈을 관찰했다. 그리고는 등근육에 들어간 힘을 빼고 자리를 지켜주었다. 그만큼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의로운 강아지였다.


‘아롱이’라는 이름의 원천은 도시 아이들에 대한 동경이었다. 무리 지어 친하게 다니는 아이들 세계에 대한 갈증도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신 엄마, 직장에 다녔던 아버지 손에 자라 방과 후면 맡겨질 곳이 없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예체능 학원에 보내지곤 했다. 물론 부모님의 애정의 뜻이 담긴 자기 계발 시간이었다. 그중 하나가 여덟 살엔 학교를 마치곤 학교 앞에서 셔틀을 타 꽤 규모 있는 피아노 학원에 가는 것이었다. 학원 앞에는 마트가 있었는데, 당시 빵에서 주는 만화 몬스터 스티커를 모으는 게 유행일 때라 맨발로 쉬는 시간에 마트로 뛰어가 빵을 산 뒤, 빵은 버리고 스티커만 취하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 학원은 빌라 골목 사이에 있었는데, 빌라 1층 베란다와 지면 사이의 작은 공간에 개집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피아노 학원 아이들이 귀여워했던, 하얀 긴 털과 검은 무늬를 가진 주둥이 짧은 어미개 ‘아롱이’가 있었다. 내가 처음 만난 아롱이라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가 이 강아지였고, 이 강아지 이름을 따라 쇼핑백에 담겨 있던 아롱이의 이름을 지어줬다. 사실 아롱이라고 짓기로 마음먹고 분양을 받았다고 해도 좋다.


부모님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는 이사를 많이 다닌 탓에, 그리고 집과 학교가 멀어 방과 후 시간을 같이 보낼 또래 무리가 부재했던 탓에 절친한 친구 무리가 없었다(아마도 어머니 사이 커뮤니티의 부재로. 우리 엄마는 학교의 교사였고, 내가 방과 후에도 업무를 봐야 했으며 당시엔 동네 단지 내에서 엄마와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리를 구성했다). 남들도 다 그런 건 줄 알았으나, 학기가 채워질수록 나만 조금 특별하게, 방과 후 엄마 교실에 남아 몇 학년이나 높은 형들과 어울려 문방구에 들리고, 그리고 형들까지 떠나면 학원에 보내지거나 엄마 교실에 조용히 앉아 문제집을 푼다는 걸 알았다. 학교 선생님들이 나를 귀여워해 줘 지루하지는 않았고 행복한 기억이다.


그러나 친구들 사이에 끼어 지내는 법은 잘 배우지 못했다. 피아노 학원에 도착하면, 아이들이 틈만 나면 무리 지어 피아노 학원 앞의 아롱이를 귀여워해 주러 갔다. 나도 동물을 좋아하기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아이였기 때문에 아롱이를 안아주러 아이들을 따라갔다. 그러나 나는 자신감 있게 아롱이를 안아주지 못했다. 나는 아롱이를 귀여워해 주는 아이들과 유대가 없었고, 그들의 관용으로 곁다리로 아롱이를 ‘아롱이’라 불러도 그들을 따라 하는 외지인 취급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아롱이를 키우다시피 그 개를 지켜본 아이들과 신분은 달랐지만 가끔씩 무리의 일원이었던 것처럼 아롱이와 순간적인 교감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누구도 나를 괴롭히거나 따돌리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방문자의 성격으로 학원과 학교 또래 무리를 겉돈 나한테는, 커다란 환영식이 있지 않고는 원래 친했던 척 살갑게 굴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나한테 강아지가 생긴다면, 어느 누구에게도 눈치 보지 않고 든든하고 소중하게 친구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반려견이길 바랐다. 그 이름은 누가 들어도 사랑스럽고 부러워할 만한 대상이길 바랐다. 그래서 나의 이기적인 속마음으로 하얀 바탕에 갈색 얼룩을 가진 쇼핑백 속 강아지는 ‘아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마음대로 이름 지어놓은 난, 아롱이에게 얼마나 불성실했던가. 나는 그녀의 임종을 지키지도 못했다. 초반에는 무거운 밥그릇을 손에 짊어 메고 밥을 몇 번 갖다 준 적이 있었지만, 아마 다른 또래 아이들의 예상되는 결과대로 부모 중 하나인 아버지가 아롱이의 밥을 매번 챙겨 주셨다. 그래도 집에 돌아오면 꼭 아롱이를 만나러 가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했고 아롱이가 답답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한 번은 아버지의 허락을 맡고 아롱이 목줄을 풀어준 적이 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롱이는 목줄이 풀리자마자 새 세상이 도래한 양, 튀어 달려 나갔다. 그리고는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내가 잘 지켜보고 있나 거리를 두고선 날 돌아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영화처럼 나랑 아롱이랑 끈끈한 눈빛을 교환하면서 동네를 달리거나 논두렁에서 뒹굴거나 하는 상상을 했지만, 천진난만한 아롱이는 그저 속박이 풀린 순간을 만끽하려 달리고 멈추고 제멋대로 구는 데에 충실했다. 나는 아롱이에게 서운할 틈도 없이 인간이 동물을 묶어 키운다는 것이, 동물에게 얼마나 큰 죄악이며 이기심인지 깨닫게 됐다.


아롱이는 내가 방문할 때면 항상 두발 벌려 환영해 줬다. 내게 바로 안길 듯이, 한 걸음만 가까워져도 얼른 살을 부비자고 나를 가장 환영해 줬다. 아버지가 저녁마다 밥을 챙겨줘도 이상하게 녀석은 나를 가장 반겼다. 나는 그런 아롱이로부터 치유받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나지만 비봉에 오면 아롱이라는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다. 한 놈은 목줄에 묶여 우리가 주는 밥을 받아먹는 처지이지만, 그 당시 깊게 고민할 만큼 동물 윤리의식이 있지도 않았고 나는 그냥 개를 키운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아롱이는 심하게 짖어 동네 사람들을 귀찮게 구는 법도 없었고 내가 무서워할까 봐 얼굴로 달려들어 핥으려고 들지도 않았다. 내 사랑의 불성실을 감내해 주며, 나를 품어주듯이, 마치 제 새끼를 배 아래 품듯이 내가 도시로부터 상처받고 돌아와도 친구처럼 어미처럼 나를 돌봐주었다.


그러던 중 부모님의 결심으로 나는 도시로 이사 가게 되었다. 아롱이는 살 날이 한참 남아있는 젊은 개인 채였다. 이사 소식을 들은 후로도 아롱이와 헤어진다는 것에 감각이 무뎠었는데, 큰아빠 가족이 왜 방문했는지 모르는 저녁에 나는 도시로 보내졌다. 그게 아롱이와의 공식적인 마지막 자리였다. 나는 아마도 아롱이를 보러 갔다. 그리고 울지 않았다. 잘 지내라고 담백하게 인사하고 부모님의 차로 돌아왔다. 그런데 차가 출발하려는 낌새를 보이자 눈물이 터졌다. 사촌 형이 짓궂게도 아마 그 개는 보신탕 재료가 되어 못 보게 될 거라는 실언을 했다. 형도 어렸기에 내게 칼을 겨눈 농담은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 없다, 그럴 리 없다.’ 눈에 피로가 쌓일 정도로 왈칵 눈물을 쏟으며 이주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나는 그렇게 도시로 보내졌고(정확히는 다 같이 행복하게 이사 간 것인데 아롱이와 헤어졌다는 점에선 비극이었다) 간간이 아빠를 통해 아롱이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가끔 아빠 차를 타고 아롱이를 만나러 가면 될 일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게을렀는지 모른다. 떨어진 상황에 대한 적응이 한몫을 했다. 그리고 아롱이를 만나게 되면 무언가 죄의식이 나를 옥죄일까 봐… 책임지지 못 한 죄스러움이 나를 괴롭힐까 봐. 그러나 아롱이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나를 반겨줄 것을 알기에, 그녀의 순수함이 내겐 무거움이 되어 선뜻 아롱이를 보러 가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일 이년 후 비봉에 살던 집터를 방문했다. 나는 아롱이를 찾았다. 이날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아롱이는 어른 개의 모습이었고, 키가 십 센티는 더 자란 나를 여전히 왕왕 짖지 않는 정중함으로 반겨주었다. 어제 만난 친구처럼 오늘도 놀아보자는 신호로 방방 뛰면서 나를 위로해 줬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큰 과일상자 같은 곳에 회갈빛의 뭉치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롱이가 낳은 새끼라고 했다. 나는 전에 만난 새끼토끼처럼 내가 손을 대면 부정이 탈 것만 같아, 아직 가죽이 얇아 터질 것만 같은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손가락만 대본 것 같기도 하다. 아롱이는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변하지 않은 것 같지만 너무 많이 변해있었다. 책임질 것이 생겼고, 이제는 내가 네 주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위선일 정도로 자식을 낳았고 나 없이 다른 시간을 보냈다. 나는 내 불성실함이 낳은 씁쓸함이 입안에 감도는 걸 느끼며 아롱에게 다시 안녕을 고하고 차에 올랐다.


다시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가 아롱이 새끼들을 보러 가자고 나를 차에 태웠다. 그때까지 아롱이의 생사에 대해 자세히 묻고 답하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무심해 보이지만 듣기 어려운 이야기들은 의리로라도 비밀에 부쳐주는 좋은 기질을 가진 사람으로, 아마 아롱이가 세상을 뜬 것을 내가 미리 듣고 비봉을 방문하는 걸 꺼린 것 같다. 아버지가 말해주지 않아도 나는 은근함과 단단함이 뒤섞인 마음의 준비를 하고 비봉을 다시 방문했다.


아롱이는 없었고 나는 담백하게 아버지께 물었다. “아롱이는 어딨어?” 아버지는 아롱이가 나이가 들어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다. 나는 슬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사촌 형이 짓궂은 농담을 했던 저녁처럼 울지 않았다. 대신 아롱이가 낳은 새끼들이라고 하는 개들의 무리로 다가갔다. 어느새 핏덩이 같던 녀석들은 내 기억으로는 날렵한 시베리안 허스키 같은 모습으로 서로 놀고 있었다. ‘나를 환영해 줄까?’, 두려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그들은, 아주 새끼일 때 나를 한번 거리를 두고 느꼈을 뿐인데 아롱이처럼 나를 반겨줬다. 짖지 않는 정중함으로, 대신 나를 안아주려는 듯 깡충깡충 내게 올라타려는 듯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나는 그전까지도 비봉에서 여러 동물과 교감하는 훈련을 해왔기에(동물을 좋아해서 스스로 했다) 처음 보는 사람을 환영하는 것과 익숙한 사람을 다시 반기는 개의 태도를 구분할 줄 알았다. 그들은, 아롱이의 새끼들은 내가 그렇게 불성실했음에도 나를 익숙했던 것처럼 반겨줬다. ‘우리의 친구 백윤, 우리의 가족 백윤’ 나는 그들의 눈빛이 말하는 바를 읽었다.


사랑한다고 해놓고 나는 얼마나 불성실했던가. 간단한 결심을, 일상을 핑계로 얼마나 미루어왔던가. 목줄이 풀려 뛰노는 와중에도, 내가 잘 있는지 뒤돌아봐 준 아롱을 얼마나 부족하게 그리워해 주었나. 그런데도 아롱이는 새끼들에게 내 냄새를 전해 죽어서도 나를 반겨주었다. 아롱이는 지금도 나의 외로움이 만든 트라우마의 방파제가 되었고 혼자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의 일부가 되어주었다.


나의 흔적만으로 무한한 사랑을 돌려준 나의 제 어미 아롱이. 내 마음속의 공터에서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가 되어 힘이 넘치는 아롱이를 뒤쫓아 초원을 달리는 중이다. 아롱이는 앞서 가다가도 나를 돌아봐 준다. 내가 겁낼까 봐 아직도 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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