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회사에 앉아 있으면 잦은 불안을 느낀다. 누군가로부터 지적당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업무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의외로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나는 빠르게 업무에 적응하여 연차 대비 고효율로 성과를 내는 중이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사실 아무도 나를 건들지 않는다. 업무 메일이 단 한 통도 오지 않은 적도 있다. 내가 맡은 데이터 시각화 툴이 다루기 어렵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 사실상 나와 내 업무 파트너 척척박사 아저씨(시니어님) 뿐이기에, 관리하는 입장이라 업무 기한을 통보받아 쳐내야 하는 입장에 있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적어도 매일 불안했다. 아무것도 손에 쥐고 있지 않으면 잘못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고요가 찾아오면 다음 순간에 균열이 생길까 봐, 이 순간을 버티고 나면 그다음 순간을 버텨내는 식으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금요일 오후 세시가 지나고, 다들 퇴근 준비를 할 때 나는 손에 쥔 불덩이를 감당하지 못해 던지는 심정으로 메일을 배설하고 퇴근해 왔다. 다음 주로 미룬다면 질책받을 것 같은 기분. 내 안의 간수가 철사슬이 거친 모양으로 감긴 몽둥이를 들고, 내가 언제 실수하나 감시하는 기분을 느꼈다. 심리 상담을 통해 사실은 아무도 백윤 당신을 감시하고 있는 중이 아니고, 사람들은 금요일이 되면 집에 갈 생각에 업무에 무관심해지는 법이고, 퇴근 시간이 도래할 때까지 답장을 받지 못할 메일을 보내며 회신이 없었기에 주말 내내 자기가 실수한 점은 없을지 곱씹는 당신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조언을 들었다.
나는 완벽주의를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며 지냈다. 일을 말끔히 처리한다는 데에 있어서 내 개성을 어필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외적으로는 그랬고, 내적으로는 불안을 제거하는 과정이었다. 실수해 버린다면 나를 공격할 것이다. 나를 바보처럼 여길 것이다. 내가 사람들 눈에 뜨이기 시작해서 관심병사가 될 거라는 상상이 내 객관적인 현실 세계를 잡아먹어 버렸다.
나는 일단 완벽주의라고 이름 지은 내 양태가 실제로는 무엇인지 정의하기를 회피하며 지냈다. 들여다보아도 안에서 열어주지 않는 비밀스러운 문고리에 가로막혀 나 아닌 또 다른 내게 진실을 인지하기를 거부당했다. 이 실타래를 풀 수 있었던 건 심리 상담 선생님의 조력 그리고 나은이의 위로였다. 내 완벽주의 성향은 피해의식이었다. 두려움, 불안감. 무엇이 날 그토록 불안하게 만들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