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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윤 Apr 22. 2023

쇼핑몰의 들개들

한 장 소설(2017년 작품)

1


집 강아지 알파는 여름날 마당에서 태어난 폭스 하운드다. 알파는 외동딸로 태어난 첼시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매일 주인이 주는 간식을 씹으며 이에 끼인 육포를 빼내는 게 알파의 취미였다. 간식을 씹는 모습 등, 첼시는 알파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찍어 가끔씩 페이스북에 올리곤 했다.



알파가 두 살이 되던 해에 옆집에 사는 토끼가 마당에 놀러 왔다. 같은 수컷이었다. 알파보다 덩치가 훨씬 작았는데도 다른 동물을 처음 본 알파는 털끝이 쫑긋 솟아서 첼시의 품으로 내달렸다. 알파는 자기도 짐승이지만 자기를 반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살았다. 그래서 다른 짐승이 무섭기만 했다.



2


첼시가 스무 살 때 알파를 데리고 뉴저지 시내로 나갔다. 면허를 갓 딴 첼시는 알파를 보조석에 태우고 자동차를 몰았다. 알파는 보조석에 앉아 밖을 쳐다봤다. 초원이 보였다. 마당에서 봤던 토끼보다 훨씬 큰 동물도 보았다. 내달리는 말들이 보였다. 새끼 말도 있었다. 날아다니는 새들이 보였다. 무슨 동물들인지 알파는 몰랐지만 신기한 짐승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새끼 말 뒤를 쫓는 털 난 짐승은 익숙했다. 자기랑 비슷한 코, 귀, 발, 꼬리가 달렸다. 말 뒷발에 채여 멍들고 터져도 말을 계속 쫓는 털 난 짐승 무리가 있었다. 들개들이었다. 알파는 숨죽이고 그들의 사냥을 지켜봤다. 거리가 멀어 날 리가 없는 들개 냄새가 알파 앞으로 났다. 들개들은 결국 사냥에 성공했다. 새끼 말을 둘러싸고 단번에 물어뜯어 식사를 준비했다. 알파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계속 가죽을 벗기는 들개 무리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중 들개 하나가 알파를 보고 짖었다. 보통 짖는 소리를 들으면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있는데 들개들의 소리는 알 수가 없었다. 거칠고 사나웠다. 알파는 보조석 밑으로 숨었다. 첼시가 놀라 알파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알파는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쇼핑센터였다. 새로 개장한 쇼핑몰이었는데 알파보다 크고 높은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알파 주위로 지나쳐갔다. 지나치게 넓은 공간 때문에 알파는 무서웠다. 우왕좌왕하는 시야에 자기랑 비슷하게 생긴 짐승들이 들어왔다. 주둥이가 긴 개, 다리가 짧은 개, 귀가 접힌 개 등등 여러 마리의 개가 보였다. 그들은 두려움을 참고 있었다. 언제 발에 몸이 치일지, 인간의 발바닥에 자기들 발이 밟힐지 몰라 항상 조심스럽게 걸어 다닌다. 알파도 계속 긴장해야만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떤 개들은 유모차에 태워지기도 했다. 그 개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인형처럼 보였다. 첼시가 가끔 알파에게 쥐어주던 인형처럼.



3


첼시는 스물다섯이 되는 해에 제이콥을 만났다. 알파는 제이콥에게 질투를 느꼈다. 자기와 다른 수컷이 첼시 품에 안기는 게 싫었다. 제이콥이 까슬한 턱수염을 들이밀며 알파에게 키스를 요구할 때 그가 키스를 거절한 이유가 그래서였다.



삼 년이 더 지났다. 첼시는 아이가 생겼다. 제이콥이 아빠는 아니었다. 첼시는 불러오는 배를 쓰다듬으며 알파에게 그걸 자랑했다. 그런데 첼시의 기쁜 목소리에 뒤에 들어오지 않았다. 갑자기 알파는 가래가 끓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알파는 자기의 몸이 이상해진 걸 알았다. 겨우 기어서 거울을 보자 빳빳했던 귀는 접히고 척추가 휘었고 아랫도리는 축 늘어졌다. 걷기도 듣기도 먹기고 힘겨웠다. 알파는 이게 무엇인지 몰랐다. ‘작고 귀여운 네 발이 달렸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4


첼시와 그의 남편 그리고 첼시의 갓난아이가 알파 눈앞에 있다. 알파는 숨 쉬기 어려웠다. 첼시는 알파의 얼굴을 쓰다듬어줬다. 첼시가 우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첼시의 남편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첼시는 끝까지 알파를 사랑해 줬다. 알파는 행복했다. 사람처럼 사람에게 사랑받으며 살았다. 마지막도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그래서 티브이에서 보던 것처럼 인간의 미소를 따라 했다. 알파의 마지막 재롱이었다. 알파는 인간처럼 떠났다. 초원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알파는 사람의 집에서 사람처럼 떠났다.




0


동굴에 뉘인 들개는 몸을 부르르 떨며 꿈에서 깼다. 들개는 집 강아지로 태어나 주인의 앞에서 죽을 때까지의 긴 꿈을 꾸었다. 들개는 먹이를 먹지 못해 갈비뼈가 다 드러났다. 코앞에는 예전에 사냥에 성공해 물고 다녔던 새끼 말 갈비뼈가 놓여있다. 만 걸음을 걸어도 초원에는 눈과 잡초뿐이어서 동굴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겨울에는 먹이가 아무것도 없다. 다른 짐승도 없다. 하지만 다시 동굴을 나선다. 사냥하기 위해. 동굴을 나서기 전 들개는 얼음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는 고개를 거칠게 흔들며 생각했다. ‘재수 없는 꿈이었어.’ 들개는 밖으로 나간다. ‘인간에게 키워지는 꿈이라니’ 들개는 기분 나쁜 꿈에 속이 안 좋았다. ‘초원을 본 적 없는 집개들이라고. 멍청한 집개들.’ 들개는 걸을 힘이 없다. 하지만 털이 빠지면서도 밖으로 향한다. 사냥하기 위해 억지로 발걸음을 뗀다. 들개는 동굴을 나왔다. 기분 좋은 눈바람이 털 사이로 스며든다. 몇 걸음 더 걸었다. 들개는 그대로 눈밭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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