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하고 나서도 내 불안은 이어졌다. 나는 의식하지 못했다. 이것 말고도 가족과의 갈등, 지인과의 마찰, 대학 생활 중 유난히 예민했던 본인을 자각하지 못한 자기 기질 부정의 대가로 나는 점점 더 스트레스에 취약해져 갔다. 요즈음 우스운 말로 MBTI 중 J 성향이 Judgement, 계획형 인간이라고 하는데, 나는 엄습하는 불안 그리고 침범에 대비하고자 모든 걸 계획하기 시작했다. 두렵다면 포기해 버렸다. 나를 짓누르는 것 같다면 도망쳐 버렸다.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선 닥쳐서 대응하지 못하고 그 전에 수십 개의 경우의 수를 분석해 머릿속에 룸을 만들었다. 그래서 내 사고의 상태를 심상화하자면, 텐 바이 텐 수납장이 벽에 꼭 들어맞게 직사각형 백 가지 주둥이를 꾹 닫고 박혀 있는 형태다. 나는 올바른 자리를 찾고자 신중하게 주둥이들을 쳐다본다. 베이지색, 바우하우스풍의 색을 띤 이것은 미니멀리스트의 비밀공간 같다. 주변에 티끌 하나가 없다. 그래서 깨끗하다, 정리가 잘 되어있다 하지만, 이것은 집착이다. 엄습하는 모든 걸 배제한 결벽...
회사에선 사람들과 부딪혔다. 소리 지르고 욕했다는 것이 아니다. 논쟁이 오가고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았다. 내가 항상 내세운 슬로건은 집요하게, 똑바로, 바르게, 효율적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굉장히 이상적이었다. 100을 향해야 90이라도 건진다는 자기계발서식 철학으로 모든 일에 접근했다. 반절은 꼼꼼한 내 성격에 찬사를 보내고 반의반은 별로 관심이 없고, 나머지 사람은 날 피곤해하거나 날 탐탁지 않아 했다.. 난 나를 환영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집중해서 화가 자주 난 상태였다. 어째서 똑바로 하지 않는가? 어째서 적당히 하려고 하는가? 프로페셔널하지 못한가? 이 사상에 숨겨진 진실은, 두려움이다. 나를 욕할까 봐 무서워요. 내가 바보처럼 보일까 봐 두려워요. 바들바들 떨려요. 가만히만 있으면 누군가가 나를 때리고 밀칠 것 같아요. 나를 괴롭히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