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뒷골목, 소세계가 모이는 장소.
회사물을 빼고 싶다면 퇴근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빠른 걸음으로 향하는 곳이 있다. 연희동 외진 곳, 뒷골목에 자리 잡은 디파트먼트 이엔. 본래는 빈티지 가구점이었던 이곳은 아름다운 장발을 가진 아내와, 같은 모양이지만 좀 더 푸석한 느낌의 긴 머리를 가진 남편,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두 아이가 함께 꾸린 내 삶의 작은 안식처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식처라고 과하게 포장하기는 좀 그러한데, 근래 반년 동안은 알게 모르게 이곳에 의지했다.
이곳에서 감동받은 점 하나는 음식이 맛있다는 것이다. 카페라고 하기엔 음식 종류가 굉장히 많다. 파스타, 치킨 날개 튀김, 요거트 주변에 달콤한 대추 슬라이스를 곁들인 어떤 메뉴, 고구마 아래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떠주는 디저트, 비스트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있어도 없어도 좋을 양산형 식사가 아니라 가볍지만 음악의 무드와 적절히 어울려 공기가 일렁이면서도 가벼웠다 무거워질 수 있도록 가게에 품격을 얹는 게 바로 이런 음식들이다.
관건은 음악이다. 난 이곳에서 디제잉 문화를 처음 접했다. 이태원의 어떤 작은 클럽, 그곳에서 풍성한 담배 연기를 헤치며 집으로 돌아와 꼭 머리를 감고 잤던 그 시절과는 다르게, 내가 문화라고 특이점 있는 수준의 체험을 한 것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이곳에서 사토 유키에를 만났다. 그는 한국에 자리 잡은 베테랑 밴드의 리더이고 일본의 록, 시티팝을 여과 없이 손님들에게 소개했다. 활동명을 기억하지는 못하는 다른 디제이들이 있다. mush무엇무엇... 최근에 가장 인상 깊었던 그녀. 낮부터 시작해 저녁 아홉 시가 되니 플러그를 뽑기 직전이었던 그때, 아쉽게 마무리가 되어가던 즈음에 당도해 몇 음악을 듣지는 못했지만, 이곳은 한국이요 그러나 유럽, 아메리카, 바다 한가운데의 섬 어딘가, 심상에 남아있는 다양한 종류의 리듬이 섞인 헬레니즘적인 음악이었다.
나는 주인장과 몇 마디 나눈 적이 있다. 지금도 문을 열고 들어가면 눈웃음 지으며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는 예술을 하다 본래도 음악을 트는 가게를 했었고, 거기서 인연을 맺은 음악인들을 초대해 지금의 디파트먼트 이엔을 지었다고 했다. 그가 풍기는 아우라는 독특하다. 무기력한 히피지만 손님이 몰릴 때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서빙하고, 오더 그리고 내어갈 음료, 음식들의 상태를 점검한다. 가구와 디제잉 부스의 위치를 다각도로 연구하고, 변화를 주는 흔적을 페인트칠하듯 분위기에 묻힌다. 내게 무엇을 하는 자냐고 그는 물었다. 난 작가가 되고 싶어 글을 쓴다고 했다. 나는 직업으로서 예술가가 아니기 때문에 어정쩡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직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지향한다는 날 독려하듯 추켜세워 주었다. 우리는 이름을 나누고 적당한 거리를 재면서 부드럽고 긴장되는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난 이 사람께 아빠 엄마 성을 합쳐 이름을 지어도, 엄마 성이 붙은 두 글자가 성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며, 엄마 성은 이름으로 분류된다는 것을 처음 들었다.
어떤 밤이 되면 서울의 어느 사각지대에서 각자 분투하다, 세련된 빈티지 가구가 조용히 비트를 튕기는 이곳으로 모이는 사람들. 머리가 긴 사람, 춤을 추는 사람, 독특한 옷을 입은 사람, 밤이지만 선글라스를 쓴 사람, Y대 잠바를 입고 과제를 하는 사람, 눈병이 났는지 안대를 하고 와서 작은 의자에 앉은 사람. 사람들은 그 좁은 라운지에서 각자 반경 오십 센티의 원을 그려놓고 천장 그리고 바닥을 쳐다보며 자기 리듬에 맞춰 춤을 춘다. 나도 자신감이 좀 생기면 의자 뒤에 멀뚱히 서서 조금씩 몸을 흔든다. 소세계가 삼삼오오 모여 음악 카펫 위에서 매일 다른 하루를 만드는 곳 디파트먼트 이엔. 아름다운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