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이 센 커피집

연희동 룩백(Lookback)

by 백윤

주말에 커피집 한 곳을 다녀왔다. 자전거를 끌고 연희동을 빙빙 돌다가, 저번에 사람이 많아 자리에 앉지 못한 커피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거기엔 수염이 덥수룩하게 멋지게 났고 장발 머리 위로 두꺼운 덮개 같은 모자를 푹 얹은 바리스타가 있다. 그는 이 가게를 시작한 사람이자 커피에 진심인 바리스타다. 내가 이 사람을 커피에 진심인 자라고 부르게 된 경위가 있다. 그의 앞에 처음 서서 메뉴를 고를 때, 나는 물었다.


"롱블랙과 아메리카노가 어떻게 다른 건가요?"


이번달 초에 호주 여행을 마치고 다녀온 나는, 호주 사람들이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고 롱블랙을 마신다는 걸 알았다. 구글링으로는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 추출물을 먼저 붓고 그다음 더운물을 얹는다. 그 반대 순서로 만든 게 롱블랙이라고 구글은 그랬다. 그러나 룩백의 답변은 달랐다. 그것은 아마도 잘못된 정보이고, 롱블랙엔 더 진한 에스프레소가 들어간다고 했다. 추출 방식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가게마다 스타일이 다를 텐데, 자기는 미국에서 커피를 공부하고 돌아와 호주에서 마시는 정확한 방식은 모르지만, 차이를 두기 위해 자기 가게에선 아메리카노 보다 진하게 내린다고 했다.


나는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고 자리로 향했다. 역시 순서만 반대일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두부 가르듯이 정확한 룰이 없는 것 같아 커피 세계가 더 흥미롭게 보였다. 자리에 앉아 얼마 전 구입한 맥북을 설렘을 앉고 열었다. 윈도우 노트북 안에서 워드, 한글로 작업하는 데에 불편을 느껴 다른 방안을 찾아보던 중, IOS 애플리케이션으로 글을 쓰는 작가의 글쓰기 방식을 참고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시작해 보려고 패드를 두들기는데, 바리스타는 내 앞에 서서 대화를 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맥북을 여는 것도 좋지만 흥미로운 사람의 속이 열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더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는 호주를 꼭 가보고 싶다 했다. 호주 사람들은, We have a big coffee culture, 라고 자신들의 커피 문화에 자부심이 있고 실제로도 훌륭한 커피가 있다. 집집마다 다른 브랜드라고 불러도 좋으며, 프랜차이즈 외화 카페가 살아남기 힘든 시장이다. 롱블랙, Batch 브루, 카푸치노, Flat White, 감칠맛 나는 커피가 많은 곳이다. 이곳에 다녀오려면 2주는 자리를 비워야 하는데, 자기가 커피를 내리는 이곳을 비우는 것이 자신에게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아쉬운 일이라는 게 그의 마음이었다.


이어서 우리는 사람의 취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산미 있는 커피가 고고한 취향의 상징이 아니라고 했다. 커피는 일상의 것이다. 취향엔 상하가 없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 에스프레소가 더 나은 취향이 아니라고 했다. 물론 오리지날리티는 있다. 쉽고, 친하고, 맛있고, 캐주얼한 문화가 그보다 앞설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나는 이것보단 보수적인 접근을 하는 편이다. 오리지날리티를 분명히 해두는 걸 선호하는 게 내 취향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생각은 바리스타와 같았다. 비싸거나, 어렵거나, 화려하게 포장하는 일로 낯선 문화를 도구로 문화의 상하를 나누는 짓은 좋은 문화를 한정하는 반문화적인 행동이다. 몇 천 원의 커피는 몇 천 원이고 쉽고 모두에게 열려있고 모두가 즐길 수 있어서 커피인 것인데, 힙하고 멋지고 프리미엄이고 과시가 되게끔 몸집만 불리는 짓이 현명하진 않아 보인다.


난 어떻게 살아왔는가? 만들었다고 하면 썼던 글들이다. 한두 편 영화를 찍은 적도 있다. 일하는 회사에서 기획, 제작한 프러덕트들이 있다. 지금보다도 힘을 빼야겠다. 내가 만드는 것들은 위아래를 나누고, 과시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거울삼아 화려한 나를 감상하기 위한 치장품이 아니다. 그런데 자꾸 그렇게 되어버릴 때가 있다. 불안하고 어렵고 나약하기 때문이다.



이전 06화치치와 호스트가 알려준 다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