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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와인 마셔봤니

비수기 시칠리아 탐험

by 애들 빙자 여행러

반전의 시칠리아 와인


나는 와인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엄청난 전문가는 아닌 것 같고. 난 와인으로 유명한 산지로 여행을 다녔다. 그동안 다녔던 프랑스 보르도, 스페인 리오하나 리베라 델 두에로, 이탈리아 키안티, 몬테풀치아노 등 토스카나와 바롤로 같은 북쪽 지방 등. 와인을 찾아 애덜을 앉고 업고 다녔다. 그러다 이탈리아를 좋아하게됐고 올해 쉽게 가기 힘들 것 같은 시칠리아 섬으로 여행지를 정했을 때 와이프는 거기 와인도 유명하냐고 물어봤다. 와이프는 술을 거의 마시지 못 했으나 결혼 이후 술이 조금 늘어 와인 반 잔 정도를 마시면 취하는 가성비 좋은 사람이다. 허나 시칠리아를 정한 건 사실 와인 때문이 아니라 풍성한 식재료와 광활한 자연이 좋았을 뿐. 시칠리아 와인을 접해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남쪽의 습하고 더운 지역이라 내가 싫어하는 드라이하지 않은 와인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 보기도 했다.


비수기 와이너리 투어가 좋은 점은 관광객이 적거나 없어 스폐셜 경험을 할 수도 있다는 건데. 나의 최애 와이너리인 스페인 리베라 델 두에로에 위치한 'Emilio Moro'을 잊을 수 없다. 예약도 없이 그냥 구경이나 해볼량으로 문을 열고 머리를 빼꼼 내밀었는데 담당자가 놀라는 것이다. 어떻게 왔냐고 해서 걍 구경이나 해볼까 해서 왔다고 했다. 보통 와이너리 투어 예약을 하면 소요시간은 1시간 정도이고 30유로 안팎의 투어비에 마지막 3~4잔을 시음할 수 있다. 난 특히나 오크통 저장공간이나 포도밭 투어는 사실 힘들기도 하고 거기서 거기 같아서 바로 시음하는 것을 원하기에 최근에는 예약보다는 그냥 예약없이 Shop으로 바로 가서 시음하는 것을 선호했다. 담당자는 처음엔 당황하다가 들어오라며 인생 와인이 된 'Malleolus'를 맛보게 해주었다. 생전 그런 향은 처음 맡아봤다. 가죽, 후추 그리고 담배(?) 향이 뒤섞인 그 특유의 고급스런 향이었다.

비수기에 이 모든 시음이 꽁짜였다.

와이너리 투어의 꽃은 해당 와이너리에서 운영하는 호텔 숙박 또는 그들의 레스토랑에서 와인페어링하며 먹는 식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뭐 수익을 바라지 않는 사업을 없겠지만은 진정 본인들의 와인 스피릿(?)에 가장 적합한 식사나 건축을 보여주는 경험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이번 시칠리아 여행에서는 와이너리 식사를 예약하고 싶었고 검색을 하고 있었는데 글쎄 2월에 문을 아예 닫아서 예약을 받지 않는 와이너리들이 많았다. 순간 당황했는데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로 화산섬인 에트나 화산 근방에 대표 와이너리는 3곳정도로 추려볼 수 있었다. 'Donnafugata', 'Tenuta', 'Benanti'. 시칠리아 서쪽지방에도 와이너리들이 많이 있긴 했는데 동선상으로 애매했고 더군다나 찾아보니 마르샬라 지역 주정 강화 와인이 유명했는데 나는 이런 강한 도수의 '포르투 와인' 스타일의 걸쭉한 와이도 별로 였기에. 특히나 포도밭에 화산재의 역학 관계가 궁금하기도 했다. 이들 중 순서대로 들어가다가 2월 예약을 받는 와이너니에 예약하게 되었는데 그곳은 'Benanti' 와이너리.

점심 식사와 와인페어링은 90유로에서 200유로까지 종류가 있었는데 난 그 중간인 120유로 상품을 예약을 했다. 와인 없이 그냥 식사만 하면 60유로였다. 우린 어른3명에 아이2명이었는데 어른 1명은 운전을 해야했기에 풀코스는 2명으로 예약했다. 총 420유로였고 당일 취소는 안된다는데 결재를 하지 않았는데 노쇼 수수료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몇 가지 궁금증이 있어서 메일로 문의했는데 답변이 2월초에 와서 의아했는데 이곳도 1월에는 문을 닫았다가 2월초부터 다시 오픈하여 답변이 늦었다고 알려왔다.


와이너리는 에트나 화산 아래에 위치해 있었는데 에트나 화산을 한 번 경험코자 올라가다가 활화산이란 소식에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가지 말자고 울려고까지 했다. 자욱한 안개에 매우 위험해 보이기도 하여 차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한 시골 마을에 위치했던 와이너리는 구글 네비를 찍고 갔음에도 입구가 너무나 작고 도로변에 위치하여 몇 번을 돌다가 간신히 발견했는데 들어가선 본 풍경은 너무나 고즈넉했다.

원래 일정은 13시30분에 시작하여 2시간 코스였는데 우리는 이보다 앞선 13시전에 도착하게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대기실에 앉아 있었는데 잠시만 기다리라고 화이트와인과 아이들을 위한 음료를 내왔다. 혹시나 했는데 해당 프로그램에는 우리 가족만 참여하게 되었다. 배가 고픈데 포도밭 투어를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우리 표정이 너무 배고파 보여 바로 식사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와인은 순서대로 5가지로 페어링하는데 첫번째 스파클링 와인은 치즈와 햄으로 구성된 플레이트로 시작되었다. 설명은 본인을 이 와이너리 가문의 아들이라며 매우 자랑스러워하던 남자였다. 특히 치즈는 3가지가 나왔는데 염소젖으로 직접 만든 치즈로 1년, 2년, 5년 치즈를 맛볼 수 있게 해주셨다. 치즈가 오래될수록 진하고 향도 녹진한 것이 오래된 치즈가 왜 맛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곳에서는 쓰는 식재료는 모두 근처 또는 직접 농사짓는 것들이라니 시칠리아에서 맛 본 음식들 중 단연 최고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도 지루하지 않게 설명을 해주셨고 아이들을 위한 쥬스와 햄을 따로 준비해 주시는 등 배려해 주셨다. 가지를 좋아하지 않는 우리들도 이들의 가지요리 '카포타나'가 이렇게 맛있는건지 처음 알았고 돼지구이인 '포르케타'는 레드와인과 마셔야 한다는 등 설명을 이어갔다. 특히나 2병의 레드 와인이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숙제를 내주시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갖는 등 식사 시간 2시간이 금방 흘러가고 있었다. 레드와인의 미세한 차이. 그리고 와인이 열리면서 맛의 차이가 어떻게 변하는지까지 완벽한 체험을 경험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와인은 현지에서 가장 맛있을 때 먹는 것이 최고가 아닐까. 마지막에 손수 만든 시칠리아 전통 디저트와 디저트 와인까지 페어링하고 마지막에는 자칭 '미슐랭 출신'이라는 세프들까지 나와서 인사해 주셨다. 와이너리 투어는 사양했는데 마지막 코스는 와인샵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식사비와 와인 구입비로 엄청난 금액을 썼지만 시칠리아에서의 경험 중에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었다.


시칠리아 네추럴 와인의 정신


검색을 하다보면 팔레르모에 유명한 네추럴바(dal Barone)가 있다고 해서 지친 몸을 이끌고 가보았다. 네추럴 와인은 나도 그리 익숙하지는 않다. 나는 안정적이고 가격이 합리적인 일반 상업적 와인을 더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일단 주인에게 와인 추천을 요청했고 이미 저녁 식사를 하면 한 병을 먹고 왔기에 가벼운 화이트 와인으로 요청했다. 첫 와인은 매우 샤우어한 와인이었는데 이 와인도 맛이 나쁘진 않았다. 두 번째 추천한 와인이 너무도 괜찮아서 한 병(24유로정도했다) 사오기까지 했는데 너무 괜찮아서 다음날 해당 와이너리를 찾아가려고까지 했다. 비가 추적추적오던 팔레르모의 작은 골목길 차가운 겨울밤에도 와인마니아들은 야외 좌석이 꽉찰만큼 분위기있게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와인의 맛은 거칠지만 이들의 마음은 뜨거워 보였다.

매일매일 하루에 와인 1병을 먹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1주일정도 지나면 몸에서 잘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지의 저렴한 와인을 놓치고 갈 수도 없으니 어찌하란 말인가. 아그리젠토에 가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근처 시골의 한적한 식당(사실 미치 찾아 놓긴 한 곳)에 들어가 이 집에서 제일 좋은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한동안 고민하던 주인은 20유로짜리 귀한(?) 와인을 추천해줬는데 그 맛이 상상을 초월하는거다. 여행에서 우연하게 맞나는 새로운 와인은 날 언제나 행복하게 만든다. 이후 아그리젠토 와인도 믿음을 갖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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