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신발끈

양꼬치 오마카세를 아십니까

중국 취푸 로컬 음식 탐방

by 애들 빙자 여행러

지난주 왕복 95000원 중국항공권이 떠서 급 중국에 다녀왔습니다. 제남이란 곳으로 중국 산둥성의 주도라는데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찾아보니 제남은 물의 도시라 했는데 사실 제남은 공항만 왔다 갔다 했을 뿐입니다. 저희는 제남 바로 밑 ‘타이산’이라 불리는 태산-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중국의 중심을 상징하는 높게 뻗은 산-등반과 그 아래 공자의 탄생지로 유명한 ‘취푸’라는 도시에 머물렀습니다.


5월임에도 이날 날씨는 섭씨 34도를 육박하여 거의 여름날씨였고 공자의 흔적을 따라가다 한낮에는 숙소에 들어가 쉬기도 했는데요. 저녁이 되어 슬슬 산책 겸 저녁을 먹으러 나왔는데. 공자묘 근처 관광지와는 반대방향으로 걸어가는 중에 한산한 거리에 유일하게 사람이 모여있던 바로 그곳을 발견했습니다. 간판도 없어 다시 찾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양꼬치집.

간판도 없는 집. 안에서 꼬치를 구워서 이모들이 나눠주신다

안에도 자리가 있었지만 저녁 날씨는 더위는 가시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그냥 길거리 좌판에 앉았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먹고 있었는데요. 함께 갔던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는 동료가 주문을 맡았는데 주인 할아버지랑 얘기하다가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리곤 돌아와서는


“저 할아버지가 하는 얘기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

“왜 말이 빨라? 아님 사투리야?”

“몰라, 그냥 잘 모르겠어. 그냥 앉아있으면 된데”


메뉴판도 있었는데 모든 꼬치류는 1개에 1.5위안이니 우리 돈으론 약 300원이었다. 뭔가를 주문하고 싶었는데 그냥 앉아있으라고만 했단다.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마치 오마카세집 같았다. 자리에 앉아있으면 이모님이 꼬치를 한 사발 갖고 나눠주신다. 대화를 할 필요 없었다. 서로 눈이 마주치고 오케이-고개를 끄덕거린다-하면 꼬치 5~6개를 놓고 가신다. 좀 큰 꼬치(닭날개 등)에는 꼬치가 2개씩 꽂혀있으니 3위안이다.

꼬치는 양은 쟁반에 이모님들이 양껏 놓고 가신다. 나중에 꼬치숫자로 계산한다.

접시 요리도 있었는데 우리는 감자볶음을 시켰다. 약간 설익은 식감이 아삭거려 먹을만했다. 고추 같은 걸 넣어준 것 같은데 매콤한 맛도 올라왔다. 접시는 일률적으로 30위안 정도 했던 것 같다. 주변엔 피두부나 야채 볶음을 시켜 먹었다.


필요한 물품은 본인이 갔다 먹는다. 찍어먹는 소스류나 식기 등. 차가운 맥주는 없다. 그런데 대부분은 술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 어느새 빈자리를 없고 이제 안쪽 자리까지 다 찼다.


이모님의 센스는 뛰어났다. 꼬치의 종류는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다양했다. 다양한 고기의 종류는 물론 부위별로 나눠주셨다. 힘줄도 있었고 하얗게 물컹한 게 연골(?) 같기도 했다. 토요일 저녁이었는데 술 먹는 사람뿐 아니라 아이들도 가족과 함께 식사하러 온 듯했다. 꼬치에는 식빵은 물론 구울 수 있는 많은 것이 계속 구워졌다. 이러다 꼬치 100개는 충분히 먹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꼬치의 종류가 한 번 돌았는지. 처음에 먹었던 꼬치가 다시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이모님을 힘겹게 보고 있었다. 이모님은 꼬치를 2개만 놓고 가셨다. 아. 이모님이 우리 표정까지 읽으며 꼬치의 양을 조절하는구나. 야장이라 사방에서 담배연기가 자욱하다. 어린이들이 걱정이다.


계산을 하는 방식은 단순하다. 우리가 먹은 꼬치를 한 움큼 지어서 개수를 센다. 고맙게도 남긴 꼬치는 빼주신다. 우린 꼬치 70개를 먹었다. 맥주랑 감자볶음까지 약 150위안이 나왔다. 쪼그리고 오래 앉아 있었더니 다리가 저려왔다. 여기저기서 다리 운동을 많이 했다. 화장실은 차마 가보지도 못했다.


다시 찾아갈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현지 음식을 마주하는 일은 정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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