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 Jin Jan 18. 2024

환자와 공감하기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관계(Rapport) 형성하기

의사국가고시를 합격하기 위해서는 필기시험과 실기 시험 모두 치러야 한다. 실기시험은 다시 CPX와 OSCE로 나뉜다. CPX(Clinical Performance Examination, 환자진료평가)는 모의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을 평가하는 시험이고 OSCE(Objective Structured Clinical Examination, 단순수기평가)는 동맥혈 채혈, 도뇨관 삽입 등 기본적인 술기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의사국가고시 실기시험은 CPX 와 OSCE를 모두 치러야한다. 사진출처: 국시원


모든 시험이 그렇듯 평가 기준이 있고 족보가 있다. 특히 모의환자를 진료하는 CPX 시험에서 중요한 족보가 하나 있다. 환자를 처음 볼 때 "오래 기다리셨죠?" 혹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죠?"라고 말하는 것. CPX 시험의 평가 기준 중 하나가 '환자와 공감하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중간 환자의 증상을 들으며 "많이 아프셨겠네요" 라던지 "불편하셨겠어요" 라며 공감의 말들을 해줘야 한다. 평소 MBTI 상 T 성격이 강했던 나는 이런 말들을 의식하지 않으면 곧잘 빼먹곤 했다.




공감(Empathy)은 그리스어 "Empatheia"에서 유래되었다. 안(In)의 의미를 지닌 접두사 Em과 고통이라는 의미의 Pathos 가 합쳐져서 '상대방의 고통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가 있다. 의사로서 공감은 환자의 고통을 헤아려주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의사는 수많은 질병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기에 공감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흉부외과 인턴 주치의를 할 때였다. 내 환자 중 한 명은 폐농양이 심해 수술적 치료를 한 후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결국 재수술이 결정되었고 환자 및 보호자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내 부모님과 나이가 비슷한 환자와 보호자를 보며 안쓰럽기도 하고 정말 치료가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수술 동의서를 받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그분은 재수술을 잘 받았고 회복하여 퇴원했다. 그리고 다른 환자와 같이 내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 이윽고 나는 정형외과 레지던트가 되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과 똑같이 정형외과 외래에서 초진을 하고 있는데 잊고 있던 그 환자가 불쑥 초진실로 들어오는 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는 눈물을 왈칵 쏟으며 손을 잡고 반갑게 인사했다. 그동안 나를 찾기 위해 고생했단다. 그런데 내가 흉부외과를 떠나니 어디로 간 지 알 수가 없고, 병원에 물어보니 개인정보라 알려주지 않고 해서 속상했단다. 그런데 우연히 정형외과 진료를 보러 왔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너무 반가워서 이렇게 눈물이 난다고 한다. 나를 이렇게까지 반겨주고 찾아준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얼떨떨했다. 좀 더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때 재수술 동의서를 받을 때 너무 감사했단다. 본인이 재수술을 앞두고 두려워하고 있을 때 괜찮아질 거라고 다독여주었던 게 의지가 많이 되었단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던 인턴이었을 뿐이고 수술은 교수님이 하셨을 뿐인데 부끄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카센터를 운영하시던 아저씨는 '선생님은 사람을 고치지만 자기는 차를 고치는 사람'이라며 언제든 와서 무상으로 수리받으라 하셨다. 차가 없던 나는 이용할 일은 없었고, 아저씨는 어느 날 이제 카센터를 접고 호주로 가서 남은 여생을 살겠다며 인사를 하러 오셨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의사로서 환자와의 공감은 "진심으로 환자가 낫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단순히 형식적인 "오래 기다리셨어요"와 같은 말이 아니고, 일반적인 설명에도 말과 마음의 따뜻함이 전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의사-환자 사이에는 신뢰관계(Rapport)라는 개념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믿어야 치료결과도 좋아진다. 하지만 의사는 진상인 환자 몇 명을 보다 보면 진절머리가 난 나머지, 다른 환자들에게 형식적으로 대한다. 또 환자는 환자대로 의사가 나한테 과잉진료를 하지는 않는지, 오진을 하지는 않는지 휴대폰 녹음 기능을 켜고 조용히 폰을 책상 위에 올리고 덮어놓는다. 그리고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옆건물에 있는 다른 병원에 이른바 '닥터쇼핑'을 하러 간다. 제대로 된 신뢰관계가 형성될 수가 없는 시스템다.


OECD 국가 중 가장 자주 병원을 방문하는 대한민국. OECD 국가 국민들의 1인당 평균 의사 방문 횟수는 6.7회로 우리나라 절반 수준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진상인 환자도 일부고, 과잉진료 및 오진을 하는 의사도 일부다. 하지만 그 일부가 전부인 양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지금이 안타깝다.


입에 3초 머무는 말이 가슴에는 30년 상처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의사도 환자에게 진심으로 낫게 해주겠다는 마음의 따뜻한 말을, 환자도 의사를 믿으며 감사하다는 따뜻한 말을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