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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Jin Jan 24. 2024

편 가르는 사회, 그리고 환자와 의사

내 편? 네 편?


2024년 1월 26일 웨이브에서 첫 방영하는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포스터

2024년 1월 26일 웨이브에서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를 첫 방영한다. 보수 vs 진보, 이퀄리즘 vs 페미니즘, 흙수저 vs 금수저, 꼰대 vs MZ처럼 극과 극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출연해 벌이는 일종의 서바이벌 예능이다. 편 가르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던 요즘, 이런 예능까지 나온다니 사회가 확실히 분열하고 있다고 느낀다. 편 가르는 사회는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작게는 한 가정 내에서 혹은 학교 내에서, 더 나아가서는 정치에서도 편을 가른다. 왜 반복적으로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 분열할까?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고 싶다. 이때 나와 대비되는 상대를 만들어 상대방이 충분히 나쁜 사람임을 증명하면 나는 쉽게 좋은 사람이 된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것보다 남을 깎아내리는 이 더 쉽다.


편을 나누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우리 편은 피해자, 상대 편은 가해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부자와 빈자다. 흔히 부자는 스크루지 영감처럼 악덕하고 못된 사람, 그리고 돈이 적은 사람은 심성이 곧고 착하지만 부자들로부터 피해를 입는 선량한 소시민으로 그린다. 부자들이 어떤 노력으로 부자가 되었는지는 궁금하지 않고, 또 부자들이 내는 비싼 건강보험료 덕분에 가난한 들이 값싼 의료 진료 혜택을 보는지 관심이 없다. 그저 상대방은 가해자고 나는 피해자다.


부자는 악덕하고 가난한 자는 선량하다는 인식을 깨버린 영화 기생충


결국 편을 가른다는 것은 피해의식으로 이어진다. 나는 피해자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해의식은 스스로를 자멸시킨다. 나의 하루가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이 되기보다, 대편의 하루가 어제보다 더 안 좋은 오늘이 되길 바란다. 100점 만점인 시험에서 내가 점수를 더 잘 맞아 100점에 가까워지기보다, 상대방이 더 많이 틀려 상대방이 0점에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파멸적인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피해의식은 어쩌면 불행을 겪는 과정 속에서 생기는 무의식적인 방어기제일 수 있다.


불행한 일을 겪으면 사람의 머릿속은 그렇게 된다. 불행의 인과관계를 따져 변수를 하나씩 제거해 보며 책임을 돌릴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대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중략) 그러한 집착은 애초 존재하지 않았던 인과관계를 창조한다. 끊임없이 과거를 소환하고 반추해서 기어이 자기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어낸다. 내가 가해자일 가능성은 철저하게 제거한다.

-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허지웅 씨가 쓴 [살고 싶다는 농담]에서 본 인상 깊었던 구절이다. 그렇다. 우리는 끊임없이 남 탓을 한다. 내가 운전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돌아가게 되면, 운전을 한 내 탓보다는 내비게이션을 같이 안 봐준 옆사람 탓을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일본의 265배, 영국의 895배 많이 소송당하는 우리나라 의사
해외와 달리 의사에 대한 고소가 많고, 또 유죄율도 높다


편 가르는 사회는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환자는 피해자, 의사는 가해자가 돼버린 지 오래다. 의사는 신이 아니다. 아무리 의학이 발전했다 해도 모든 환자들 결과가 좋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의사가 환자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 다만 의사가 '악의적'으로 환자에게 해를 가했을 경우에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르다. 일단 결과가 나쁘면 혹시 의사가 잘못한 거 아니야? 진단을 놓친 거 아니야? 치료 시기가 잘못되었던 건 아니야? 검사를 미리 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수많은 질문들을 쏟아낸다. 그리고 고소한다. 의료 관련 소송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보다는 유죄추정의 원칙 적용된다. 즉, 의사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하면 유죄다. 그래서인지 진료 경력이 오래된 선배들과 술자리에서 얘기를 하면 의무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시곤 한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설명했어도 설명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면, 환자가 못 들었다고 하는 순간 설명을 하지 않은 게 된다.)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일어나자 작년 12월부터 국가가 전액 부담하기로 했다.

한편, 의사가 잘못하지 않음을 증명해도 책임을 져야 할 때도 있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제도는 보건의료인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분만 사고가 일어나면 최대 3천만 원 범위 내에 보상하는 제도이다. 국가가 70%, 의료진이 30%를 부담한다. 분만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안 좋으면 배상까지 했어야 하는 제도다. 논란이 많았던 이 제도는 약 10년 간 유지되다가 작년 12월부터 국가가 100% 부담하기로 했다.






물론 '의학'은 지식적 장벽이 높아 환자 및 보호자가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 그럴수록 서로의 역할이 중요하다. 의사는 환자 및 보호자에게 분한 설명을 해주고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 최선의 치료를 다해야 한다. 그리고 환자 및 보호자도 치료해 주는 의사를 믿고 따라야 한다. 옛 시어머니처럼 의료 과실이 있는지 없는지 눈에 불을 켜고 의사 및 간호사를 감시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집단에 미꾸라지가 한 마리씩 있듯 의사 집단에도 분명 충분 설명을 하지 않는 의사도, 그리고 정말로 악의적인 의료 과실을 행하는 의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미꾸라지 의사들 몇 명 때문에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사들의 의지마저 꺾지는 않았으면 한다.




의과대학생일 때 늘 듣던 격언이 있다.

"Do no harm"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나부터 올챙이 적 생각 하며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미꾸라지가 되지 않게 노력해야겠다.


아무리 요즘 세상이 가르고 분열하는 사회고 해도 의료 현장에서만큼은 환자와 의사가  되어 병을 치료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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