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둔 시간이 특히나 길었던 어느 가을날,
미안한 마음에 얼른 데리고 나가 2시간가량을 뛰어놀고 집에 와 뻗은 네 숨소리가 유독 조용했다.
그날 코 고는 소리가 나지 않는 건
적정 체중인 데다
기관지도 멀쩡한 어리고 건강한 네가
숙면을 취하고 있기 때문인 건 알았지만,
그날따라 유독 피부로 느껴지는 고요함에 나는 수시로 네가 숨을 쉬는지, 잘 자고 있는 게 맞는 건지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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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존재의 죽음에 대해
이리 구체적으로 두려워해 본 적이 있을까?
없다.
없어
기네스북에 기재될 기적이 딱 너에게 일어난다 해도
향후 20년 안에 반드시 벌어지고야 말 일인 너의 죽음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못 견디게 힘들까?
펫 로스 증후군, 뭐 그런 게 진짜 올까?
몇 년에 걸쳐 예견되었기에 정작 되게 덤덤할까?
왜 진짜 슬프면 눈물도 안 난다고 하잖아.
오열하는 게 아니라, 그냥 멍하다고.
그렇지만 지금 이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눈물 버튼이 눌린 것 같은데, 담담한 게 말이나 되는 건가?
음 말이 안 되지, 안돼.
그날의 기억은 아마 몇십 년이 지나도 낫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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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얘는... 야생까진 갈 것도 없이 아파트 단지에만 풀어둬도, 딱 하루도 못 버틸 거 같지 않니?^^
나: 응 그러게. 하루 이내에 변사체로 발견되던지, 아님 아예 남의 집 개로 발견될 듯?
감히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를 좋아할 거라 매번 확신하며 꼬리를 마구 흔들고, 함부로 배를 보여주는 널 보며 우스갯소리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문 앞에 택배 놓아지는 소리만 들어도 온몸의 털을 세우고 잔뜩 경계할 만큼 겁이 많은데, 그런 네가 삶의 마지막 순간 겁이 나 눈을 편히 못 감으면 어떡하지?
너 없는 세상에 남겨진 내가 살 날도 걱정이지만
문득 나보다 훨씬 먼저 떠날 네가 걱정이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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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처음으로 크게 아팠던 날의 기억은 아직도 나에게는 마치 어젯밤 일처럼 생생하다. 시름시름 앓는 와중에 나에게 기어와 폭 안기고는 곧이어 축 쳐진 너를 들고 새벽 3시에 응급실로 뛰어가며 세 번째 수능날 이후 처음으로 마음속 간절히 신을 찾았던 것 같다.
아직 우리에게 먼 일이지만, 멀어야만 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반드시 일어날 그날을 대비하며 이 글을 쓴다.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 모든 병이 치유된대.
거기선 하나도 아프지 않대.
분리불안도, 외로움도, 겁날 일도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도 전부 없대.
짖는다고 뭐라 할 누군가도 없대
마구 점프해도 뛰어내려도 다리를 안 다친대
그래서 매일매일 질리도록 뛰어놀 수 있대
...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다리다 보면
네가 가장 기다리던 존재가 널 보러 달려온대.
일장춘몽을 끝내고
무서운 거 아니야
그냥 자는 거야
언니가 네 곁에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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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음 생에는 친구로 꼭 다시 만나자
#많은거안바란다
#딱예쁜나이스물다섯살까지만살아라
#최장수견가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