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행운

by 삼남매아빠

두 달간 이어온 이사 준비에 덩달아 회사일도 바빠져 내 일상의 여유는 사라져 버렸다.

인테리어 업체를 선정하고 추가 대출을 알아보며 새 집에 들어갈 가구와 집기를 고르고는

어떤 물건들을 버리고 들여야 효율적인 공간이 만들어질지 가늠해야 했다.

단박에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없었다. 몇 차례의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서

이 정도면 되겠다 싶은 후보들만 추리는데도 소모되는 공력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날카롭게 긴장을 유지하던 어느 순간에 영화 클리프 행어에서 밧줄이 절벽 모서리에 조금씩 갈려 장력을 이기지 못한 밧줄처럼 투투둑 떨어져 나갔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인데 배터리가 방전되어 버린 거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그럴 여유를 찾아보기 어려운데도.

그 비싸고 좋다는 독일제 비타민 영양제를 털어 넣어도 소용없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시간휴가를 내어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집에 가면 쉴 수는 있고?


집 근처에 멀티플렉스 극장 CGV는 알맞은 도피처였다. 딱히 보고 싶은 영화는 없다.

하지만 스크린을 마주하고 앉는 순간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확신이 있었다.

볼만한 영화가 아니라면 상영하는 동안 눈을 감고 있어도 좋겠다.

그런 기대를 품고 가장 빠른 시간에 하는 영화를 찾았다.

마침 톰 아저씨의 미션임파서블 신작이 개봉했다. 앞에 광고를 10분쯤은 할 테니 남은 시간은 충분했다.

표 값이 2만 원이라니? 가만 보니 리클라이닝 관이다. 더욱 잘됐다.

부푼 마음으로 찾아간 자리에는 뜯지 않은 나초와 버터구이 오징어, 콜라가 있었다.

누군가 자리를 잘못 찾은 게 분명했다.

아까는 없던 여유가 언제 생겼는지, 표를 들고 가만히 서서 '여기 제자리인데요.'를 속으로 되뇌며 나초의 주인을 기다렸다.

미소 가득한 한 남자가 극장 안의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내 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아마도 일행인 모양이었다. 그는 순간 나를 보고는 갸웃거리며 다가왔다.

'저 사람인가?'

"저... 여기는 오늘 저희가 전체 대관을 했는데, 어떻게 오셨어요?"

대관? 그럴 리 없다. 내 표는 분명 1관의 G열 10번이 찍혀있다. 시간도 틀림없었다.

"이상하네요, 저도 매표를 하고 들어왔는데요?" 하며 여권 같은 표를 보여줬다.

그는 적잖이 당황하며 직원에게 확인을 해봐야겠다며 상영관 밖으로 나갔다.

결론은 기기오류였다. 사실 직원의 업무처리 오류인지 기기의 오류인지 알 방법은 없었지만

직원의 사과를 받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아주 잠시 고민했다.

가장 가까운 시간에 하는 영화는 한 시간 뒤에 상영하니 내키지 않았고

이대로 돌아서기에도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면 그렇지 마음먹은 대로 착착 진행되는 일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어?

연신 미안함을 전하는 직원에게 애써 괜찮은 척 돌아서려던 순간이었다.

어디론가 급히 전화를 하며 내게 묻는다.

"바로 시작하는 미션 임파서블은 없는데 혹시 다른 영화는 괜찮으세요?"

분명 다른 영화를 다 찾아도 상영시간이 멀었다.

그들만의 전문용어를 섞어 통화하던 직원이 말한다.

"썬더볼츠도 괜찮으세요?"

"네 전 어떤 영화든 상관없습니다."

"그럼 5분 후에 보실 수 있게 준비해 드릴게요. 리클라이닝관이 아닌 일반관인 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떠오른 순간이다.

전광판을 보니 없던 상영시간이 생겼다.

센스 있는 점원들의 대처로 비어있는 상영관에 나만을 위한 영화시간표가 세팅됐다.

그간 살면서 누렸던 서프라이즈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만한 이벤트였다.

유연하게 대처해 준 그분들에게 되려 감사해야 할 상황이다.

세상에 홀로 극장을 대관해서 영화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맨 뒤 정중앙 좌석에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영화를 봤다.

묵은 피로가 중첩되려는 순간에 극적인 반전을 맞이하여 해피엔딩이 됐다.

친절과 배려가 빚어낸 과분한 행운을 누렸다.

이렇게 받은 복은 누군가에게 또 나눠줘야 마땅할 것이다.

좋은 것은 나눌수록 배가 된다는 누군가의 말은 진실에 가까운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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