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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zy Lee 리지 리 Oct 25. 2024

북한 승객들에게 다가간 남조선 승무원

딱 세 단어의 답만 몰래 들었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Morning flight

아침 비행


길게 잠은 푹 못 잤지만 알람 전 눈이 저절로 떠졌다. 더 늦게까지 자고 타려던 우버 대신 스케줄 된 크루버스를 탔다.




DOH-AMM, AMM-DOH

Amman, Jordan


암만, 요르단 수도의 턴 비행이었다.

한 섹터 당 약 두 시간 반의 비행으로 레이오버 없이 바로 돌아오는 비행이다.


평소보다 일찍 오퍼레이션 센터에 도착해 카페를 갔다. 아이스 스페니쉬 라테와 랩으로 아침을 먹고 화장실을 들러 양치를 하고 립스틱을 발랐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리포팅 타임 5분 전에 딱 브리핑 룸에 도착했다.


비행을 같이 했던 반가운 부사무장과 크루의 얼굴들도 보였다. 하이~ 하우 알 유~








Boarding


브리핑을 스무스하게 마치고 비행기로 향하였다. 나의 포지션은 L2였다. 주로 탑승하는 L2 도어 담당과 비즈니스 클래스 왼쪽 뒤 존 담당이었다. 사무장과 부사무장이 주로 문 앞에 서서 승객들을 맞이하고 보딩패스를 확인한다. 승객들의 좌석 안내를 위해 확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보안 상 필수로 세 가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바로 편명, 날짜, 목적지이다.  



잠시 부사무장을 도와 탑승권 확인을 하며 보딩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승객들의 여권도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그런데 어떤 아시아인 인상의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모르겠는 남성이 탑승했다. 여권을 쓱 보니 조선 인민 공화국이라고 한국어로 적힌 파란색 여권이 지나갔다. 순간 헉 내가 본 것이 맞나 싶었다. 북한 사람도 여행을 할 수 있는가? 북한 승객을 본 건 처음이었다. 이코노미 뒤쪽에 북한 사람 한 명이 탔구나 하고 혼자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며칠 전 뉴스에서 북한이 남한과 연결된 기찻길을 폭파시켰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고 남북한이 썩 좋은 관계는 아니기에 궁금했지만 살짝 조심스럽기도 했다.     



담당한 비즈니스 클래스 승객들에게 자리 안내와 웰컴 드링크를 제공하고도 여유가 있었다. 사무장의 부탁에 도움이 필요한 승객을 이코노미 끝자리까지 안내하게 되었다. 승객을 자리에 안내하고 이코노미 뒤쪽 자리를 봤는데 헉 대략 50명 정도의 북한 사람들이 단체로 있었다. 북한 국기가 가슴에 새겨진 운동복 재킷을 다들 입고 있었다. 운동선수들인가? 북한에서 어떻게 왔지? 궁금증이 넘쳐났다. 선수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어디서 오셨어요? 북한에서 오신 건가요? 계속 물어봐도 답이 없었다.


"조선" 작은 소리로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남조선 어쩌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살짝 들렸다. 아마 저 승무원 남한 사람인가 보다 하는 느낌이었다.



활기차고 반가운 질문에 비해 뜨뜻미지근한 대답이었다. 이번엔 반대편 복도로 넘어가 다른 북한 선수들에게 다시 대화를 시도해 봤다.


아니 북한에서부터 어떻게 오셨어요? 기본적으로 같은 질문을 한 열 번은 물어봐야 귓속말 정도의 볼륨으로 단답이 들려온다.


내 바로 옆 북한 남자분이


"비행기" 하며 단답으로 단 한 번 소곤거렸다. 억양이 있었다.


아~ 북한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구나!


무언가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없고 눈치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운동 팀인가요? 어떤 종목이에요? 하고 또 한 열 번을 전체 팀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감독같이 보이는 한 분이


"축구" 하고 또 단답으로 작게 대답했다. 나의 남한 억양의 한국어는 다 알아듣는 게 분명한데 답은 소소했다.


그에 비해 나는 와아~~ 축구~~ 축구 대표팀이군요!! 대단해요! 난리 법석을 떨었다. 아마 북한사람들은 봤을지 모르겠지만 살아있는 K-drama를 내가 보여줬을 것이다. 나의 리액션에 비해 반응은 무표정과 무대답 그리고 마스크와 안대였다. 뒷 갤리의 이코노미 크루들에게 북한 축구팀이라고 같은 한국어를 하니 통역 필요하면 말해달라고 하고 비즈니스 캐빈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 이코노미 첫 줄에 엄청 귀여운 쌍둥이 아기 둘이 있었다. So cute! Where are you from? 물어봤는데 Korea~ 한국 분들이었다! 할머니, 엄마, 아빠 그리고 쌍둥이 아기 딸 아들 이렇게 첫 줄에 앉았다. 얘기를 해 보니 호주에 오래 살았고 한국에서는 부산에서부터 출발해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했다. 요르단에 몇 년을 살러 간다고 했다. 비즈니스 클래스에 챙겨 줄 수 있는 것들은 소소하게 선물로 드리고 아기 장난감도 추가로 드렸다. 할머니는 계속 아기를 보여주며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선생님 봐봐 고맙습니다~ 덕분에 카타르항공 기억에 남을 거라며 잘 챙겨줘서 고맙다고 할머니와 부부가 말했다.


그리고 말해드렸다. 저 처음으로 북한 승객들 봤어요. 뒤에 축구 단체 팀이 앉아있는데 제 질문에 답을 잘 안 해줘요. 할머니가 얘기해 주시길 남한 사람들한테 친근하게 하면 안 돼서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한국 비행은 거의 안 나와 다른 나라의 비행들에서 가끔 보는 한국인 승객들은 너무나도 반가워서 더 말을 걸고 챙겨주는 편이다. 북한 선수팀도 반가웠지만 챙겨주기에는 너무 많은 인원이었고 나의 호의도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또 찾아가지는 않았다. 쌍둥이 아기들은 비행 틈틈이 찾아가 보았다. 아가들의 귀여운 웃음이 최고의 비행 피로 회복제이다.


 






Landing


두 시간 반의 비행이 쓱 지나갔고 무사히 암만에 착륙을 했다. 창밖으로는 로열 요르단 항공 비행기들이 보였다. 비즈니스 클래스 승객들이 먼저 내리고 이코노미 승객들이 내렸다. 한국인 가족들에게는 암만에서 건강하게 잘 적응하고 지내세요! 안녕히 가세요! 하고 인사했다.


비즈니스 클래스의 블랭켓, 헤드셋, 메뉴카드를 콜렉팅을 하다가 뒷자리 쪽의 북한 축구팀들이 내릴 때쯤 사무장에게 잠시 북한 팀들에게 인사를 하겠다고 했다. (승객들이 내리고 승무원들은 담요, 헤드셋을 다 수거한다.)


딱 북한 축구 대표팀들이 단체로 내릴 때


"북한 축구 대표팀 경기 파이팅!


행운을 빌어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잘 뛰어요!"


인원이 꽤 많아 북한 전체 팀들이 내릴 동안 급조한 맨트를 무한 반복으로 외쳤다. 양손을 흔들며 활짝 웃으며.


북한 선수들은 또 무표정이고 신기한 듯 쳐다보고 대답 없이 내렸다. 몇몇의 눈인사와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긴 했다. 내리고 젊은 선수들끼리 살짝 웃으며 수군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North Korea


아무리 남북으로 나뉘었지만 억양도 굉장히 다르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북한 사람들을 만난 건 너무나 신기하고 반가웠다. 그것도 북한 국가대표 축구팀을. 무언가에 억압되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우리의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닌 곳이 존재했다.


랜딩하고 집에 와서 생각나 구글링을 해보니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 예선전을 하는 중이었고 신영남 책임감독의 사진과 같은 인물도 기내에서 보았다. 북한 축구팀들도 속으로는 도하 - 암만 비행에서 남조선 승무원을 보고 놀랐을 것이다. 그것도 말도 많고 오지랖 넘치는.



카타르에 살며 카타르 월드컵, 아시안컵 한국 축구 경기들을 태극기를 둘러싸고 화려하게 꾸미고 직관하며 목이 쉬도록 응원을 했었다. 당연히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이 세계 최고이지만, 북한 대표팀도 파이팅!


저번에 월드컵을 마치고 한국 선수들은 카타르 항공 최고의 큐스위트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갔는데 북한 팀은 국가대표 팀인데도 이코노미 뒤에 아주 편하지는 않게 긴 여정을 다니는 것 같아 조금은 안쓰러워 보였다. 선수들 남은 경기도 잘 치르고 안전한 여정 되길 바란다. 열악한 상황 같아 보이지만 항상 건강하고 보이지 않는 억압 속 소소한 자유가 존재하고 이 작은 응원하는 마음이 전달되길 바란다.



어렸을 때부터 바라던 것은 북한 국민들의 인권, 바른 교육 그리고 바른 정치이다. 북한 축구 대표팀에게 겨우 귓속말 정도로 들은 세 단어 "조선, 비행기, 축구" 뿐이다. 아마 남조선 혹은 외국인에게 얘기를 하면 안 되는 규칙이 있는 것 같다.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북한을 안 좋게 말하지만 그들은 무고한 시민이고 열심히 뛰는 축구 선수들일뿐이다. 나에게는 선물 같은 소중한 승객들이었다.


짧은 암만 턴 비행이었지만 아마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봤을 북한 축구 대표팀들도 만나고 나에겐 의미 있는 비행이었다.








오늘 만난 크루 친구는 어제 우즈베키스탄 비행을 가 레이오버를 경험했다고 한다. 이란 이라크 레바논 주변 항공로가 막혀 돌아가 원래 턴 비행이 레이오버로 바뀐 것이다. 비행하며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영향을 받는다.


세상에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다 같은 지구 위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온정이다.


어제 비행에서 스위스로 이민 가신 스리랑카 할아버지가 말했다. empathy and kindness가 있다면 어딜 가든 괜찮을 거라고. 좋은 세상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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