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퇴사를 하고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주에 한 번씩 도서관을 가서 다섯 권의 책을 빌려 온다. 요즘 시기에 다닌 요가원에서 영감을 받은 책이나 sns에서 보고 읽고 싶었던 책들을 빌리고 있다. 사실 이주 안에 한 권의 책도 잘 못 읽던 터라 다섯 권은 무리이다. 어떤 책은 후루룩 읽혀 끝가지 읽고 어떤 책은 한 장 한 장이 어려워 첫 챕터도 끝내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주가 끝나갈 때쯤 대출 기간을 일주일 연장시키곤 한다. 가끔 연체가 되지만 연체된 기간의 두 배 만큼 대출을 또 못하기에 최대한 기간은 지키도록 해야 한다. 한 번씩 도서관을 가는 것이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지만 책을 빌려 놓으면 예상치 못한 책에서 예상치 못한 영감을 받곤 한다. 때론 그냥 책이 자기 전에 수면제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때로는 책상 위의 장식품이 되기도.
나의 영감제이자 수면제인 읽는 약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을 가기 위해서는 등산을 해야 한다. 산 중턱에 위치한 도서관이기에 언덕길을 올라도 되고 공원으로 중간 옆길로 들어와도 된다. 도서관을 가는 길에 꼭 보이는 풍경은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 뛰어노는 아이들, 노년의 앉아있는 사람들, 무언가 시험을 준비하는 것 같은 공부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계절에 따른 나무와 꽃들, 풍경들. 4월 중순 봄, 요즘은 푸르르고 꽃들이 만발을 했다. 도서관 가는 길이 꽃구경, 강아지 구경을 가는 길이다. 후암동에 살 때 남산도서관 가는 길이 딱 그랬다. 서울역에서 회사를 다니던 시절 마음만은 매주 남산도서관을 갔지만 사실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그 시절엔 좋아하는 책을 빌리로 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걸까, 무의식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던 걸까.
그렇게 살아있는 풍경들을 지나 여기 수봉도서관을 도착하면 일층부터 인사하며 반기는 친절한 직원분이 있다. 책을 빌리기 위해 이층으로 올라가면 더 친절한 청년이 있다. 나의 도서 카드 재발급을 도와주고 앱으로 쉽게 빌릴 수 있게도 안내해 주었다. 내가 샅샅이 번호를 보고 찾아보다가 영영 못 찾겠는 책도 찾아주었다. 이런 도서관의 수호천사를 발견했네.
어제는 도서 전시 코너 옆에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 아니 도서관에 약국 코너가 생겼지 뭐람! 다섯 권 외에 특별 대출로 읽는 약 한 권을 대출해 준다. 봉투 안에 무슨 책이 들었는지는 대출 후 뜯어봐야 알 수 있다. 읽는 약이라니. 빠른 마음 쾌유를 기원한다니. 웃기면서도 사실은 정말 현대인에게 필요한 게 마음치유를 하는 이런 약일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읽는 약 하나를 처방받아 보았다. 봉투를 들고 집을 가는데 괜스레 기분이 좋고 두근두근했다.
내가 처방받은 읽는 약은 바로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김동영”이다. 이미 제목만 읽어도 쾌유가 되는 느낌이지만 이 글을 끝마치고 자기 전에 30분간 복용을 해보려 한다.
Even if it doesn’t happen. 책의 사이드에 이렇게 적혀 있지만 내가 제목을 강렬하게 번역해보자면
“Even though you do not become something.”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이라도 무엇이 되려고 하지 말아 보자.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