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말해보거나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그러면 그 말을 듣는 또 다른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 "코끼리도 풀만 먹어요. 코끼리 아시죠? 코오끼리이~~~~~~ (거대함을 표현)"
정말이지 올해, 2020년 3월부터의 내가 그랬다. 올챙이 배 같은 인간적인 뱃살은 원래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상했다, 내 배가. 지하철 자리에 앉았는데 두둑하게 뱃살이 접혔고, 서 있을 때는 어느 아저씨분께서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지 아닌지 고민되는 눈초리로 내 배를 슬쩍 응시하셨다. 신호등 불이 깜빡거려 급하게 뛸 때 사실 좀 놀랬다. "어, 지금 출렁거리는 이거 뭐야? "
결정적으로 가족들이 도대체 나의 몸에 (특히 배에 )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식후 아이스크림이 그렇게 살이 찌기 쉽다는데 그것이 요인이었을까? 몸이 찌뿌둥한 것이 느껴져 스스로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자각했다. 닭가슴살, 계란 등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다가 별 효력이 없자 조금 과감하게 1kg에 160kcal 밖에 안 되는 방울토마토, 방. 토 다이어트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정말 이상했다. 이 짓?! 을 1주일 넘게 하는데도 나의 체중은 미동도 없었다. 점차 화가 나기 시작했다. 삶의 낙이 사라져 버렸으니.
밥때가 되면 배가 고픈 것이 감사한 일인지도 이때 알았다. 배가 고프지가 않았다. 점심을 먹고 4~5시간이 지나면 다음 식사인 저녁을 먹는 것 말이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소화가 되면 기쁜 마음으로 다음 저녁 메뉴를 골라야 하는 것이 응당 인간의 행복이거늘. 당최 무슨 일인지 나의 배는 뭐가 들어가면 문을 걸어 잠그고는 다음 음식을 요구하지 않았다. 괴로웠다. 분명 시간은 저녁때인데 배가 안고팠다. 치맥을 너무나도 하고 싶은데 그녀는 아니었나 보다.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아파서 그랬다는 것을. '그레이브스병'이라는 정확한 병명을 진단받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어도 이 증상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수치가 좋아지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많이도 했다. 내 몸이 아프다는 건데 당분간은 잘 케어해야지. 그러나 갑작스레 좋아진 풍채로 인해 맞는 옷이 하나도 없다거나 친구 결혼식에 가야 할 때 등 이런 순간들에는 불쑥불쑥 짜증이 났다. 맛있는걸 많이 먹지도 않는데 살이 찌고 빠지지도 않는 것은 생각보다 우울한 일이었다.
수치가 조금은 정상으로 돌아온 지금, 다시 밥때가 되면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전과 달리 소화가 되기는 하는 것 같다. 저녁 메뉴를 고르는 행복함을 다시 알게 되었다. '점심때 야채 많은 음식을 먹었으니, 저녁은 까르보나라 불닭볶음면과 참치김밥으로 먹어도 되겠지?'
여태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 당연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으니 이 또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소중한 것이다. 역시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